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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9. 2019

엄마에게 가는 길 #7 아! 오징어순대!

#7 아! 오징어순대!  

돈을 벌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식당을 전전하며 일을 해야 했던 엄마는 사십 대 중반에 구청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다. 새벽 6시에 나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나는 일이었다.  구청 청소일은 퇴직 때까지 일할수 있어서 안정적이긴 했지만 급여가 적었다. 세 아이들과 먹고살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던 엄마는  다른 일을 구해야 했다.

청소일을 마치면 집 근처 식당에 가서 오후 설거지 알바를 했다. 구청에 나가지 않는 주말엔 뷔페에 가서 12시간 동안 일을 했다. 명절엔 시장 반찬가게에 나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전 부치는 알바를 했다.

'사람이 저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살 수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때부터였지 싶다. 엄마를 보면서 연민이 느껴진 건.

일을 해도 해도 돈이 나가는 구멍은 많았다. 여전히  우편함은  압류 예정 통보서 같은 우편물이 계속 쌓여갔다. 어떻게든 새끼들을 데리고 살아가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했던 엄마는 사십 대였던 그 십 년간 참 많이도 늙었다.

 

그 시절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학원강사일을 시작했다. 급여는 120만 원. 그 120만 원으로 생활을 감당해나가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아빠 사업이 망했을 당시, 어린 조카 앞에서도 형에게 쌍욕을 하며 멱살을 잡았던 작은 아빠, 조카 등록금이 없으니 학비 좀 빌려달라는 동생을 칼같이 내치던 큰 고모, 우리 집이 부유할 때는 그렇게도 자주 드나들더니 우리 집이 망하니까 순식간에 연락을 단절했었던 외가 식구들, 엄마에게  너 때문에 이 사단 난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친할머니까지 모두 우리 다섯 식구를 외면했다. 우리는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됐다. '세상 무서운 게 돈이구나. 돈을 잃으면 사람도 잃는 거구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견뎌왔던 날들. 한겨울에도 돈 걱정에 보일러를 틀 수 없어 잠바를 입고 견뎌냈던 그 추웠던 날들.  난 돈이 없다는 게 그리도 비참하고 무서운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월급을 받고도 마음껏 쓸 수가 없었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퇴근길에 지나치는 지하상가에서 맘에 쏙 드는 옷을 보고도 선뜻 사질 못하고, '내일 사야지. 내일은 꼭 사야지.'다짐만 하고 있다가 결국엔 계절이 바뀌어서 옷이 들어가 버려 황망했던 적도 있다. 스킨로션은 화장품 사러 가면 주는 샘플을 썼고, 가방도 지하상가를 뒤져 5000짜리를 사서 메고 다녔다.


어느 날  퇴근길엔 한참을 망설이다가 거금 5000원을 들여 오징어순대를 샀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위해 남겨둘 생각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밥상 위에 오징어순대를 올려놓고 젓가락을 가지고 돌아서니 오징어순대가 없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중학교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짱구가 순식간에 오징어순대를 다 먹어치워 버린 것. "너는 니 밥 있잖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짱구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씩씩대면서. 얼마나 억울하던지. 얼마나 얄밉던지. 얼마나 분하던지. 그깟 오징어순대가 뭐라고, 그깟 5000원이 뭐라고, 이리도 흥분하는 나는 또 얼마나 비참하던지. 오래간만에 포식을  한 죄로  걷어차이고 풀이 죽은 짱구를  째려보며 한참을 엉엉 울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길을 걷다 짱구와 같은 종의 강아지를 보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징어순대가 생각난다. 짱구는 하늘나라에서 오징어순대를 맘껏 먹고 있을까? 난 아직도 오징어순대를 먹지 않는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십 대 젊은 여자아이들의 모습은 생기발랄하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고민과 삶의 무게가 있겠지만  겉에서 보기엔 마냥 해맑아 보인다. 나의 지나가버린 이십 대가 참으로 아쉽다.


아이들과 남편과 지지고 볶으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평온한 일상을 통째로  빼앗겨버렸던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평범하지 않게 지나가버린  그 힘들었던 사십 대를 안타까워하고 있을 듯하다. 가끔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내게 "애들 키울 때가 제일 행복할 때야. 난 가끔 예전이 그리워." 하신다.


그 험한 시기를 같이 이  악물고 버텨온 엄마와 내겐 일종의 동지의식이 생긴듯하다. 엄마의 사십 대와 나의 이십 대. 보통의 일상을 누릴 여유도 없었고, 마음도 참 가난했던 시절.  둘 다 일하러 다니느라, 돈을 버느라 바빴던 그 시절의 엄마와 나에게 "우리 참 애썼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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