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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5. 2019

엄마에게 가는 길#1 눈부신 가을 날.엄마를 생각하다

#1  눈 부신 가을날. 엄마를 생각하다.

시월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도 푸르다. 길가의 나무와 꽃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후우... 차에 몸을 널브러뜨리고 시동을 켜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제 좀 앉을 수 있는 시간.


결혼 전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참 질기기도 하다. 이놈의 허리 통증은 이제 엉덩이 부위의 통증으로 내려왔다. 병원을 다니고 물리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 당일에만 시원하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온다. 늘 종종거리고 다니는 통에 끈덕지게 병원을 다닐 시간도 없다.

새벽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쉴 틈이 전혀 없었다. 늘 6시 30에 기상해서 새벽밥 해서 내 새끼들 먹여 학교 보내고 나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집안일... 매일매일을 청소해도 치워야 할 건  어쩜 그리 많이 나오는 것인지... 이 놈의 집구석은 나 말고는 정리하는 사람 하나 없다. 집안 청소와 빨래를 후다닥 해치우고,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 오전 내내 일을 하고 집에 오면 두시.


두 시간 후면 내 본업인 수업을 하러 나가야 하므로 그전에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만 한다. 저녁에 집에 와서 국을 데피고 수저만 놓으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후다닥 장을 보고, 반찬을 하고, 국을 끓이고, 쌀을 씻어놓는 일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 앉아있을 틈은 없다. 저녁 준비하는 동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 먹이고 학원을 보내고 나면 4시.


이제 나는 수업하러 간다. 차에 앉는 그 순간부터가 온전히 나만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참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내 일을 하러 가는 이 시간이 가장 몸이 편한 시간.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엉덩이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하지만 마음까지 편치는 못하다. 요즘의 내 생활은 인내의 연속이다. 늘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그 속에서 쌓여가는 분노는 이미 극에 달했다. 내 모든 노고와 애씀을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것만 같은 남편이란 사람에 대한 원망도 가득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듯한, 피폐한 마음을 가진 오늘과도 같은 날. 엄마가 보고 싶다.

'난 둘 키우면서도 이렇게 허덕거리는데, 애 셋을 키운 우리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불현듯 궁금해진다.


가만있어보자. 지금 내 나이 마흔셋. 우리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가 언제더라. 나랑 엄마랑 열아홉 살 차이니까 내가 스물넷? 내가 스물... 넷....이었을 때라고?


큰 사업을 하시던 아빠가 IMF로 부도를 맞아 빚쟁이들이 몰려들고, 온 집안 물건에 빨간딱지가 붙었었던 그때? 아빠 엄마가 매일매일을 아귀처럼 싸우다가, 아빠가 집을 나가버려서 행방불명이 되었었던 그때? 돈 한 푼 없어서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가 퀭한 눈을 하고 식당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벌어온 돈으로 입에 풀칠하던 그때? 지금의 내 나이였을 당시 우리 엄마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없이  늙어 보였던  엄마의 그때가  고작  지금의 내 나이였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일들.  그때의 나는 어땠던가. 그 고단했던 시간에 나는 우리 엄마를 위해 무얼 했던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어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수업은 이미 늦었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젠장... 가을 거리는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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