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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글쓰는 소방관
Oct 16. 2020
작은 수첩에 적힌 나의 지난 날
남겨진 한 줄 글의 힘
출퇴근 때 늘 매고 다니는 가방이 사무실 한구석에 있습니다.
며칠째 이어지는 훈련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를 못해 후배의 책상 옆에 올려놨었습니다.
훈련 때 입으려고 집에서 가져온 티셔츠가 가방에 있어 열어보았습니다.
셔츠를 꺼내려고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가방 속 여기저기에 온갖 잡동사니가 너저분하게 펼쳐있길래 하나씩 꺼내보았습니다.
젤 처음 눈에 띈 게 파란색
수첩입니다.
몇 년 전 메모 같은 거 끄적이려 가지고 다녔는데
어디 갔는 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만났습니다.
수첩을 펼쳐보니 별거 없습니다.
개발새발 써놓은 글씨가 내 글인데도 알아보기 힘드네요.
여기저기 업무 관련 메모가 대부분인데 잊어먹지 않으려고
써놓은 듯한 글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다 잊어먹고 있는 지금을 보면 써놓고 다시 펼쳐보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서민 교수님의 책을 읽고 몇 자 적었는데 이거는 기억이 나네요.
워낙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서요.
파란색을 좋아해서 파란색 글이 거의 다입니다.
그렇게 파란 글들이 제 맘대로 갈겨져 있습니다.
그러다 본 것이 제 속내에 대한 글도 있네요.
3년 전 소방서에서 실시하는 정기 심리 상담을 받고
그날 쓴 거 같습니다.
나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심리상담사에게 술에 대한 질문을 한 적 있습니다.
물론 내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라고 하면서요.
매일 소주 한병과 피처 하나를 마시는 친구가 있다.
술자리가 있는 날은 기억이 끊어질때까지 마신다.
이 친구는 괜찮을까?
내 말을 들은 심리상담사는 그 정도면 '알코올의존증'이 의심되니
병원을 가보라고 했습니다. 전문의와 상담을 해보는 게 좋다면서요.
순간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저도 그럴 줄 알았지만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
불안이 엄습합니다. 상담사는 제가 친구의 이야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상담을 마쳤고
그렇게 돌아앉아 이 글을 쓴 듯합니다.
그 후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올해 1월 1일부터 술을 끊었습니다.
다들 어떠한 계기를 묻는데 딱히 그런 거 없습니다.
위에 말했듯 저 정도로 마셔대는 일상이 그냥 싫었습니다.
전문의의 진단까지도 갈 필요가 없이 제가 봐도 알코올중독 수준이 맞았죠.
끊어야 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술 마시는 시간에 책 읽고 글 씁니다.
삶이 기적적을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변한건 사실입니다.
지역 독서모임에 나가고, 온라인으로도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 글을 보시고 온라인 강의도 부탁하십니다.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오셔서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놀라운 일이죠.
물론 중요한 자리에 나가 술잔을 받아 입에 대기는 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조직에 몸담은 직장인이고
또 귀한 분이 주는 잔이기에 잔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분께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이해해 주셨고 고마웠습니다.
꺼내본 수첩을 보며 과거 제가 어찌어찌 힘든 일을 겪어왔는지
죽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별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내 부질없는 생각처럼 느껴집니다.
다 그렇게 되려고 될 일이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메모광은 아니지만 수첩의 작은 글 덕분에 오늘도 글을 씁니다.
'메모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잠깐잠깐 남겨지는 글들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나의 기억이 종이에 적히며 오롯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나의 지난날'이 그렇게 남겨지게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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