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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수 Oct 18. 2018

조직에 느린 학습자가 필요한 이유

혁신과 개선을 원하는 조직이 놓쳐서는 안 될 사람

  당신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이 퇴직을 고했다고 가정해보자. 열심히 새로운 사람을 찾아 겨우겨우 입사를 시키며 따뜻한 환영 인사를 잊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 과연 당신은 새롭게 입사한 그 사람에게 얼마의 시간을 줄 수 있겠는가? 


  사실 이런 상황은 일상에서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시점은 실제 퇴직을 약 한 달여 남겨 두었을 때이다. 반면, 사람을 찾고 입사시키는 데는 최소 3개월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이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이에 많은 리더들과 채용팀은 연봉협상을 막 마친 지원자에게 하루라도 빨리 와줄 수 없는지를 묻는 일이 일상다반사고, 새로운 사람이 입사한 후에도 조바심과 조급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언뜻 보면 너무나 당연한 기대다. 특히 아주 중요한 자리가 비어있었다면 누구라도 재빨리 그 자리에 들어가 100%, 아니 120%를 해도 모자랄 것 아닌가? 조직의 현실이 이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른 학습자(Fast Learner)를 선호한다. 빨리 배우고, 빨리 소화하고, 빨리 적응하고, 나아가 분위기 파악까지 빨리해 그야말로 '조기정착', 나아가 조기 동화(Assimilation)가 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신규 입사자 성과 평가의 상당 부분이 얼마나 빠른 적응을 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은 직장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오늘은 느리게 학습하는 사람들(Slow Learner)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은 학습과 적응이 다소 느린 신규 입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조직 학습에서의 탐색과 활용(Exploration and Exploitation in Organizational Learning)'이라는 스탠퍼드 대학교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의 논문은 우리가 느린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조직 전체의 지식수준과 새로운 기회의 탐색, 나아가 현재 프로세스에 대한 개선을 위해서는 느리게 학습하는 사람, 천천히 적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학습하는 사람은 조직의 일반적인 업무 방식이나 관행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데 생각과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하고 있는 루틴(routine)은 이상이 없는지, 더 개선할 사항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느린 학습, 느린 사회화(Socialization)는 다양한 대안에 대한 탐색(Exploration)의 여지를 제공하고,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조직 내 전반적인 지식 향상에 기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빠른 학습자들, 빠른 적응을 하는 사람들은 조직의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우선 신속하게 습득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특유의 동화 속도가 그들을 빠른 학습자, 빠른 적응자로 불리도록 한 것 아닌가.


  논문에서는 조직의 코드, 즉 일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은 느린 학습자를 통해 형성 / 개선되고, 빠른 학습자들을 통해 실현된다고 말한다. 특히 천천히 곱씹으며 학습을 한 사람들이 빠르게 학습하고 적응한 동료들의 균형적 지식을 높인다는 점은 느린 학습자가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조직 내에 학습 속도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조직 전체의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진다는 점이다. 일부는 빠르게 학습을 하고 적응하면서도, 또 일부는 느린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조직. 나아가 느린 학습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조직이 탐색과 혁신의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다. 


  모두가 셀프 체크해보자. 우리 조직은 느린 학습자를 잘 참고 견뎌 주는지 말이다. 느린 학습자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일정 기간 이상 조직에 머물면서 그들이 느낀 바를 이야기해줄 때다. 이들의 조기 퇴직은 그야말로 조직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뿐 아니라, 조직도 개인을 떠나보내며 '부적응자'라는 불명예 딱지를 붙인다. 


  양수겸장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 혁신 조직, Creative Lab 등 기업이 자체적으로 탐색과 활용을 병행하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나아가 요즘은 민첩한 조직(Agile Organization)이 모든 기업의 지향점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우리가 탐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느린 학습자, 느리게 적응하는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이다. 조직은 다양성이 추구되어야 하고, 다양성은 혁신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떠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차 한잔을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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