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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빈 Jun 07. 2024

폐쇄병동 문 뒤에서

연신내에서 빅 5까지, 정신과 진료기 (2)

 강남의 'S' 대학병원의 예약을 잡았다. 큰 규모의 정신과 병동이 있어 예약이 쉬웠고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다. 가족들에게 내 병을 들킨(혹은 발설한) 후였으므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았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겨를이 없었다. 그 병원에 3천만 원 이상을 쓴 지금은 생각이 다르지만, 아무튼. 첫 진료를 받으며 교수님께서 '입원을 하지 않으면 약을 줄 수 없다'라고 하셨다. 의문을 가지고 반항할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권위에 눌려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았고, 그게 나를 살게 할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자살위험성이 있던 나는 '동의입원'의 방식으로 입원을 했다. 따라서 내 의지로는 병원에서 퇴원할 수 없었고, 이는 몇 번의 입원이 반복될 때까지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첫 입원을 하고 21일간 지옥의 시간을 보냈다. 알코올과 니코틴 금단 현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불안한 내게 당시 주치의 선생님은 차갑고 딱딱했다. 눈을 뜨면 병실 천장이 보이는 하루하루가 나를 더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퇴원을 하고 1달도 채 안 지나 두 번째 입원을 했다. 두 번째에는 더 상태가 안 좋았다. 인권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퇴원을 요구하며 간호사 데스크에서 소리를 질렀다. 분노를 통제할 수 없어 책상을 엎거나 나보다 어린 학생에게도 폭력적 행동을 보였고, 잠을 잘 수 없어 2주간 밤마다 두 종류의 주사를 꽃아 넣고 잠에 들었다. 담배를 못 피우는 대신 고용량의 니코틴 패치를 붙였는데, 그걸로도 충족이 안 되어 매일 난장을 피웠다. 결국 내 고집을 못 이기고 부모님께서 퇴원을 허락하여, 2주 만에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는 내게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고, 계속된 입원을 겪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자, 병원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소위 '병원 쇼핑'을 했다. 무려 빅 5 병원에서 말이다. 송파구의 'A' 병원에서는 내가 다니는 병원의 교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약이 이미 너무 많고 촘촘해 쉽게 건들거나 바꿀 여지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대사량을 떨어뜨리는 약 부작용으로 15kg 이상이 찐 상태였고, 이를 개선해주지 않는 현재 병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고속터미널의 'B'  병원에서는 내 병명을 '경계선 인격장애'로 규정하고, 부모의 학대로 인한 성격장애라 나와 엄마를 비난했다. 1회에 70만 원이 넘는 스프라바토 나잘 스프레이를 권했다. 나는 실제로 그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 예약을 잡았으나, 거기서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버스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이슈로 인해 그 병원에 갈 수 없었다. 혜화의 'C' 병원의 교수님은, 예약 대기가 1년이 걸려 뒤늦게 방문했다. 3달가량 조울증 명의라는 그분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병원을 다녔지만, 내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즉각적인 입원이 불가해 결국 강남의 원래 병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죽어도 지옥에 갈 것 같았지만, 삶은 더 지옥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내가 병에 걸렸고, 그 많은 약들에 왜 나만 치료저항성을 가졌으며, 왜 혼자 오롯이 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아픔에 함께 슬퍼해주는 주변사람들과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딸을 위하는 부모님을 생각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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