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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감성아빠 Aug 18. 2016

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아빠의 말과 행동

프레임에 갇힌 아빠가 되지 말자

내 아이에게 자존감을 높여주는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자라길 바라고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힘인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길 바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사랑스럽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아이 역시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진다. 아직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아이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취학 전 아이에게는 부모의 영향이 100%라고 말해도 될 정도 막대한 영향력을 준다.




항상 아이를 응원하고 지켜봐 준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첫째 아이는 7살 때《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매일 흥얼거리고 계속 부를 때가 있었다.
“이 노래 어떻게 알았어요?”
“네, 유치원에서 배웠어요.”
“아빠, 이 노래 알아요? 저 이 노래 듣고 싶어요. 들려주세요.”


그렇게 나는 노래를 찾아서 들려주었고 아이는 1시간 가까이를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불렀다. 그 후로 목욕을 하면서, 혼자 놀면서, 산책을 하면서, 엄마·아빠와 함께, 그리고 차 안에서도 이 노래를 목청이 터져라 크게 부르곤 했다. 그렇게 몇 달간을 무한반복으로 수없이 많이 불렀다. 게다가 노래 중간에 “역사는 흐른다.”라는 부분에서는 엄마·아빠가 “역사는 흐른다. 흐른다!”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면 더욱 좋아하곤 했다.

첫째 아이는 흥이 굉장히 많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 음정과 박자가 잘 맞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노래를 썩 잘하지는 않지만 음치는 아니라서 아이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절대 내색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를 때 함께 신나게 불러주고 박수를 쳐주었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


“그래, 노래를 잘 못 부를 수도 있지. 모두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맞아. 밝고 명랑하고, 동물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는 아이잖아!”
“그래. 음악적 재능이 없을 수도 있지. 저렇게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아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지만 우리는 ‘노래를 왜 이렇게 못해!’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못한다는 말보다는 이렇게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을 즐기는 것에 칭찬과 격려를 보냈다. 아이는 귀가 따갑도록 무한반복으로 이 노래를 듣고 불렀지만, 우리는 아이를 응원하고 지켜봐 주었다.

그렇게 아이가 8살로 들어서는 어느 날 이 노래를 부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 노래가 내 귀에 이상하게 들렸다. ‘어! 원래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자세히 듣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아이는 노래의 음정과 박자를 거의 정확하게 부르고 있어서 나는 순간 놀랬다. 이제 노래를 잘 부르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불러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음정 박자가 맞지 않던 아이가 그렇게 음정 박자가 정확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뿌듯했다.




섣불리 아이를 규정하는 프레임 속에 가두지 않는다.

만약에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 “음치라서 노래하면 안 되겠네요!”, “노래가 그게 뭐예요. 음정 박자가 그게 아니잖아요.” 또는 “노래 정말 못 들어주겠어요. 그만 불러요.”라고 말했다면, 아이는 여전히 음정 박자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틀인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프레임 속에 갇혀서 생각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아이에게 “음치 또는 박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줬다면, 그리고 응원하지 않고 아빠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이는 “나는 노래를 못하는 음치야.”, “내 주제에 무슨 노래를 부르겠어.”라고 생각하고 노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노래를 부르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성장하지도 않은 아이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부모는 스스로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아이를 규정을 할 때가 있다. '넌 운동을 못해.', '넌 노래를 못해.', '넌 수학을 못해.', '넌 그림을 못 그려.', '왜 그렇게 못해.' 등 떠올려보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주면 아이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흔들어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섣불리 ‘아이를 규정하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갇힌 생각을 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아빠의 말과 행동 속에 답이 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아이에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 ‘내가 사랑받고 있고, 나는 특별한 아이야!’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무리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부모가 ‘왜 이렇게 못해.’, ‘그것밖에 못해.’, ‘다른 아이는 잘하는데 넌 왜 못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항상 부족하게만 바라보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또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보다는 긍정의 반응과 호응을 하고 응원해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아빠의 긍정의 말과 행동 속에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를 부정의 프레임 속에 가두지 말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서 뛰쳐나와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가 더욱 사랑스럽고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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