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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May 10. 2024

개미에게 배우라

Go to the ant and learn from it.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은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개미에게 배우라'라는 만화책이었다. 기독교 서적이었는데 성경에 나온 말씀들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만화로 풀어놓은 책이었다. 내용 중에 한 구절이 있었는데 책 제목처럼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우라는 구절이었다. 요즘 누군가를 '개미'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열심을 칭찬하는 말이기보다는 물질적으로 빈곤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모욕적인 insult가 될 수도 있는 말일 것이다.


'개미에게서 어떻게 지혜를 얻으라는 거지?' 어린 나의 마음에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내용이 있는 구절의 성경을 펼쳤다. 물론 영어 성경으로 펼쳤다. 나는 당시에 집 외에 밖에서 하는 모든 활동에서는 영어를 빨리 익히겠다는 목표 하나로 열심히 '한국어 멀리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도 영어 예배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 성경책은 반은 한국어, 반은 영어로 되어있어서 영어 공부를 하는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꼭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성경에는 에 도움이 되는 지혜의 말씀도 많고, 특히 영한 성경은 영어 번역도 쉽게 되어있기 때문에 영어 공부로도  추천한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영어와 한글로 친절하게 쓰여있는 책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펼친 성경의 구절은 어린 나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Go to the ant, you sluggard; consider its ways and be wise!'

'How long will you lie there, you sluggard?  When will you get up from your sleep? A little sleep, a little slumber, a little folding of the hands to rest—and poverty will come on you like a thief and scarcity like an armed man.'



'조금만 자고, 조금만 나태하라고? 아니면 가난이 강도같이 온다고?'

나는 동생과 엄마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연고지도 없었지만 다행히 친할머니께서 미국에서 조금 허름하지만 하숙집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나름 내방도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가 없어서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리는 마켓도 걸어 다녔어야 했을 때도 같이 재밌게 대화하며 운동삼아 걸었었다. 그 후에 방 하나 딸린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살게 될 때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부끄러웠던 적도 없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부터 부모님은 항상 열심히 일하셨고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려고 노력하셨던 것을 항상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가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크게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 1년쯤 돼 갈 때 중고차를 저렴하게 구하셨다며 엄마가 91년도 캠리를 집에 가져오셨었다. 10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차였고 툭하면 길가에서 멈춰버리는 말썽쟁이 엉터리 차였지만 우리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발이 돼주어서 고마운 차였다. 문을 열면 연결되어 있는 안전벨트가 레일을 타고 움직여 자동으로 벨트를 해준다며 어린 마음에 박수를 치며 신기해했었다. 그랬던 이 고마운 차가 딱 한번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엄마가 퇴근을 일찍 하셔서 방과 후에 나와 동생을 데리러 오셨었다. 차 타고 빨리 집에 갈 생각에 신나게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중 4차선 도로에서 좌회전하려고 intersection(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 말썽꾸러기 캠리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고 이내 시동이 꺼져버렸다. 주위에는 방과 후라 학교 친구들도 걸어서 집에 가고 있었고, 교차로에 서 있는 우리 차에게 자동차 경적은 물론이고 미국 오자 마자 제일 먼저 배웠던 온갖 욕설들을 그 순간 다 들었던 것 같다. 그 짧은 60여 초의 순간은 나에게는 60분 아니 60시간 같았다. 엄마는 열심히 시동을 다시 걸고 계셨다. '열 아들 안 부러운 딸'이라며 항상 나를 부르던 엄마를 나는 그 순간 배신하고 동생에게 외쳤다.


"엎드려!!!!!"


어린 마음에 그 순간이 동생도 창피했는지 나와 함께 차 아래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그 짧지만 긴 순간동안 가난에 대해 처음 생각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은 모두 열심히 사는데 우리는 가난하지? 우리 차는 이모양이지?'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던 것 같다. 내 얼굴에는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없는 것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열심히 시동을 거시던 엄마가 이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기 시작하셨다. 와중에도 동생이 높이 묶은 세일러문 머리가 보인다며 숙이라고 하는 나의 모습이 웃겼던 같다. 그리곤 나에게도 잠깐 찾아왔던 두려움의 안개가 빠르게 걷어졌고 엄마에게 그만 웃고 빨리 시동 좀 걸으라며 농담도 같이 웃었다. 엄마의 열심?으로 시동은 이내 다시 걸렸고 같이 돌아오는 안에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고 지금도 회상하며 그때에 일을 추억한다.


그 당시 우리는 가난한 이민자였다. 아무 연고지도 없이, 아무 자본도 없이 미국에 이민을 갔던 이민자 가족이 얼마나 풍족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 상황 속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개미처럼 일하고 노력하면 큰사람이 될 수 있다고 오히려 나에게 꿈을 심어주시고 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나도 계속 성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자녀들에게도 이 배움을 계속 전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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