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션표 seanpyo Mar 05. 2024

몽골, 초원을 걷다

몽골에서 만나는 일곱가지 경험 : 초원


'너무 빨리 걷지 마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


네팔의 속담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걸어본 사람들은 열이면 열 한결같이 말한다.


“걸음이 너무 빨라요.”


아무래도 도시 여행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이 골목 다음에 무엇이 있을까?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만나고 싶은 조급함에 걸음이 빨라진 것이다. 또 하나는 사진 때문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일행들보다 처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빨리 걸어가 촬영을 마치고 일행들과 보폭을 맞추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여행과 사진에 빠져 이삼십 대를 보내고 이제 더 이상 카메라를 두세 개씩 주렁주렁 들고 다니며 쫓기듯 여행하지 않게 되었지만 걸음걸이는 그대로 남아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남보다 빠른 속도로 앞서 걷다가 멈춰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고쳐보려고 노력해도 영 쉽지 않다. 이 버릇은 교정을 포기하고 그냥 '나 다움'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도시에서는 걸음뿐 아니라 생각도 삶의 방식에도 남들과의 보폭이 중요하다. 먼저 가도 늦어도 눈에 띈다. 늘 남과 비교하고 의식한다.




그런데 초원에서는 빨리 걸어도, 천천히 걸어도 상관없다. 걸음 속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지평선을 향해 제 아무리 빨리 걸어봐야 제자리일 뿐이다. 초원 위의 걸음은 나에게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장 자크 루소 <고백록>



초원의 걷기는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서로 멀찍이 떨어져 일정 시간 말없이 걷는 것도 추천한다. 입을 다물면 코로 호흡하는 것이 가능하다. 코로 호흡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그러니 초원에서는 잠시 침묵할 것. 특히, 침묵은 보다 많은 감각을 깨어나게 한다. 시각은 물론이고 소리, 바람, 땅에서 전해지는 감각까지. 초원을 걷는 동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이나 잡념은 버리고 오롯이 걷는 순간을 인식하고 즐기자.








4월 출간 예정인 몽골여행에세이(저자 표현준)의 일부 원고입니다.




이전 04화 몽골, 초원의 색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