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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Feb 14. 2024

명절에 시댁에 가고 싶지 않다고요?

감사편지. 다섯 번째


아이들이 본집으로 다 돌아간 설 연휴 마지막날인 오늘에야 동태 전을 부칩니다. 


명절에는 기름냄새가 나야 한다는 남편의 지론이 있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전은  내일. 내일. 미루다 오늘에야 냉장고에서 끄집어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에 가느니 이혼을 택한다'는 극단인 내용부터 '며느리 사표 제출합니다' 등등의 다양한 사연들을  글로써 접하게 됩니다.

불편한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소용돌이 칠만큼 시댁에 온다는 게 힘든 걸까요?


도 '시'자가 들어가서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난무한 시댁식구. 시어머니지라 궁금했습니다.

명절이면 기도에서  이른 새벽에 발하여 구미까지 몇 시간을 달려오는 큰 며늘애에게 말했습니다.


"시댁에 오는 것이 죽는 거같이 싫다는 며느리들이 많던데. 혜*이는  즐겁게 오는 거 같은데 어떠니?"

"전 시댁 오는 거 좋아요. 그렇잖아도 직장동료들이  우리 시댁 같으면 본인들도 자주 가겠다고 그래요"

"사실 우리 한 달에 한 번꼴로 구미에 오고 있는 거 같아. 10분 거리에 사시는 처가댁보다 여길 더 자주 오게 되네. 여행하는 기분으로 힐링하러 오는 거지"


큰애가 거듭니다.

 그렇군요.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가족모임이 이루어졌답니다.

(가모임부터 국내여행. 해외여행까지)

만약 며늘애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쉽습니다.


시 어머니가 되고 보니 지나간 며느리였던 기억 속 저자주 끄집어 내 봅니다.

명절에 시댁에 가는 건 그야말로 교통지옥이었답니다. 눈이 온 세상을 덮었던 어느 겨울에는 꼬박 18시간을 도로에서 보낸 적도 있었죠.


피곤에 찌든 남편은 곧바로 자유시간이지만, 20가지가 넘는 전 부치기에 바로 투입이 됩니다. 며칠 전부터 손질해서 밑간을 해 놓고 준비를 해 둔 재료들이 해도 해도 끝없이 제공되는 전 부치기의 지옥문으로 들어서지요. 특히 추석이면 전 부치기에 어설픈 저에게 기본 두세 대인 송편 만들기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벽이면 다시 제사상 차리기가 시작되지요. 익숙하지 않으니 멀뚱멀뚱.

얼마나 졸린지. 그냥 자고만 싶었습니다.


이 씨 집안 집성촌인 시댁은 주위 모든 들이  친척이셨습니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았죠.

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시댁식구들이다 보니 나눌 대화거리가 없었습니다. 나이도 제일 어린 데다 자라온 환경도 완전히 다르니 오랜 시간 바로 손위형님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 불편함이 떠 올라  며늘애에게 우리 가족은 최대한 배려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웬만한 음식은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 둡니다.


평상시 며늘애의 기상시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경우 본인이 선택하도록 합니다.

절대 깨우는 법이 없죠.

일주일 힘들게 직장 생활하고 긴 시간 달려온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명절 아침 식사시간은 최대한 10시에 맞춥니다. 둘째가 도착함과 동시에 시작이 되죠. 식사준비는 남편과 내가 하지만 상 차리기와 설거지는 아들과 며늘애가 같이한답니다.


육아로부터의 휴식시간은 철저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빠 껌딱지인 손녀덕에 아들의 육아는 이른 아침 잠깐 이어지지만 곧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와 놀기 쟁탈전 탓에 둘 다 자유로워집니다.


음식 먹기나 원하지 않는 활동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시댁물 흠뻑 담가진 남편의 의견에 맞추지만 가능한 며늘애의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명절 오후에는 꼭 괜찮은 커피숖에 들러 차 한잔을 나눕니다. 장소검색은 며늘애의 몫이죠.


저녁아들들이 준비합니다.

나가서 먹기도 하지만 평상시 잘하는 음식메뉴를 준비합니다. 올해는 큰애가 만든 [매운 돼지갈비찜]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을 부칠 타이밍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한 전은 남편과 저의 메뉴가 될 거 같습니다.  전은 무조건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는 남편의 원칙 탓입니다.


꼭두새벽 귀성길에 오른 큰애네 차량 뒷 트렁크에 미리 만들어둔 식혜랑 반찬들을 실려 보내고 고된(?) 시어머니의 역할은 끝이 났습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갯소리가 잠시 공감되는 순간입니다.

다음에는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준비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혜*아!


즐겁게 시댁에 온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때론 너를 배려한다고 하는 것이 너에게 소외감을 주는 건 아닐까 가끔씩 생각을 해.


예를 들면 네가 혼자서 방에서 쉬고 있을 때 내가 방문을 살짝 닫아주잖아. 우리들은 아침형이라 거실에서 시끌벅적이잖니. 다들 목소리는 왜 그리 큰지. 가끔 티브이소리까지 요란한 집이다 보니 네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맘에서 그런 건데. 혹 우리들의 대화에 어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들은 다 오래도록 함께한 가족이지만 너는 혼자 우리 집으로 온 거잖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긴 시간이 있는데 가끔씩은 어색하고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혜*아.

어쩔 수 없는 엄마라 나도 모르게 아들 편일 때가 있어. 딸 같은 며느리가 있다지만 확실한 건 딸이 아니라는 건 인정하고 가야지.

아마 친정엄마도 그런 맘이실 거야.


난 그래서 너에게 딸 같다고 말하지 않을래.

혹시나 기대하면서 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백번 양보해도 너는 나의 딸은 아니니까.


우리 그냥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배려하면서 살아보자.

그래도 언제든 네 손 잡아줄 수 있고, 언제든 널 안아줄 수 있어.

그냥 내 며느리여서 고마워.

사랑해.


2024년 2월  명절 연휴 마지막날. 시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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