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잘 지내셨죠?'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솔' 톤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남편에겐 '착한 선생님'으로 쭉 기억되는 분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갑'과 '을'의 가족입니다.
22년 전, 이분을 직장동료로 만났습니다.
첫 보육교사의 길을 걷게 된 이분을 주임이었던 제가 도움을 주면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바다의 별 어린이집]과의 동행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녀들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식구'가 아닌'가족'이 되었습니다.
늘 함께하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때론 다른 어린이집에 근무를 하기도 했고. 잠시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며칠 전 몇 개월 만에 전화가 온 겁니다.
'어린이집 근무는?'
'그만두었어요. 어린이집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누구를 위한 보육인지...'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그냥 본인의 '보육에 대한 내적갈등'이 심해서 도저히 근무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제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신정* 선생님.
회사원에서 보육교사로서의 첫 도전 시점에 저랑 만났어요.
밝았지만 가볍지 않은 신중함이 있는 '참한 아가씨'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성품을 지닌, 예의 바르고 생각이 깊었던 선생님이었지요.
그때의 긴 생머리가 지금까지도 잘 어울려요.
선생님은 여전히 예쁘고 날씬하고 단아한 옷차림이죠.
선생님.
기억나나요?
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다른 선생님부부와 함께 천생산으로 등산을 갔었어요.
그리고 삼겹살파티를 한 거 같아요.
안동봄소풍과 함께 이사장님이 기억하는 어린이집에 대한 소중한 추억인가 봐요.
지금도 선생님 남편과 함께 집에 한번 오라고 자주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선생님.
선생님은 어린이집에 근무를 하면서도 제일 우선순위를 '가족'에게 두었었지요.
선생님의 현 보육현장에 대한 내적갈등은 선생님만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저 역시 어린이집을 그만둔 결정적인 요인은 원아모집을 위해 부모들의 황당한 요구에 휘둘리는 보육현장이 용납되지 않아서였어요.
요즘 젊은 엄마들의 육아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의식들이 많이 바뀌어서 더 그럴 거예요.
제가 이런 이야길 자주 했었지요.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좋아서 하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근무하면서 자아성취감을 경험해 보세요.'
아마 저의 [일]에 대한 견해가 선생님에게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거예요.
선생님과의 추억을 꺼내보다 보니 이런 글을 적어 놓았더군요
가족이란 단어 참 좋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갑과 을' 절대 가족으로 불가능하다고요.
그래도 가족으로 남고파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잠시 '그만할래' 해보았지만 그래도 다시 해 보렵니다.
누군가 가만히 있어도 멋졌던 저로 돌아가라고 합디다.
헤어져 있어도
보고 싶고
궁금하고
알뜰살뜰 챙겨주면서
그렇게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렵니다.
가끔씩은 아웅다웅,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다시 돌아서 웃어줄 수 있는 가족으로 남겠습니다.
2013. 02. 01 어린이집 발표회를 마치고 ᆞ
선생님.
오랜 시간을 '갑'과 '을'로 계약서를 작성했었지만, 우린 가족으로 남았어요.
선생님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남달랐기에 지금 저와도 가족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 지금까지 잘하셨어요.
아내도, 엄마도, 선생님도, 그리고 또 다른 역할들도...
선생님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기를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2024년 3월 20일 바다의 별 가족 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