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Apr 13. 2024

답이 늦었어요.

감사편지 열다섯 번째.  저도 고슴도치 엄마라서.

평생 처음 도박을 했습니다.

남들 다하는 로또 한 장 내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는데, '청도 소싸움 우권구매표'를 구입했습니다.

첫 판에 투자금액의 두 배를 배당금으로 받았습니다. 자그마치 2,000원을 투자해서 2,400원을 벌었습니다.


이른 아침. 배달된 아이스박스를 챙겨 들고 둘째의 즉흥 제안에 가족이 청도로 향했습니다. 

식사 도중에 결제 카드를 챙겨가는 대기자 끝이 안 보이는 육회비빔밥 한 그릇씩을 뚝딱 해 치우고, '소싸움장'으로 습니다.


 '청도'는 여러 가지 일정으로 자주 곳이지만 투자금을 건 소싸움을 보는 직히 다른 재미가 있긴 했습니다.

( 투기와 동물학대가 아니냐고 고개를 저었던 저랍니다.)


두 번째 투자금 5,000원은 2분 만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렸지만, 두둑해진 둘째의 배당금으로 저의 주머니에도 만 원짜리 지폐 몆 장이 채워집니다. 저의 도박은 이렇게 유쾌하게 끝입니다.


늦은 벚꽃 휘날리는 도로를 드라이버 하는 동안 둘째의 입담은 쉬질 않습니다.


"엄마 내일 헌금은 해결되었네. 꼭 만원만 해야 해."

"자네 좋겠네. 헌금까지 챙겨주는 아들도 있고 세상 편한 사람이여"

"음~~ 그렇지. 난 왕비로 살 팔자랍니다. 나의 노년이 이렇게 멋질 줄이야"

"엄마! 난 알고 있었어. 엄마의 노년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내가 반드시 성공할 거였으니까"

"나도 알고 있었어. 항상 널 믿었으니까"


구미로 돌아오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에도 우리들의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었지만, 짧지만 할거 다한 후다닥 청도여행은 마무리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발행 즉시 읽으려 애쓰는 브런치스토리 작가님 몇 분이 계십니다.

오늘도 저를 보석 같은 작가라 소개해주는 '청년클레어' 작가님의 '악플'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열다섯 번째 감사편지 적어봅니다.



j님께.


지난주 제 앞자리에 앉은 j님의 예쁜 두 따님을 만났습니다.

첫째인지, 둘째인지 옆모습이 엄마랑 똑 닮았더군요. 나도 몰래 두 손을 어깨에 올렸답니다.


"엄마랑 똑 닮았구나. 너무 예쁘네. 만나서 반가워"


긴 이야길 나눌 틈도 없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할까 쉽군요.


j님.

20년 가까운 시간 공적인 일 이외에 제가 먼저 j님을 향해 말을 건 수는 아마 두어 번도 안 될 거 같습니다.


혈기왕성했던 우리의 40대 초반이었요.

님과 굉장히 친한 듯했던 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었죠.

그때 j님이 제게 물었어요.

'왜 말없이 웃기만 하느냐'라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우린 운명처럼 다른 공동체에서 다시 만났어요.

먼저 적응을 하고 있던 저를 보며 너무나 반가워하셨지요. 그때도 저는 눈인사만 했을 거예요.


혹 기억나시나요?

어느 날엔가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저한테 화를 내셨죠.

왜 아는 척을 해 주지 않느냐고요. 왜 반가워하지 않고 모른 척하느냐고요.

그때도 저는 아무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혹시 희망(둘째 이름)이 소문날까 봐 그러세요?


j님의 그 한마디는 정말 긴 시간을 제가 마음의 모든 빗장을 잠그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j님과 연결된 모든 관계는 한치의 허용도 용납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해되지 않는 저의 행동 때문에 그동안 많이 불편하셨을 거예요.


이제야 그 질문에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시절. 희망이의 사춘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뒷담화의 소재거리로 충분했을 거예요.

큰아이가 지금도 그러죠. 

10대의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였다고.


 둘째 오빠 때문에 늘 시골마을 아줌마들의 쑥덕거림(엄마만 느끼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는)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친정엄마를 보면서 10대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도 여전히 끝난 거 같지 않은 친정엄마의 고통을, 엄마의 붕어빵인 저도 짊어지고 가야 할 거 같은 불안에 눈물의 기도를 쉬지 않을 때였지요.


j님.

그래서 그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마지막 제가 떠나올 때 들었던 분노의 메시지는 우리 아이들도 들었고, 많은 분들과 함께 j님도 분명히 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반가운 척,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더라면 더 나은 관계가 되었을까요?


j님.

박철*목사님 기억하고 계시죠?

그분이 늘 해 주시던 축복의 메시지처럼 지금은 저의 모든 필요를 이 희망이를 통해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많이 늦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답해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쉬지 않고 기도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청소년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모든 상황 속에서 잘 이겨내 주시고, 건강해 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빨리 제 맘을 전하지 못한 저의 옹졸함도 사과드립니다.

늘 영육 간에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2024년 4월 13일 희망이 엄마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갑'과 '을'의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