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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Apr 20. 2024

나 이러고 살아요.

감사편지 열일곱번째 .  이건 사위도 안 준다는데


드레스코드는 이랬습니다.


꽃무늬 화려한 몸빼바지(일명 일바지라고 하던가?)하얀 플리스 잠바걸쳤습니다.

몸빼바지에 딱 어울리는  꽃무늬 파란 장화를 장착하고, 자외선 완전 차단되는 챙 넓은 모자로 꽁꽁 동여매고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큼지막한 장바구니 하나 들고 깔깔대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쑥국타령이 2월 말부터 시작되었지만, 쌀쌀했던 봄날씨 탓에 내일 내일 미루다가 옆집부부와 함께 쑥을 캐서 돌아오는 중이었답니다.


돌담집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 보니 하원 중인 노란색 어린이집차량이 다가옵니다.

어! 익숙한 어린이집 이름입니다.

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창문이 스윽 내려오고 반가운 얼굴은 동그랗게 뜬 눈만 보였습니다.

한참 만에야


"어머 원장님"

"하하하! 나 이러고 살아요."


순간

'아차 이러는 게 맞나? 학부모님 앞에서.'


"원장님! 원장님 팔자가 최고네요!"


원생을 부모님께 인계하던 선생님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차량에 탑승을 합니다.


"원장님 이 동네에 사셨군요. 시내에 나오시면  꼭 전화 주세요. 식사 대접할게요"

"네 그럴게요"


신나게 서로 두 손을 흔들고 헤어졌습니다.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봄나물들을 씻고 삶고 요리를 하다 보면


'이 쑥국 한 그릇 드시러 오라 할까?

머위나물 무친 거 한 통 담아서 갖다 드려?


아침마다 남편은 두릅을 따서 탁자에 올려둡니다.

한철 잠깐 맛볼 수 있기에 지퍼백에 차곡차곡 잘 담아 두다 보면


'이 두릅 드실 건지 연락해 볼까?'

오늘 첫 수확한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는데 전 부쳐서 한쪽 갖다 드려?


어린이집을 하면서 집밥을 준비해서 먹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언가 새로운 음식이 준비되면 이분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생각만 무성하다가 오늘 하루도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쑥. 참나물
마당에 심어놓은 머위나물 햇순
봄나물전 (두릅. 부추. 고사리. 참나물)
봄나물 무침

진* 어린이집 원장님.


날씨가 이젠 제법 더워졌어요.

딸기밭 견학은 다녀왔을 테고 봄소풍은 다녀왔나요?

어수선했을 신학기도 이젠 많이 안정되었겠지요.


많은 원장님들께서 신학기 신입원아가 없다고 걱정하시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원장님. 내 말 좀 들어봐.

글쎄~~~~~~"


"자기야. 어제는 아이가 혼자서 어졌는데. 오늘 cctv 보러 오신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 모임엔 못 가게 되었네"


저에게 이런저런 하소연들을 하시는 걸 보면 아마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동병상련의 맘으로 조금 더 공감하리라 생각하시는 거겠지요.


원장님!


제가 어린이집을 정리할 때 제 맘 토닥여주던 원장님이 생각나네요.

전복죽 한 그릇씩 앞에 두고 죽이 다 식어가도록 긴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었지요.


앞으로 무얼 하며 좀 더 보람된 삶을 살아갈 건지.

남아있는 삶에 대하여 서로 격려 아끼지 않았었지요.


원장님.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만날 때마다 물어보셨요.


그래요.

일주일 중 2.3일은 이 모습으로 지내요.

요즘은 그래도 크림 진하게 바르고 모자는 꼭 눌러쓴답니다.


그리고 꿈꾸던 대로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자원봉사지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아! 그리고 'CTS 권사합창단원'이 되었어요.

우스갯소리로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그러나요? ㅎㅎ


원장님!


지나시는 길에 들리세요.

시원한 냉커피는 언제든 준비할 수 있답니다.

잠시 쉴 타임이 필요하시다면 그네에 앉아 쉬어 가시도록 마당 예쁘게 꾸며놓을게요.


저도 원장님 사 주시는 점심 먹고 싶을 때 연락드릴게요.


원장님!

오래도록 그곳에서 유아교육자로 살아내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24년 4월 19일 학상리에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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