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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17. 2024

나의 '기둥'이어서

감사편지 마흔일곱 번째. 고맙고 미안해.

"늑대가 '후' 하고 불었더니 아기돼지가 벽돌집으로 날아갔어요"


한동안 손녀가 '아기 돼지 삼 형제' 책을 펴 들고 그림을 보며 동화를 들려줍니다. 집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아기돼지 삼 형제'는 손녀의 상상 속에서 늑대와 함께 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분주합니다. 녹음기를 준비하고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녹음을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아기돼지 삼 형제'를 연극으로 공연하기로 했답니다. 물론 각본도 큰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작성했고, 연출도 큰아이의 몫입니다. 며칠의 맹연습을 거친 후 공연은 성공적이었나 봅니다.

구미로 이사를 오고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께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시면서 '아기돼지 삼 형제 공연을 잊을 수 없다'라고 적어 주셨습니다.


남편이 없는 생일에 어린이집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분명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합니다. 갑자기 불이 켜지고 과자로만 잘 차려진 생일상이 눈앞에 있습니다. 지쳐있는 엄마를 위하여 '아기돼지 심형제'를 동생과 함께 공연을 해줍니다. 아마 말 안 듣는 동생을 설득하며 준비했을 겁니다.

상위엔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가방과 가느다란 벨트였습니다.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러 동생과 먼 거리를 걸어 백화점에 갔답니다. 마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모습이 기특해서 판매원 아줌마가 가방을 추천해 주시면서 벨트를 선물해 주셨다고 합니.


아이들의 작은방에는 아빠가 직접 만든 2층 원목 침대가 있었고, 1층 침대 벽 쪽에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동화책을 줄지어 꽂아 두었습니다. 큰 아이가 유독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좋아했나 봅니다. 손녀가 '아기돼지 삼 형제'를 좋아하는 건 아빠가 자주 들려주었기 때문이겠지요.




나의 사랑하는 기둥!
네가 마흔 번째 나의 생일에 준 편지가, 빚이 바랜 채 책상 모서리에 지금도 자리 잡고 있단다.
억만 분이 훨씬 넘는 확률로 우린 가족이 되었다고 적혀있구나. 너의 이 편지는 엄마의 마음이 지칠 때마다 비타민이 되어주었지. 아마 엄마의 마지막까지 그럴 거 같아.
 

기둥아!
넌 언제나 엄마의 친구였고 상담자였고 해결사였고 위로자였었지
네가 그랬듯이 엄마랑 같이 영화보아주는 아들 잘 없겠지?
엄마랑 같이 파스타를 먹어주고, 엄마랑 같은 뮤지컬을 보고 싶어 해 주고 티켓 끊어 오페라하우스까지 차 태워 안내하던 너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하기 위해 공모전에 도전했던 너. 네가 보내온 가방 받던 날  그 기분이란...  
아디다스맨이 되었을 때 엄마신발 제일 먼저 사 오던 너.
거의 삼십 년 전 네가 엄마 학교 졸업하던 날, 동생이랑 사 주었던 전자레인지 얼마 전까지 우리 집 부엌에 있었단다
엄마의 모든 도전에 기꺼이 손뼉 치며 아빨 설득해 주던 너.
엄말 위해  서울로 학교가길 양보했던 너.  덕분에 엄만 공부할 수 있었어.


나의 기둥!

나의 기둥 하느라 혹 버겁지 않았니? 힘들었을 거야. 고맙지만 너무 미안해.

네가 엄마한테 전했던 주옥같은 말들이 엄마의 입술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시 전달된다는 거 엄마가 꼭 말하고 싶어.

누군가 '아들 잘 키워 장가보내고 섭섭하지 않냐' 엄마에게 물어보더라. 당연히 아니라고 했어.

네가 서른이 되기도 전에 엄마에게 늘 그랬잖아. '결혼하면 아내가 우선이 될 테니 엄마 못 챙기더라도 절대 섭섭해하면 안 된다'고.

엄마도 너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야. 그래도 우리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나잖아. 함께 해주는 며늘아이에게도 너무 고맙고.


나의 기둥.

계획대로 이루어가는 너를 보면 엄마는 너무나 자랑스러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널 위해 기도로 응원하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 잠시 쉬어가라 엄마의 어깨를 내어주는 것뿐이야.

사랑해! 그리고 한 번 더 고맙고 미안해!

그리고 네가 기억한다는 이 말씀. 나도 늘 기억할게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라. (잠언 16장 9절)


2024년 12월 17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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