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참 잘했어!

감사편지 마흔여덟 번째. 섬세한 나에게

by 바다의별
너무 잘하는데.



가족톡에 올라온 손녀의 첫 어린이집 발표회 영상에 온 가족이 감탄을 합니다. 다들 고슴도치 가족이라 누가보아도 손녀의 모습이 최고라 합니다.

몇 번씩이나 영상을 보며 깔깔거리다 보니 오래된 직업적 감각인지, 섬세한 성격 탓인지 손녀의 목서리가 아닌 선생님의 경쾌한 음성이 쉬지 않고 들려옵니다.


"예뻐 예뻐!"

"좀 더 크게 해 보자"

"ㅇㅇ아! 너무 잘하는데"


손녀가 신나게 흔들든 엉덩이를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하필 손녀 뒤에서 다음 공연을 위한 무언가 불쑥하고 배치를 하나 봅니다.

호기심이 작동한 손녀의 시선과 함께 두 손은 머리 위에서 멈추고 배꼽까지 보입니다.


"별아. 별아."


부드럽지만 리드미컬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손녀의 엉덩이와 노래는 잔뜩 감긴 테이프가 풀리듯 다시 작동을 합니다.


단톡방에 글을 올립니다.


'별이 선생님 엄청 맘에 드네. 아이들이 신나게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응원을 해주시는데. 참 좋은 선생님이야.'



운영하던 어린이집에서 '발표회리허설'이 있는 날이면 목소리가 다 잠기도록 응원의 메시지를 쏟아내던 기억이 납니다.


ㅇㅇ아. 너무 잘하는데.


그 한마디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겨우 움직이든 엉덩이가 실룩대기 시작합니다.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듯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칭찬은 아이들을 춤추게 합니다.


사실 저도 칭찬하면 춤춥니다.


※ '별'이는 손녀의 별칭입니다.




누구보다 섬세한 나에게!!


며칠 전 고등부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잖아. 그때 입이 무겁기가 바위덩이 같은 머슴애들에게 물었어.


"얘들아. 다음 후배들을 위하여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니? 3년 동안 함께 했으니 솔직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


선생님 참 섬세하세요


늘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던 듬직한 ㅇㅇ이의 말에 모두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입을 열었어.

나도 순간 놀랐지만 바로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지. '내가 진짜 섬세하구나' 다시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어.

집에 까지 가는 동안 머슴애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나의 섬세함이 그들에게 감동이었다는 거였지.


너의 가장 큰 장점인 '섬세함' '예민함'이라 부정해야 했던 꽤 긴 시간 동안 너의 정체성이 흔들거리기도 했었어.

기억나잖아.

타고난 섬세함 덕에 못하는 게 별로 없었어. 한번 설명을 듣거나, 보면 웬만한 건 바로 해냈어.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지만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은 "나의 수제자야"라고 말씀을 하셨지.

둘째 오빠의 웅변하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다 난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어.

대학교땐 연구실 조교였던 내가 실기수업을 도 맡아했잖아. 핑크빛 망사천으로 감싼 사탕부케는 그 이후 오랫동안 내가 잘 활용했었지. 꽃꽂이도 그랬어.


그런데 어렸을 적.

내 방에 그냥 수북이 쌓여가던 상장들을 보면서, 정말 무심히 종이 한 장이 더 보태진 것처럼 느껴졌었지.

슬펐어.


뒷담화의 도마 위에 올라앉은 아버지와 오빠를 대신해서 모든 감정의 에너지들을 쏟아내느라, 어떤 상에도 '잘했어' 칭찬할 겨를이 없던 초예민한 엄마가 너무 이상했거든. (무조건 싫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정은 아니었어)

험담에 분노하는 엄마를 향한 그때 내가 들은 뒷말들은 "너네 엄마가 너무 예민해서" 였었지.

그래서 예민한 건 무조건 안 좋은 거라 느꼈어.


'난 절대 엄마를 닮지 않을 거야'


이 악물고 살아오느라,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예민함이 아니라 섬세함으로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한 너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쳐 준단다.

정말 잘했어.


너의 섬세함으로 행한 섬김과 배려들. 너이기에 가능한 거였어.

너의 섬세함으로 이루어 낼 많은 것들을 다시 기대한단다.

혹 네가 별나게 예민한 거라 할지라도 난 너를 사랑해!

난 나 이니까.

그리고 이 말 잊지 마.


너. 그동안 참 잘했어!


2024년 12월 24일 나를 사랑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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