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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Dec 16. 2021

미국: 약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

그래도 이 글에서는 미국 로스쿨에서 느낀 아름다운 점을 하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다름 아닌 기부문화다.


미국 땅을 밟기 전에도 미국에 기부가 성행(?)한다는 것은 대강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기부를 하고 또 자신이 젊었을 때 받았던 장학 혜택을 자랑스러워하는 듯 했다. 예를 들면,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미국의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영국에 보내주는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드라마 <가십걸>의 릴리, <하우스오브카드>의 여주인공클레어의 주된 일은 유명 인사를 초청해서 화려한 펀드레이징 파티를 여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즈로 글로벌 대박을 친 후 가장 신경을 쓴 업무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전 세계의 가난을 퇴치하고 공중보건 시설을 확충하는 일이었다.


* 나는 운이 좋게도 서울대에서 2013년 주최한 강연 참석자로 선발되어 그가 꿈꾸는 미래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객석에서는 기술변화 추이나 창업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의 관심은 기후변화, 인권 등 인류의 가치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윌리엄 게이츠 홀과 빌&멜린타 컴퓨터 사이언스 센터 (출처: washington.edu)



그리고 나는 미국에 와서 빌 게이츠 집안의 혜택을 직접 보게 되었다. 빌 게이츠는 차고에서 윈도우즈를 개발한 이미지 때문에 왠지 자수성가형 인물의 느낌이 있지만, 사실 분류하자면 금수저에 가깝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William H. Gates)는 미국의 유명 로펌인 K&L Gates를 설립한 변호사 중 한 명으로, 자신의 모교인 우리 학교 로스쿨에 상당한 금액을 쾌척하였다. 부인 메리 게이츠(Mary Gates), 딸 리비(Libby)와 크리스티(Kristi)는 학교 이사회(Board of Regents)에 참여하였고, 아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에 기부를 하였다. 그래서 우리 학교 곳곳에는 게이츠 집안의 이름을 딴 건물이 있다. 로스쿨 건물인 윌리엄 게이츠 홀, 학부 행정관인 메리 게이츠 홀, 컴퓨터 사이언스 건물인 빌&멜린다 센터 등등.


덕분에 나는 어마어마하게 여유로운 법학 도서관을 지닌 건물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 법학 도서관은 로스쿨 학생들에게 365일 24시간 개방된다(일반인은 오후 6시까지만 이용 가능한 것 같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워먹을 수 있고, 식수도 항시 공급된다. 빈백도 있기 때문에 여차 하면 노숙도 가능해보인다. 휴대폰 충전기, 노트북 충전기, 독서대(미국인들도 독서대를 쓴다!), 이불 등도 빌려준다.



법학 도서관의 낮과 밤
다양한 종류의 자리들





이 무릉도원 같은 도서관에 앉아있노라면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학교의 법학 사서(Law Librarian)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법학 사서가 무엇일까? 법학사서는 문헌정보학 중에서도 특히 법학 관련 문헌에 특화된 공부를 하신 분들이다. 법학 도서관에서 근무하거나 법학 연구방법론을 가르치거나 로펌에 채용되어서 근무를 한다.


이런 전문가 집단이 잘 되어있는 이유 중 하나는 법학 관련 문헌이 혼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이나 '법제처 법령정보포털'을 미국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1780년대(혹은 그 이전)부터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고, 연방과 주, 카운티 등으로 나뉘어 의회와 법원 체계가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수백 명의 변호사들이 협력하여 구축해 놓은 유료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법학 사서는 문서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을 도와주는 안내자다. 이 분들은 언제든지 학생과 교수님에게 대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고, 고민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1시간 넘게 상담을 하며 함께 자료를 찾아준다.



걱정말고 물어보세요! 표지



학교 도서관에는 수십년된 의회보고서와 판례들이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다. 이 먼지 쌓인 자료를 들춰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혹시 온라인에서 찾지 못하면 여기에 기대볼 수 있다는 것, 이런 유물스러운 자료들을 모두 정리하고 있는 것에 숭고함을 느끼고 왠지 이 집단에 속해서 다행스럽다는 안정감과 자부심마저 갖게 된다. 또한 아시아법이 특화 전공으로 있는 학교여서인지 한국, 중국, 일본 서적도 종종 볼 수 있다.


(좌) 표현의 자유 칸에 꽂혀 있는 한국 문헌들 / (우) 연방 항소법원 판례집



한 해 4만 불이 넘는 등록금을 내니(out of state 기준) 학교 재정만으로 이 정도 시설은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로스쿨은 매년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미국 변호사협회에서 요구하는 커리큘럼 수준을 맞추고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가 보다. 일반적인 대학원들과 달리 직업 학교(Professional school)로 구분되기 때문에 주 정부의 지원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교수님들에게 돌아가는 연구비도 없어 보인다. 학장님의 말에 따르면 안정적 펀딩이 있는 교수님은 딱 1명이라고 하는데, 그마저도 컴퓨터 사이언스와 협력하는 연구실(로봇법 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윌리엄 게이츠의 통큰 기부가 아니었다면 우리 학교 로스쿨이 이런 세계적 수준의 도서관을 갖추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인들은 학생들의 자치활동도 후원한다. 예를 들면, 내가 속한 아시안학생연합회(Asia-Pacific American Law Student Association)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K&L Gates의 후원을 받아 연례 '스피드 네트워킹 파티'라는 것을 한다. 나는 지난 2019년에 K&L Gates의 무척 세련된 사무실에서 훌륭한 다과와 함께 열리는 이 행사에 참석을 했었다. 법원, 시민단체, 연방 정부, 검찰, 로펌, 국선변호인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현직 변호사 2명: 학생 2명으로 10분간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벨이 울리면 옆 테이블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내 짝꿍이 된 인도 출신 친구는 구직자로서의 훌륭한 질문을 엄청 빠른 목소리로 했다.


아시안 학생 스피드네트워킹 파티 (출처: UW APALSA)



미국에서는 직업을 네트워크를 통해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시안 등 소수인종은 이 네트워크에 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 쉽게 사람들을 접하게 할 수 있도록 이런 행사를 여는 것이다. 나는 스피드 데이팅 방식의 이 행사가 너무 신기해서 2학년 때에는 연합회의 Vice President로 행사를 기획해 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K&L Gates는 지난 10년 간 장소와 다과 지원을 했고 각각 750불의 예산을 지출하면서 3명의 변호사를 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권한'이라고 한 이유는, 예상 외로 참석하려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내 변호사, 판사, 공정거래위원회 등 연방 공무원, 검사, ACLU 등의 시민단체 변호사들을 초청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아는 사람을 꽂아주려는(?) 사람들도 많았고, 왜 나를 부르지 않았냐며 서운하다는 투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내가 기획하던 해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법무실장(General Legal Counsel)이 직접 참석해 학생들과 네트워킹을 했다. 750불이라는 예산이 기업에게 크지는 않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 안정적 스폰서십이 행사의 인지도를 높이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역사회에 열심히 기여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 혜택을 받게 되는 듯하다. 특히 미국은 주 단위로 구성된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시험을 주관하고 변호사를 징계하며 판사 선거에도 깊게 관여하기 때문에, 워싱턴 주의 작은 변호사 업계에서 좋은 명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돕는다는 것은 명성에 아주 도움이 된다.


나는 두 건의 좋은 사례를 보았다. 첫 번째는, 워싱턴 주의 한인변호사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우리 스피드 네트워킹 파티에도 매년 참석하던 John H. Chun 판사가 주 법원에서 연방 법원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9월 30일,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the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Western District of Washington 판사에 임명되었고 상원의 인준을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는, 워싱턴 주 남아시아변호사협회를 창립하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기획했던 국선변호인 E. Rania Rampersad이다. Rania는 많은 멘토링 프로그램이 용두사미로 끝난다는 것을 고민한 끝에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멘토와 멘티로 하여금 서로간의 지켜야 할 사항을 작성하도록 하고(예: 멘토는 멘티에게 1달에 1번 만나서 경력 상담을 해준다, 이력서를 검토해준다, 아는 사람을 1명 이상 소개해준다 등) 그 위에 서명까지 하도록 시켜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으면서 Washington State Superior Court의 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가 워싱턴주 변호사협회에 기고한 Power of Mentorship에 따르면, 조지타운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화장실 청소 일을 했었고 훌륭한 멘토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John Chun 판사와 Rania Rampersad 판사 (좌측: 워싱턴주법원, 우측: wsba.org)



이와 더불어 '공익'을 수호하는 일을 하는 변호사(public interest lawyer)를 양성하는 데에도 많은 자원이 모인다. 이민법, 노동법, 환경법, 젠더법, 낙태권법 등에 종사하려는 학생들은 학교에서든 외부기관에서든 각종 public interest law scholarship 또는 fellowship을 받을 수 있다. 학비가 지원되기도 하고 무상 인턴십을 하는 기간 동안의 생활비가 지원되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Public Interest Law Association에서 졸업생의 기부를 받아 조성된 기금을 통해 매 여름방학 10~20명의 학생을 뽑아 5,000불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로펌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일도 매우 흔하다. 듣기로는 대부분의 대형 로펌이 공익소송 전담팀을 운영하며 풀뿌리 단체들과 협력한다고 한다. 공익소송은 당장 이익은 안되지만, 잘하면 로펌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어 장기 투자의 개념이라고. 아래의 사진은 시민단체인 Northwest Justice Project가 대형 로펌 Perkins Coie LLP와 함께 캄보디아 출신 워싱턴 주민에게 내려진 추방명령을 취소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담은 링크드인 포스팅이다.



Northwest Justice Project의 '스폰서 하이라이트'



나는 로스쿨에서 보낸 두 번의 여름 방학 동안 United Nations의 Office of Under-Secretary General와 미국 연방정부의 행정법 연구기관인 Administrative Conference of the United States에서 인턴십을 하였다. 한국 공무원 신분으로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기관에서만 겸직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권은 적었지만 여러가지로 연이 닿아 국제정책, 미국 연방정책을 모두 배워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공익 기여도를 어필하여서 워싱턴 주 한인변호사협회 장학금(3,000불)과 학교 동문회에서 수여하는 Homecoming scholarship(2,000불)을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특히 한인변호사협회에서 받은 SHK Group Scholarship은 시애틀에서 오래 영업하신 한인 회계사분이 매년 기부를 하면서 생긴 장학금으로 내가 아홉 번째 학생이었다고 했다.







기부문화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로스쿨 밖에서의 일상생활도 지역 인사들의 공헌에 빚을 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애틀 아트 뮤지엄의 학생회원이다. 1회 입장료가 29불 정도(특별전 포함)인데, 학생 연간회원권이 45불이니(일반인은 80불) 당연히 회원권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1년이 넘게 미술관이 완전 폐쇄되어 회원권을 쓰지 못했다. 지난 해 코로나 이후 미술관이 열리자마자 한 달음에 뛰어갔다. 그 때 본 전시는 'City of Tomorrow: Jinny Wright and the Art That Shaped a New Seattle'이었다.


지니 라이트(Jinny Wright)는 시애틀 사람들이 SAM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시애틀 아트 뮤지엄을 만드는 데 한 평생을 바친 분이라고 한다. 미술 관련 전문가도 아니었고 큰 부자도 아닌, 평범한 지역 사회봉사자였는데, 1960년대부터 뉴욕에 출장을 가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부자들로부터 기부를 독려해 SAM 콜렉션을 만들었다. SAM의 이사회 일원이 되어 정치인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다운타운 한 복판에 SAM 건물을 짓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녀가 주목한 사람들은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등 아주 유명한 인물로 성장했고 개인적으로 구입했던 작품들도 자신이 죽기 전에 SAM에 기증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코로나에 걸려 투병하다 서거한 후 SAM이 경애의 마음을 담아서 연 추모행사였다.


전시 포스터와 지니 라이트 생전 사진(출처: Seattle Art Museum)



코로나는 지니 라이트의 생명을 데려갔고, 나의 삶에서는 미술관과 내가 사랑했던 Seattle Symphony의 공연, 우리 학교 캠퍼스의 모든 시설, 그리고 음식점과 카페까지 앗아 갔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마음대로 걷고 뛰던 길은 Burke-Gilman Trail이었다.


31km 정도 되는 이 트레일은 University of Washington을 감싸고 서쪽으로는 Ballard까지 동쪽으로는 Bothell이라는 도시까지 이어진다. 높은 나무 사이로 평평하게 조성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과 바다를 모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애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이 길은 1880년대에 토마스 버크(Thomas Burke)라는 판사와 대니얼 길먼(Daniel Gilman)이라는 변호사가 주도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버크-길먼 트레일(출처: UW Museum of History and Industry와 UW Magazine)



토마스 버크 판사는 아주 유복하였던 것 같다. 그가 죽고나서 부인이 부부가 수집해 온 네이티브 어메리칸 예술품들을 워싱턴 주에 기증하였고, 워싱턴 주는 이 컬렉션을 기초로 주의 자연사와 인류사를 정리하는 박물관인 Burke Museum을 설립하였다. Burke Museum은 우리 학교 캠퍼스 내 로스쿨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새롭게 단장한 대형 전시관이 워낙 쾌적하고, 전시 스토리텔링이 좋고, 학생은 무료 입장인 데다가, 1층에서 판매하는 네이티브 어메리칸 빵이 한국의 호떡처럼 맛있어서 종종 찾던 곳이다. 그런데 Burke Museum의 Burke와 Burke-Gilman Trail의 Burke가 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깜짝 놀랐었다. 그 사람은 이 지역에 정말 많은 것을 기여하였구나.


버크 뮤지엄




우리 동네에서는 아무리 작은 공원이라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역 인사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념비와 설명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주변 서점에 가보면 관련 책자도 출판되어 있다.


이는 미국 특유의 으쌰으쌰 인식 덕분인 듯하다. 정부가 기반 시설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서서 만들어보자. 고용시장이 공익을 수호하려는 인재의 수고를 보상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회를 주어보자. 그리고 지역 사회는 그분들의 노력에 뜨거운 감사를 보내고 오래도록 기억한다.


혹자는 기업들이 결국 절세를 하기 위한 것 아니냐, 개인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 혹은 정계에 발들이기 위한 포석 아니냐 등 눈을 흘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이기적(?) 동기가 꼭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 없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 만으로는, 수십년 간 공공 미술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부자들을 설득하고, 풍경 좋은 곳에 모두가 거닐 수 있는 길을 앞장서서 닦고, 조용히 한인 법대생들을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과 재산을 나누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충분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배우들에게 시상을 하듯, 많이 베푸는 이들에게 인정(recognition)이 돌아가야 사회 전체적으로 베풂이 늘어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부문화에 물들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장학금을 기탁하여 어려운 학생들의 성장을 도와야지. 나도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고, 예술가를 후원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을 모으는 데 일조를 해야지.


내가 지닌, 그리고 앞으로 지니게 될 유형적, 무형적 자산은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무수한 장학금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내놓은 것들에 빚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슬기롭게 베풀면서 다음 세대와 교류할 수 있다면. 그렇게 누군가의 행복에 일조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면.


이렇게 둥근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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