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모를 학위를 수집하는 사람
한국에서도 나는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홍대 미대인데 그림을 안 그린다고? 예술학과? 그게 뭐야? 음악, 무용 막 이런 것도 하는거야?" (답: 미술 이론을 한다)
"서울대에서 법학 석사를 한다고? 로스쿨이야? 아니라고? 로스쿨이 아닌 법학 대학원이 있어?" (답: 있다. 로스쿨이 생기먼서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꽤 남아있다. 변호사 시험 자격 없이 공부만을 위한 과정으로, 내가 있을 땐 사시나 행시를 합격한 사람들이 추가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이 다녔다)
미국에서도 미국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듣는다.
"로스쿨인데 JD가 아니라 PhD를 한다고? 처음 들어봤어... 법은 실용과목인데 PhD에서 뭘 배워?" (답: 응... 우리 로스쿨도 과정만 만들어놓고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더라 ^^; )
언젠가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학교 법학 PhD는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내가 이 과정을 선택하게 된 실리적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풀브라이트 합격 전
이미 법학 석사를 받은 데다가 나이도 있고 공무원 하면서 가장 많이 갈고 닦은 것이 법 지식이다보니 나는 장학금에 지원하면서 당연히 '법학'을 희망전공으로 적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미국 로스쿨에는 통상 3종의 학위가 있었다.
J.D. (Juris Doctor): 우리나라의 로스쿨 3년 과정과 같다. 미국 대학 학부에는 법학 전공이 없다. Pre-law 같은 학위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그 학위를 받는다고 로스쿨에 더 가기 쉽거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다른 전공을 한 학생이 로스쿨에 간다.
LL.M. (Master of Law): 해외에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 변호사가 손쉽게 될 수 있도록 1년짜리 교육과정을 마련해둔 것이다. 미국의 변호사 자격은 각 주의 변호사협회가 부여한다. 각 로스쿨은 자신의 LL.M. 학위 과정이 전미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서 요구하는 자격기준을 맞추어 인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ABA가 인증한 로스쿨의 LL.M. 학위과정 졸업생들은 J.D.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에서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S.J.D. 또는 J.S.D. (Doctor of Juridicial Science): J.D.를 법학 박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S.J.D.를 법학 박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S.J.D.는 보통 LL.M.을 이수한 학생들이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경우에 진학하는 학위이다. 3-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LL.M. 기간 동안에는 정신 없이 변호사 시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반면, S.J.D. 과정에선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정해 지도교수와 함께 논문을 쓴다. S.J.D.는 J.D.나 LL.M.과 다르게 변호사 시험 응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풀브라이트는 대학원 지원 전에 먼저 장학생을 뽑는다. 그 후, 장학생이 미국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을 담당자가 도와준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 석사를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박사과정으로 지원을 했어야 했다. 풀브라이트는 J.D.를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인터넷 썰이 있었지만, 공고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기에, 장학금에 붙고 나서 J.D.도 박사급이니 지원하겠다고 부탁해보자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했었다
풀브라이트 합격 후
그런데 합격하고나니, 풀브라이트 측에서 J.D.는 박사과정으로 고려해줄 수 없다는 확고한 답변을, 그것도 미국 풀브라이트 본사 측에 확인을 얻어서 내게 알려주었다. J.D.가 박사급이냐 아니냐보다, '이론 학위(academic degrees)'가 아니란 것이 더 주된 이유 같았다. 고로 나는 미국 로스쿨의 가장 흔한 학위인 J.D.나 LL.M.을 고려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국에는 법학 Ph.D.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미국 전역에는 법학 Ph.D.가 있는 로스쿨이 2019년 기준 4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예일, 버클리(사회학과?와 통합 과정), 밴더빌트(경제학과?와 통합 과정), 워싱턴 주립대(시애틀).
예일대 로스쿨의 Ph.D.가 통상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박사 과정의 모습에 가깝다. 소수 정예의 학생이 풀 펀딩으로 학교를 다니고, 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며 연구와 티칭을 배운다. 그런데 J.D.를 졸업한 학생만(그것도 내부 통신망에 따르면 예일대와 하버드 졸업생으로 한정된다고 한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버클리와 밴더빌트는 타 학과의 박사과정에 통합된 형태로 운용되고 있었고, 워싱턴 주립대는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S.J.D.는 PhD보다 훨씬 흔하고, 풀브라이트의 금지 대상도 아니었기에 나도 당연히 알아 보았다. 그런데 모든 S.J.D. 과정은 미국에서 LL.M.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주더라도 'Common Law countries'(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LL.M.을 받았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LL.M.은 한국 석사가 이미 있어서,
예일 PhD는 미국 JD가 없어서,
SJD는 미국 LLM이 없어서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잡학: 왜 미국 로스쿨은 JD 중심이 되었나
하도 정체성 질문을 받다보니 궁금해서 이 연원을 찾아보았다. The Rise of an Academic Doctorate in Law: Origins Through World War II by Gail J. Hupper 등의 논문을 참고해 다음의 내용을 정리했다.
우리나라에 한의대가 생기기 전부타 한의사가 있었듯이 변호사도 학교 교육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원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조수로 일하던 사람들이 견습 기간을 쌓아 변호사협회에서 자격을 받았다는데, 1800년대 후반부터 각 학교들이 학위 과정을 신설했다. 이 때는 영국 모델을 따라 법학사(LL.B)가 보통의 형태였다고 한다.
1900년대 똑똑한 변호사 후보들이 모인 곳은 당연히 하버드였다. 이 때 하버드는 법학부(LL.B)였다고 한다. 당시 하버드로스쿨 학장은 저명한 법학자인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가 맡고 있었다. 그는 유럽 출장을 다니며 학교들을 둘러본 후에, 미국 법학 이론를 심화시키고 법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Ph.D.) 과정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문학, 수학, 자연과학 등 정통 학과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법학은 직업 학위이지, 학문이 아니다!"라는 것. 또한 당시에도 변호사 자격을 발부할 권한이 있던 일반 변호사들이 4년 짜리 학부 과정을 시험 자격요건으로 삼는 것에도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일반 대학교육+일정 기간의 변호사 사무실 실습'을 하면 변호사 자격을 주는 당시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희망했다. 결국 그 절충선은 비법학 학부(B.A.)를 나와 변호사 사무실 실습 또는 3년의 대학원 실무 중심 교육(JD)을 받으면 변호사 시험 자격을 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로스코 파운드를 비롯한 대학교육 중심론자들은 JD가 B.A.보다 고등의 학위이고 학교가 시험 자격 권한을 '분점'한다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어차피 학교로부터 펀딩을 받는 일반 대학원을 만드는 것은 타 학과의 반대로 불가능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로스쿨은 메디컬스쿨처럼 학교 재정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그렇게 우리나라에도 이식된 3년제 로스쿨 J.D. 과정이 미국의 일반적인 법학 교육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JD 학위의 번역 논란
JD를 '법학 박사'로 소개하면 가끔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3년 로스쿨을 다니면 석사급으로 취급을 하는데 왜 미국 로스쿨 출신은 박사 대우를 해주냐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틀리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학위명에 Doctor가 들어가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법학 박사에 준하는 학위가 미국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S.J.D.는 확실히 법학 박사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 LL.M.을 수료한 외국인 학생들이 주로 입학한다. 미국에서 J.D.를 하는 현지인들은 가끔 추가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LL.M.을 등록하는 경우는 있어도 JD를 받고 SJD를 또 등록하는 경우는 없다 (최소한 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JD만 있어도 교수로 채용되는 데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JD를 한 후 법학 실무(로클럭 등)에 종사하며 논문을 내다가 티칭 잡 마켓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원의 연구 경험을 하며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심리학, 경제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 차라리 다른 학과의 PhD를 간다. 첫째는 학비 때문(타 학과 PhD는 대부분 학비 면제에 월급도 준다)이고, 둘째는 법학이 '추가 3년의 학교 공부를 할 만큼 이론적 깊이기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링거 GRE 투혼
결국 풀브라이트 담당자는 내게 법학을 포기하는 것을 권유했다. 법학 박사 자격 요건이 안되고, 풀브라이트 측에서 나에게 석사로 유학을 가도록 예외를 인정해줄 수도 없으니 차라리 정치학이나 정책학 박사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타 학과 PhD를 가기 위헤 반드시 필요한 GRE 성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GRE를 보는 게 어떻겠니?" 담당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탑티어 학교는 12월에 원서를 마감하지만 다른 학교는 3월까지도 접수를 받으니, 차라리 전공을 바꾸는 게 성공 확률이 높겠다고...
너무 갑작스러웠다. 모든 자료가 다 법학으로 맞추어져있는데, 어떻게 전공분야를 변경한다? 그리고 정치학은 5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데(법학 SJD는 최소 3년 정도 걸린다), 내가 이렇게까지 정치학 공부를 하고 싶나? 그리고 GRE가 그렇게 막 본다고 볼 수 있는 시험인가?
이렇게 담당자와 오래 골머리를 썩었다. 11월쯤 되었을 때 조바심이 나서, 당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링거를 끌고 GRE를 보러가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온갖 Statements를 쓰랴, 학교 정보 찾으랴, GRE를 공부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 안되면 장학금을 날려도 어쩔 수 없다는 반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갑작스러운 PhD 합격 소식
12월의 어느 날, 풀브라이트 담당 선생님이 예전에 연락을 취했던 워싱턴 주립대에서 내가 요건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지원서를 고려해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황급히 지원서를 만들어서 보냈다. 그리고 그리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합격 오퍼 메일을 받았다. 매 년 한 학기 씩 등록금을 면제해주겠다는 약속도 들어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야근하다가 메일을 받고 사무실 책상을 치고 일어서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보았었다. 지원과정에 너무 고생을 한 나머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학교인가, 하고 싶은 공부인가 등은 생각할 겨를 없이, 더 이상 아무런 시험도 지원서 작성도 할 필요 없다는 것이 그저 기뻤다.
이후에 풀브라이트 담당자가 컨택했던 노스웨스턴, 인디애나 블루밍턴 로스쿨 및 몇몇 로스쿨에서도 특별히 S.J.D. 입학을 허가해주겠다는 답장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장학금을 약속한 학교가 UW이었고 (풀브라이트 만으로는 학비를 충당하기가 어려우므로 학교 장학금이 필수적이다), 노스웨스턴이나 인디애나 블루밍턴은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시애틀에 소재한 UW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반드시 Common law countries LL.M.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말만 잘하면" S.J.D 입학을 허가해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특히 영어 논문을 써서 발표한 실적이 있는 경우에는. 나는 당시 홈페이지에 기재된 요건을 다 알아보는 것만도 벅차하던 때라, 그렇게 개별 학교나 교수와 협상을 할 생각까지는 못했고 거의 대부분을 풀브라이트 담당자에게 일임하였다.
미국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문화다. 나는 이제 주변 친구들에게 합격 오퍼가 오면, 다른 곳에서 온 오퍼를 근거로 더 좋은 오퍼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볼 것을, 또는 '난 정말 너희 학교에 가고 싶은데 학비가 너무 비싸서 고민 돼. 혹시 xx 정도 장학금을 줄 수 없을까?'라고 간청할 것을 추천한다. 물어봐서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건방지다고 찍힐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드디어 미국행
그렇게 여러 가지 행운과 우연이 겹쳐서 University of Washington School of Law의 Ph.D.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후회를 많이 했지만 종합적으로는 매우 잘된 선택이었다.
첫째. 대도시에 사는 것은 싱글에게 아주 중요하다. 가족이 있으면 교외라도 괜찮지만 싱글은 아마 대부분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시애틀도 미국에선 대도시인데... 여러 기반 시설은 한국의 공주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니 한국에서 2-30대를 보냈다면 교외의 적막함과 단조로움을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둘째, 결국은 전액 장학금(학비+생활비)을 받아냈다. 주립대라서인지 학교 차원의 펀딩이 많은 편이다. 지금은 컴퓨터사이언스 학과에 채용되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전에도 한국어학과 등에서 조교를 할 수 있었다. 애매한 사립대라면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셋째, 컴퓨터사이언스 학과가 발달해있다. 지원할 땐 전혀 몰랐지만, UW 로스쿨은 미국 내 30위 정도인 반면 컴퓨터사이언스 학과는 3위 정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재와 자원이 넘친다. 나는 인공지능이나 소셜미디어 추천/필터링 기술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컴퓨터사이언스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정말 많이 배우고, 거의 다시 태어나는 수준이 되었다. 최고의 연구 환경에서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넷째, 나를 학문적, 재정적 어려움에서 구제해 준 멘토가 있었다. 이 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길게 이아기할 날이 있기를.
캠퍼스는 꽤 아름답다 (출처: 좌측 사진 washington.edu, 우측 사진 저자) 돌이켜보니 장학금부터 유학까지 거의 '어거지'로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전략, 무대뽀 정신으로 임했다. 무엇 하나 쉬운 스텝이 없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히 고통스러웠다. 결국 이뤄냈지만, 과정이 너무 지쳤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행시준비를 나처럼 하는 것은 그간 많은 후배들에게 추천을 했지만, 유학준비를 나처럼 하는 것은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후배들이 나와 비슷하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준비에 완전히 몰두할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유학은 준비, 준비, 또 준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준비하는 만큼 좋은 학교에 가고 학교 간 후의 인생이 훨씬 예측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물이 들어올 때 무조건 노를 젓기 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어떤 삶의 조건이 나에게 중요한지를 충분히 자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 의지가 확고하다면, 대학원 공부는 결국 어느 순간엔가 시작하게 되어 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다신 오지 않아!라고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