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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n 17. 2023

유학 장학금에서 고배를 마시다.

왜 그렇게 장학금에 목을 맸던가.

최대한 빨리 나간다!고 결심한 후 자비유학의 방법을 알아보았다.


나는 오랜 공직생활을 했지만, 어머니 사업의 빚을 갚고 생활을 부양하는 데에 월급의 상당 부분을 쓰고 있어서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었다. 홀어머니로 세 남매를 힘들게 키워주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스탠포드에서 죽지는 않겠다고 느끼다


나는 2016년에 처음 미국 본토를 밟아 보았다. 공무원이 되어 2주 간 휴가를 써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스탠포드 대학 Hoover Institute에서 하는 워크숍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서 간 것이 아니라, 친구 페이스북 페이지 광고글을 보고 신청을 했었다. 졸업 증명서, 성적표, 추천서 등을 전혀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300 단어 statement만 요구하여서 이메일로 제출을 해보았는데, 합격을 해서 놀랐다. 비행기표, 숙박비, 식사비 등이 전면 제공되었다. 도착해서보니 2-30대의 변호사, 국회의원 보좌관, 경제학자, 환경학자 등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럽과 남미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어가 불편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위스키에 맥주를 말아서 친구들에게 먹이기도 하고, 한국 노래도 들려주고, 구글 본사에 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공짜 점심도 먹으면서. 나름대로 신나게 놀다 왔다. 이 때의 친구들 중 연락하는 사람들은 7년이 지난 지금 홍콩과기대의 교수, 뉴욕의 잘 나가는 변호사, 스페인의 판사가 되었다. 마지막 날 부족한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해서 모래를 삼키고 죽고 싶었지만, 결국 그럭저럭 해냈다.


그래서 유학을 와도 어떻게든 살아내겠구나,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첫 번째 장학금 도전


이 평화로운 2016년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2016년의 가을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터지면서 2017년 초까지 눈코뜰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동료들과 선배들이 검찰에 불려가고 법원에서 진술을 하고. 울면서 자료를 만들고 출력하고 묶고 찢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른 채로, 주변의 눈물과 좌절을 봐야 하는 길고 긴 터널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2017년 5월쯤 되어서 풀브라이트 장학금 공고가 뜬 것을 다.


1) CV (이력서)

2) Personal Statement (500 words)

3) Study Objective (500 words)

4) 졸업 증명서 ("날인봉인" 그 놈의 날인봉인...)

5) TOEFL 또는 IELTS 점수

6) 추천서 (3종..?)


이 밖에 여러 개의 서류가 필요했다. 서류전형과 면접 절차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유학준비' 카테고리의 글 목록 (tistory.com) 이 분께서는 KFAS와 풀브라이트에 모두 합격하셨는데, 지금 어딘가 명문대에서 박사과정을 잘 하고 계실 것 같다.


장학금 공고가 뜬 '후에야' 토플 시험과 IELTS 시험을 보려고 하니 일정이 빡빡했다. 전형 접수 전에 성적이 나오게 하려면 IELTS를 볼 수밖에 없어서 260불인가 매우 큰 돈을 주고 시험을 봐서 턱걸이로 컷트라인을 넘겼다. IELTS는 외국인과 직접 대화를 하는 신기한 시스템이었는데, 컴퓨터에 대고 말하는 토익이나 토플보다 차라리 편했다. 그 후 교수님들과 상사에게 추천서를 요청드렸는데, 안 되는 영어로 주위에 감수를 받아가며 초안을 쓰고, 어렵게 부탁을 드리고 하는 데에 시간이 한참 흘렀다.


이제는 추천서 쓰는 부탁을 하도 해서 어렵지 않다.

 

<예시>

나: 교수님! 저 이 곳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몇 월 몇 일까지 추천서 써주실 수 있을까요?

교수님: 네! 초안 써주실 수 있죠?

나: 네! 몇 일까지 보내드릴게요!

교수님: 보내주세요!

나: 네!


대충 이런 식으로 엄청 간단한 카톡 대화로 끝난다. 내가 추천서를 써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당시만해도 '추천서를 부탁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죄송스러워서(???) 교수님들께 입을 떼는 데에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초안을 써드리겠다'고 하는 것도 괜히 월권을 하는 건가(???) 싶고. 여하튼 심리적 장벽이 컸다.


그리고..... 그 놈의 봉인날인인지, 날인봉인인지.

성적표를 출력해서 학교 사무실에서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압인으로 종이가 울퉁불퉁해지게 찍어야 한다. 그리고 봉투에 집어 넣어 봉투가 맞닿는 면에 또 서명날인을 받아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하도 받아가는 학생이 많아서인지 시스템이 되어 있지만, 홍익대학교는 방법을 잘 모르셔서 한미교육위원단에서 빠꾸를 먹고(;;) 다시 학교에 찾아가야 했다.


서울대학교도 홍익대학교도 산 위에 있기 때문에,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날인봉인을 받으러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휴가내기는 어려워 이틀에 걸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갔는데, 담당자 분이 휴가라서.... 못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Personal statement와 Study objective!!! 대충 쓰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 인생과 앞으로의 인생을 한 페이지 반 정도에 각각 욱여넣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CV 쓰기도 쉽지 않았다. 공무원 생활만 하다보니, 애초에 이력서를 써본적이 없었고, 미국식 이력서는 어떤 문법을 쓰는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KTX라는 회사에서 프로덕트 개발팀 리드를 한 이력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Team Lead, Product Development, KTX 2017-2019

- Led the Orora product design team, supervising 10 full-time employees, which resulted in getting the Best Design Award in the Korea Industrial Design Competition 2018.


이렇게 주어를 생략하고 과거형 동사를 쓰면서, 여러 가지 업적을 한 문장 안에 넣어야 한다. 당시의 내가 이런 스킬을 알 리가 만무했다. 먼저 유학을 갔던 친구들과 선배들의 이력서를 받아서 문장을 붙여넣고 조금씩 수정했다. 내 이력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관심가질 만한 이력을 뽑는 데에도 시간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법률 개정에 기여" 이렇게 띡 쓰면 안되고, "~ 법률 개정을 통해 ~ 서비스 도입" 같은 식으로 손에 잡히게 써야 한다. 또 법률 개정에 정확히 어떻게 기여했는지, 어떤 의회 상임위원회에 가서 어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누구와 협상을 했다, 등등을 쓸 수 있으면 좋다.


미국에는 사람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CV를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예시: Amy X. Zhang - UW CSE (washington.edu)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잘 나가는 분이 CV에 쓴 양식을 따라해보시면 좋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꼬박 걸렸다. 무슨 정신에서인지, 스탠포드 2주 워크숍 참여 신청서를 쓰듯이 며칠 노력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최종 제출 기한이 다가 왔는데도 자료가 전부 마련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다 제출을 못하고 처음에 일단 임의대로 기본 서류만(??) 제출을 한 후 서류 보완 요청이 왔을 때 간신히 자료 제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불합격. 면접도 가지 못했다. 아마 서류가 미비하고, 오타도 많았을 것이다.


그 후 내게 합격비결을 묻는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너 자신에게 몇 달은 시간을 주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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