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한 번도' 머리를 빗지 않던 아들 녀석이 스스로 빗을 들고 머리를 빗고 있었다. 어디 데이트를 나가려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온라인 클래스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사춘기'라는 건 신이 준비한 '깜짝 선물' 같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빗질하는 녀석의 뒤통수를 보며 해 봤다.
그런데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녀석이 하는 말 좀 들어 보소. 자기는 코가 너무 뭉툭하고 못생겼단다. 네 코는 네 아빠를 닮아서 제일 내 맘에 든다고 얘기해 줬는데, 녀석은 그야말로 코로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덧붙였다. 동글동글한 네 얼굴에 뾰족한 코를 붙이면 아마 언발란스해질 거라고. 녀석이 이번에는 아예 발로 듣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연예인을 너무 많이 봤다. 하나하나 따로 뜯어놓고 보면 다 예쁜데, 합쳐놓고 보면 그야말로 안습인... 수술받느라 참 아팠을 텐데 부기 빠지니 예전 얼굴이 더 나은... (물론, 수술 후가 더 나은 사람도 많다.)
외모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나는 자주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시도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내 안에는 '내'가 들어가 앉아 있어야 가장 나 답다는 걸, 오랜 실패 후에야 깨달았다.
불평하는 아들을 위해 만들어본 그림책이다. 공주 얘기라 너무 여자여자해서 녀석의 눈길을 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지인들은 이걸 보고 고생했다며 위로의 박수를 쳐줬다.
말 나온 김에, 허접한 걸 보고도 웃어준 지인들에게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