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재

그래서 당신을 사랑했을겁니다.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변미용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내가 소설가 박민규를 지면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은, 오래전 봉평에서 열린 효석문학상 수상식에서다. 그날 먼 발치에서 딱 한 번 본 뒤로, 소설가 박민규를 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평범하지 않은 외모 덕분(?)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둥그렇고 투박한 뿔테 안경을 쓴 평범치 않아 보였던 외모, 그리고 아버지를 회상하며 어눌하게 말했던 그의 몇마디 수상 소감...

나는 어쩐지 그의 외모가 이효석의 서정성에 조금은 반(反)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201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의 작품인 '아침의 문'이 당선되면서 다시 한 번 박민규의 이름을 접했다. 이번에는 그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던(?)-그만큼 그는 강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가였다.-이상문학상 이후의 끌림으로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딘지 묘한 매력을 담은 그의 소설이 참 좋아졌다. 그를 소설가로 데뷔시킨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물론 실망스럽게도 이 소설은 인터넷 소설을 표절했다고 작가가 인정했다.) 을 비롯하여 박민규의 소설을 여러 권 주문했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첫번째로 선택했다.

표지로 선택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은 나도 좀 의아해하며 보았던 그림이었다.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호감을 살 수는 없지만 시선을 끌만큼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그 '못생김'에서 모티브를 얻은 글이었다.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의 히어로라 불리는 박민규다운 발상이었다.

아름다움 것만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위해서 자신을 포장하고, 심지어 리폼(?)까지 하는 시대에 못생김을 소재로 내세운 것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소설은 '내가 주인공인 저 신데렐라라면...' 같은 식의 감정이입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꼭 집어서 표현할 수 없지만, 진솔한 세 남녀의 깊이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불행한 가정사를 통해 상처입은 세 명의 남녀, 요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주인공 '그'-백화점 인기투표에서 1위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와 '그녀'-태어나는 순간부터 못생겼다는 이유로 움츠러들었던-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가슴 설레는 핑크빛이 아니다. 그들이 자주 들르는 치킨집, 시장의 구석에서 몇몇 단골손님들만을 기다리는 오래된 치킨집 'HOPE' 같다.-그들은 오히려 HOF가 아닌 '희망'에 열광했다.-그래서 오히려 더 정이 가는가 보다. 아주 오래 전 골목길에서 보았던 비디오 가게 'BDO'가 떠올라서일까?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 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방문을 활짝 연 채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도 있을 거예요.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혹은 현관과 마루 정도를 지나면 곧 방문을 열 수 있는 여자도 있을 테고... 하지만 길고 깜깜한 동굴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야 겨우 자신의 방 앞에 다다를 수 있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설사 열리지 않는 문이라 해도, 또 누구에게 그곳에 와주세요, 같이 가지 않을래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방이라 해도 말이죠. 손에 든 촛불이 꺼져간다 해도, 결국 꺼지기 전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말이죠. 그 길이 너무 멀어... 그리고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그런 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여자가 있는 거예요. 줄곧 나 자신이 그런 여자라고 생각해 왔어요.- p.208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어떤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책 속에 몰입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엔, 깊이 공감하며 반성하는 또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고, 마지막엔 가슴아픈 눈물을 흘리며 등장인물과 함께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어우르는 몇 가지 문화 코드들이 친숙하게 다가왔고, 그랬기에 좀더 등장인물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가 아니라 그래서 당신을 사랑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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