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行狀)

by 선우

앙상한 촛불은 흔들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울창한 숲 속, 미리 터를 잡은 나무들의 뿌리에도

굽히지 않고 걸어온 발자국은 깊숙히 파였다


소소한 이슬이 생명 되어 떨어지기 전에

연두의 색이 피어난 여린 잎으로 모담았다


숲은 아이에게 부모이자 따끔한 스승이었고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때에도 일어서도록 하였다


청록의 이끼는 담요처럼 폭신하게 아이를 감쌌다

달빛이 비치면 작별인사를 꽃잎에 떨어뜨렸다


향을 피운 시간은 흐르고 촛농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어른이 된 아이는 발자국을 되짚어 돌아간다


불가항의 비와 천둥에 힘이 없이 흔들린다

뿌리에 무릎이 까지던 날은 며칠을 앓았다


숲은 어른에게 세상이자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날에는 남 탓을 하게 했다


청록의 이끼는 진흙 묻은 맨발로 기분을 더럽혔으며

달빛이 비치면 어른은 홀로 두려움에 벌벌 떨곤 했다


초의 흐름이 마지막 숨을 고르던 때에


어른인 아이는 태초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젊음을 휘어잡었던 이상, 넘쳐났던 힘과 사랑을

느티나무 그늘 아래 함에 담아 조그맣게 묻었다


눈이 멀게끔 타오르는 태양이 산을 뉘엿뉘엿 넘을 때

잠시만 잠시만 쉬자꾸나 밀짚모자가 얼굴에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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