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과 헌 마음

by 선우

고루한 말솜씨를 빌려 글자라는 내의와 단어라는 옷가지, 문장이라는 겉옷을 입혀 생각의 인형을 내내 진열해놓고 있다.


날씨처럼 매일 달라지는 심경의 예측불허함은 인형들을 삐뚤빼뚤 혹은 좌로우로 마감짓는다.


속으로만 꼭꼭 숨겨오던 첫째 인형이 태엽만 감아오다가 왈칵 터지듯 발을 내딛었다.


어느 길이 맞는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저녁이다.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으로 흰 종이를 채울까에 내 온몸의 뉴런은 번쩍거리며 주파수를 조정한다.


시계는 뱅뱅 같은 원점을 맴돌고 계절도 때때로 세월을 먹어간다.


한껏 개워낸 통각의 침전물들에 벌겋게 부어오른 가장 여린 살에는 이미 몇번의 딱지가 지나쳐갔다.


새살은 자리를 잡았으며 눈물의 장독대는 아픔이란 허들을 넘고 달콤쌉사래한 고통이란 막대사탕에 익숙해졌다.


견디어가는 사람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뿌연 안개가 가려고하는 앞길의 새벽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만히 앉아 화창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다짐, 막대만 남은 사탕의 끝물이 입 안에 사랑을 다시 한번 믿어보라 하고.


여물어가는 실낱같은 눈물 한 송이 내 턱 끝에 달려있다고 한들 오른발 왼발 앞다투어 걷고 있는 내 숨 끊어내지 못할 거야.


나무는 옷을 갈아입었는데, 나는 헌 마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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