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isle seat in the front, please!”
사람마다 선호하는 항공기 좌석이 있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 이동이 자유롭고 빨리 내릴 수 있는 ‘앞열 복도석’을 좋아한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무조건 창가석을 지정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 사진을 찍기 바빴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비행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수만 피트 상공에서만 볼 수 있는 창문 밖 풍경 대신 이동의 효율성이 내겐 더 중요해졌다.
두 번의 기내식이 제공되는 한국행 국적기 장거리 노선이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도 역시 나는 입구와 가까운 복도석을 선택했고, 내 옆자리 창가석에는 12~13세 정도로 보이는 동남아 계열의 외국 소년이 앉아 있었다. 아직 어린 그에게 일행은 없는 듯했고, 승무원과의 대화를 유추해 보건대 인천공항에서 환승하는 것 같았다. 긴 비행 끝에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날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도 종종 그 소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내 옆자리 소년은 두 번의 기내식과 간식이 제공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 승무원을 불러 무언가를 요구한 적도 없었으며 물조차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겠다며 내게 잠시 비켜달라 하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갔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마른 몸을 웅크린 채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런 그 소년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니? 화장실은 가고 싶지 않아?’
지금 돌이켜보면 말을 걸어 볼 만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에겐 국적기이지만 그의 입장에선 외항기였다. 외국인들 틈에서 홀로 타국으로 향하는 그 어린 소년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이를 지독한 개인주의자에 타인에 무관심한 성격 탓이라 스스로를 대변해 보지만, 이는 옳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조금은 더 성숙했더라면 분명 먼저 손 내밀었을 테니 말이다.
나조차 깨닫지 못한 죄책감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적지 않게 비행기를 타며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떠오르는 이가 바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그 소년이다. 기내 안 별의별 인간군상들 속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던 빌런들도 분명 여럿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이나 행동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당시 느꼈던 감정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긴 비행 내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그 소년의 왜소한 체구와 앳된 얼굴은 나의 눈과 마음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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