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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24. 2024

도쿄에도 3전 4기의 도전정신은 필요하다


나로 말하자면 쉽게 싫증 나고 쉽게 포기하는, 끈기는 없지만 긍정적 의미로 나에게 충실한 사람이다. 자의로 학원을 다녀도 두세 달을 넘기기 힘들며, 무언가에 빠져도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헤어 나온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그다음은 차갑게 식어 동력을 잃는 것이다. 내가 언제 저걸 좋아했었나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깔끔한 게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납득하고 정리하기 전에는 의외로 끈질긴 부분이 있다. 포기도 내 마음이 떠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나의 성향은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가고자 마음먹거나 먹고자 마음먹은 것은 기필코 해내야 하는 것이다. 취향이나 관심사가 바뀌기 전에는 말이다.




도쿄 어느 사찰에는 스님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딱히 정해진 날짜나 시간 없이 보통 하루 3타임, 40명 한정으로만 받는다.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두 번 오픈하고, 운이 나쁘면 한 달을 통째로 건너뛸 때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예약을 받는 날이 되면 금세 자리가 차며, 대기 리스트에 올려봐도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치 대학교 수강신청과 같다면 이해가 갈까.


당연히 여행 중 스케줄이 딱 맞아떨어져 이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심지어 예약에 성공까지 했으나 사찰 사정으로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취소 메일까지 받았다. 이쯤 되니 왠지 모를 끈기와 오기가 생겨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자연히 운영 공지를 눈이 빠져라 주시하기 시작했고, 때가 되자 주저 없이 예약을 한 뒤, 도쿄행 항공권을 검색했다. 3전 4기의 도전 끝에 마침내 성공했으나,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리상으로 가까운 나라라 가능한 얘기였겠지만, 알고 보니 나도 라멘 먹으러 일본에 가는 사람이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 가을날, 나는 또다시 도쿄로 향했다.


차 한잔 마시자고 항공권을 끊다니! (덧붙이면 도쿄의 핼러윈도 조금 궁금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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