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푸드 창립자가 만든 ‘러브.라이프(Love.Life)’가 바꾸는 공간
엘세군도(El Segundo)의 한 쇼핑몰 한복판, 초록빛 유리 외벽 너머로 반짝이는 공간. 이곳은 단순한 피트니스 센터도, 병원도 아니다. 당신은 스무디를 마신 뒤 혈액 검사를 받을 수도 있고, 명상을 마친 뒤 하이테크 운동기구 앞에 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홀푸드(Whole Foods) 공동 창립자 존 매키(John Mackey) 가 만든 새로운 웰니스 클럽 ‘러브.라이프(Love.Life)’ 이다.
이곳의 슬로건은 “Nourish. Heal. Thrive.” — 영양을 채우고, 치유하며, 번영하라.
단어의 순서만 봐도 이곳이 단순한 건강관리 시설이 아니라 ‘삶의 질’을 설계하는 새로운 형태의 멤버십 플랫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존 매키는 1980년 홀푸드를 창립해 ‘유기농 식품’을 대중화한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단순했다. “음식은 약이다.”
40여 년 뒤, 그는 이 철학을 확장해 “삶 자체를 치유하는 공간” 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홀푸드가 유기농 식품을 통한 ‘몸의 혁신’을 이끌었다면, 러브.라이프는 과학, 기술, 그리고 영성의 융합을 통한 ‘삶의 혁신’ 을 제시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홀푸드의 전 CEO 월터 롭(Walter Robb)과 베시 포스터(Betsy Foster)도 참여했다.
세 사람은 함께 3년 동안 이 거대한 실험을 구체화했다 — 피트니스, 스파, 의료, 영양, 커뮤니티 를 하나로 묶은 45,000평방피트 규모의 ‘웰니스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High Performance / Heal / Longevity
월 $750
주치의 5회 방문, 피트니스·영양 상담, 20여 종 통합 테라피
Concierge Level
연 $50,000
무제한 주치의 방문, 24시간 케어, 최고급 의료 분석 서비스
의료 전용 / 피트니스 전용
월 $300~$500
단일 영역 중심 (의료 또는 운동 회복 서비스)
입회 후, 회원들은 혈액, 호르몬, 마이크로바이옴 등 120개 이상의 바이오마커 검사를 통해 ‘나의 몸’을 데이터화한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형 식단, 운동,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이 설계되고,
‘러브.라이프 앱’을 통해 모든 관리가 연결된다 — 트레이너, 영양사, 의사, 심지어 피클볼 코트 예약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
러브.라이프는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곳의 핵심은 “건강 데이터 기반의 라이프 디자인”이다.
고급 검사 프로그램: DEXA 스캔, 대사량 측정, 심혈관 및 식품 민감도 검사
회복 및 재생: 적외선 레드라이트 치료, 고압산소(하이퍼바릭) 요법, 림프 순환 테라피
마음의 회복: 브레스워크, 명상, 사운드 배스 클래스
커뮤니티 액티비티: 피클볼, 카페 모임, 웰니스 세미나
공간 구성도 철저히 심리적 안정을 고려했다.
어쿠스틱 엔지니어와 풍수 전문가가 설계한 ‘소리와 에너지의 흐름’,
이끼로 만든 흡음 벽, 수정과 거울, 그리고 잔잔한 수공간까지 — 러브.라이프는 의료기기와 영성의 경계를 지운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고 비싸다.
러브.라이프의 등장은 이런 시스템을 ‘우회(bypass)’하는 상류층의 대안 모델이다.
이는 엘리트들이 병이 나기 전에 예방하는 ‘프리미엄 의료 문화’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비슷한 콘셉트의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브랜드가 있다:
Remedy Place (웨스트할리우드): ‘소셜 웰니스 클럽’으로 고급 척추교정과 바이오테스트 제공
Healthspan: 디지털 의료 서비스로 노화방지와 만성질환 예방 중심
Equinox Concierge: 연 $40,000 고급 피트니스 멤버십 (수면 코칭, 개인 트레이닝, 영양상담 포함)
러브.라이프는 이 모든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 경험’으로 통합했다.
과거 홀푸드가 ‘유기농=가치소비’의 상징이었다면, 러브.라이프는 ‘웰니스=지위소비(Status Consumption)’의 시대를 연다.
여기서의 건강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신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나’를 설계하는 하나의 브랜드 경험이다.
이곳의 회원 자격은 단순히 건강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인간”으로의 자격을 구매하는 것이다.
러브.라이프의 비전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러나 USC 보건정책학과 폴 긴스버그 교수의 지적처럼,
“이 모델은 의사의 자원을 부유층에게 집중시켜 의료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진정한 웰니스가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러브.라이프’는 아직 소수의 판타지에 머물러 있다.
존 매키는 “성공 이후에는 저소득층 건강 개선을 위한 자선사업도 펼칠 것”이라 밝혔지만,
그 철학이 실제로 ‘홀푸드의 사회적 환원 모델’처럼 자리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러브.라이프는 단순히 새로운 헬스클럽이 아니다.
이곳은 ‘의료와 라이프스타일, 데이터와 감성, 과학과 영성’이 융합된 새로운 시장의 실험실이다.
이 실험은 분명 지금의 미국 웰니스 산업을 정의할 것이다 — 그리고 언젠가 한국, 일본, 싱가포르, 혹은 서울 강남 어딘가에도 ‘러브.라이프식 웰니스 클럽’이 등장할지 모른다.
건강은 더 이상 ‘필요’가 아니라 ‘정체성’이 된 시대.
우리는 지금, “웰빙의 자본화(Welfare Capitalism)”라는 새로운 문명적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