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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y 06. 2019

한참 지난 사랑도 돌아보게 하는 사람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2016년 5월 8일에 쓴 글입니다.



 9월부터 운전면허시험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덕분에 10년을 미루었던 숙제를 벼락치기 중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자동 주행 시스템이 운전을 대신할 거고, 그럼 자동차 조작방법이 달라져 운전면허 시험도 바뀔 테니 버텨보려고 했건만. 졌다.

 지금 기능시험 평가 항목은 10가지가 채 안된다. 정지상태에서 시동걸기, 기어 변속, 전조등 조작, 방향지시등 조작, 와이퍼 조작하기와 출발하여 50M 주행 중 돌발상황에 급정지하는 거다. 앞으로는 커브도 돌아야 하고, 언덕도 올라야 하고, ㄱ자 코스인가 뭔가도 해야 해서 주행거리도 300M 이상이나 될 거고 여하튼 무진장 어려워지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팬티만 입어서 마음이 급하다

 최근에 면허시험을 합격한 친구가 기능까지는 굳이 학원을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주어서 며칠 전 김영감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아빠 아빠, 언제 쉬어? 나 면허시험 볼 건데 기능시험은 엄청 쉬워서 학원 등록 안 해도 된대. 동영상만 보고도 딸 수 있대. 아빠 쉬는 날 아빠 차로 연습하자! 어때!”

 귀찮아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빠는 신이 났다. 보던 TV를 끄고, 파자마를 갈아입고는 당장 주차장에 내려가자고 하셨다. 대체 왜? 싶을 정도로 싱글벙글이셨다. 결국 그날은 야밤에 주차장에서 30분쯤 아빠표 운전면허 강의를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도 여흥이 남으셨는지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내내 운전연습 이야기를 하셨다.


 5월 7일 어제는 ‘본격! 엄빠와 기능시험 연습’을 하러 한적한 도로에 나가기로 한 날이었다. 전 날 밤새도록 놀다 들어와 오전 내내 침대에 늘어져 있었는데, 아빠는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만지고. 데이트하러 나가는 총각처럼 분주했다. 기능시험이 뭐라고 온 식구가 외출을 했다. 운전석에는 내가, 조수석에는 아빠가, 상석에는 엄마가. 온 식구의 시선이 내가 잡은 운전대에 꽂혔다.

 “역시!”
 “하여사 봤어? 차선 맞추는 거 이게 사실 엄청 어려운 거거든! 이 어려운걸 내 딸이 해내지 말입니다.”

(당시 송중기표 태양의 후예가 인기였다.)
 “햐~ 방금은 뭐 거의 택시 탄 기분이네.”
 “옛다. 면허증이다. 면허증 내가 줄 수 있으면 당장 줘도 되겠다. 낄낄낄낄.” (주행 연습 아니다. 기능시험 연습이다.)
 듣기 민망할 정도로 격한 칭찬들이 아빠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자전거를 처음 타보던 그 날처럼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 손길 없이는 무엇하나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이를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고, 심지어 혼자서 변도 볼 줄 몰라 “쉬~”, “응~” 하는 효과음의 도움을 받아 쉬도 하고 응가도 했다. 머리를 덜렁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집안의 어린 왕이 혹여나 넘어질까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뒤를 지키셨다.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학교를 다닐 무렵에 두 분은 하나뿐인 딸의 기 살려주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할 때에도 ‘네, 생각이 틀렸다.’라고 말씀하시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 라며 지지해 주시거나, ‘엄마 아빠는 우리 딸은 현명하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 믿는다.’며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엄마 아빠로부터 나는 쥐 뿔 없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무조건 적인 사랑과 믿음과 지지를 배웠다. 그렇게 키우셨다. 나의 부모님은.

세상 모든 아버지는 자식의 뒷통수만 보며 걷는다

 머리가 크면서 부모님 손을 빌릴 일이 적어진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모님 손을 빌던 기억은 점점 잊히고 마치 원래 가지고 있었던 능력인 것만 같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오히려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자식 놈의 새끼는 싸가지가 더럽게도 없어서 지 기분에 따라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 기분 좋으면 친절 모드고, 귀찮고 기분 나쁘면 입을 삐쭉이고 가자미 눈을 뜨고서 투덜거린다.

 귀한 딸이라고 정성으로 길러오신 부모님 앞에서 왕싸가지 딸내미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잘난 체하고 있을 때, “아빠! 도움이 필요해요!” 한마디에 엄마 아빠는 어릴 적,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킬 때처럼 신이 나셨다.

 내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고, 부모님 손 하나 까딱 안 하시도록 호강시켜드리는 게 효도인 줄로만 알았다. 효도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손길이 닿아야 빛이 나고, 부모님의 지지에 힘을 얻고, 부모님의 믿음에 든든하고,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이 앞으로도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실 수 있도록 더 많이 부모님께 곁을 마련해 드려야지.


 그러고 보니 ‘사랑’이란 게 그런 거다.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들어올 한 켠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 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구들, 연인, 훗날 혹시 있을 나의 배우자에게 부모님께 배운 사랑을 돌려줘야지.

 어버이날에 사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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