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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01. 2023

" 꽃을 꺾으면 꽃이 아파요"라고 가르친다.

꽃다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초등학교 1~2학년 땐가..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교과서에 나온 것과는 달리 예쁜 꽃을 보면 꺾었다.

산도 주인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고 산에 진달래가 피면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고, 이웃집 언니는 화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 아직 물이 완전히 오르지 않은 얇은 진달래의 가지는 꺾일 때 소리가 나름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남동생이 유치원때

누구도 앞산에 있던 진달래를 꺾어 왔다고 혼내지 않았다.  페트병을 오려서 화병 삼아 하루 이틀 놔두어 감상했다.  한 움큼 꺾어 왔지만 여전히 앞산엔 수많은 진달래 꽃물결이었다.

진달래와 비슷한 시기에 피었던 개나리는 꺽지 못했다.  가지가 너무 길고 튼튼하고 꽃이 줄기마다 길게 펴 있어서 꽃다발에 적합하지 않았고,  높다란 담벼락에 있어서 그늘 및에서 꽃잎 몇 개를 뜯어서 살펴보고는 말았다.


길가에 난 수많은 코스코스 역시 별로 꺾지 않았다.  너무 가녀린 줄기라 금방 시들기 때문에 꽃다발 삼아 들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저 한송이를 대충 뜯어 귀 뒤에 꽂아 소녀의 기분을 만끽했다.

클로버 꽃으로 만든 꽃팔찌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었다. 꽃머리의 바로 밑 줄기를 손톱으로 집어서 살짝 찢어지면 그 틈새로 다른 클로버의 긴 줄기를 넣어 머리방울같이 꽃끼리 마주 보며 소소한 팔찌장식을 이루었다.  머리가 긴 어떤 아이는 클로버를 머리 사이사이에 넣어 누군가 어른이 지네머리로 땋아 주기도 했다.  늘 단발이었던 내게는 그 머리모양이 정말 근사해 보였다.


흰색 명주실을 반짇고리에서 잘라 가지고 나와 방금 막 우수수 떨어진 감 을 주워 끼우면 몇 시간 남짓 감꽃 목걸이가 된다.  신나서 뛰어다니다 보면 구슬같이 꿰어져 있던 감꽃이 그 실에 베여 또 찢어져서 듬성듬성 빠져버린다. 점점 색이 갈변하며 시들어버리면 목걸이의 유효기간도 끝난다.

학교 가는 길에 남의 집 마당 귀퉁이와 골목길이 만나는 지점에 물 준지 얼마 안 된 채송화가 있다.
채송화는 산에 난 진달래와 달랐다.
무엇보다 어엿한 남의 마당 화단에 몇 뿌리가 심겨 있는, 주인이 있는 꽃이었다. 꺾는 것이 발각되면 혼날 꽃이다.

교과서에 꽃을 꺽지 말라는 대목이 흐릿하게 생각이 난다.
익살스럽게 장난기를 머금은 소년이 길가에 핀 꽃을 꺾고 올바른 행동인지 아닌지 O, X 표시로 나왔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4살 난 아이가 도시의 집 앞 공원에 심긴 철쭉꽃이 예쁘다고 뜯으려고 한다.


나는 황급히 주위 눈치를 보며

 "안돼~ 꺾으면 꽃이 아야 해~"

라고 타이른다.


관상용으로 심긴 꽃나무는, 누군가가 누군가로부터 돈을 주고 구매한 것이다. 누군가의 재산이다.
어린이공원의 철쭉은 아마 구청의 소유물일 것이다.  더 많은 주민의 눈을 즐겁게 해 주려고 돈을 들여 심었기 때문에 명백히 꺾으면 안 될 꽃나무인 것이다.


꽃을 꺾지 말라는 것은 꽃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설 파괴에 대한 양심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여름에 무럭무럭 꽃나무가 뻗어나가고 시간이 흘러 쌀쌀한 계절이 되었다.
길가 가로수로 심긴 어마어마한 둘레의 플라타너스들이 뎅강뎅강 가치 치기 되는 장면을 당시 네 살 난 아이가 보고 울먹거리며 분노했다.


"저 나쁜 사람들~~!! 엄마 빨리 경찰에 신고하자! 아저씨~!! 나무 자르지 마세요, 나무 아파요~!"


나는 황급히 입장을 바꾼다.
사람은 몸이 다치면 아프지만, 식물은 아프지 않고 잘린 곳 말고 다른 곳에서도 싹이 나서 계속 자랄 수 있다고  얘기한다.


 꺾으면 나무가 아픈 게 아니라 더 잘 자라도록 잔가지들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너무 매몰차게 가지치기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가지뿐만 아니라 중간가지마저 살려두지 않고 볼품없이 베어 나가시는 공무수행 중인 분들...


산소도 만들어 주고 공해도 흡수하며 도로소음까지 완화시켜 준다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메두사 머리들이 베어지듯 가차 없이 떨어져 나간다.

낙엽이 생기면  도로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아서 환경미화원 인건비가 더 나가기 때문일까? 주변에 전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나무들이 광합성을 해서 살아가려면 내년엔 얼마나 더 많은 잔가지들을 힘겹게 뻗어내야 할까?


저번 결혼기념일때 남편이 구매한 '꺾인 꽃'

기념일에 받은 꽃다발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측은하다. 불쌍하다고 한다. 꽃을 받은 마음이 죄스러워진다. 수액을 맞히듯 화병에 옮겨 꽂아 감상하고 일주일 뒤 시든 꽃은 아이가 없을 때  잘라서 종량제 깊숙이 숨겨 버린다.

다시 봄이 온다.  집 앞 공원에 철쭉이 핀다.  

5살이던 아이는 꽃은 꺾으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꺾지 않는다.
엄마인 나는 더 이상 난처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꽃과 풀과 나무는 사람에 의해 '여기 있으면 좋을 곳'으로 이사 와서 하는 수 없이 뿌리내리고, 다듬어지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팻말들이 그들을 보호한다.

<화단에 들어가지 마시오>
<꽃을 꺾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예뻐해 주세요>
<눈으로만 봐주세요, 만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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