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경북 한 산골에 살 때 우리 집 근처에 가장 흔했던 민물고기는 버들치, 피라미, 동사리(뿌구리)였다.
커 봤자 어른 손가락 정도의 크기인 이 물고기들.
그중에 여름에 인상 깊었던 민물고기가 있다.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쿡쿡 TV
작은 아귀같이 생긴 녀석이 있는데 머리가 반이다. 아빠가 늘 '뿌구리'라고 하셔서 그게 고유명사인 줄 알았는데 지식백과에서 표준어가 '동사리' 란다.
여름은 냇가에서 놀기 아주 좋아서 물고기를 잡고 방학을 보냈는데 맨손으로 잡기에 만만찮은 녀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잘 잡혀 주기도 한다.
이 7월 말에서 8월 초쯤은 시냇물도 귀해서 녀석들이 헤엄치기에 물이 너무 적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나와 동생이 숨죽여 걸어 들어가서 잡는다.
꺼끌꺼끌, 거칠고 촘촘한 비늘을 가진 뿌구리가 힘차게 도망쳐보지만 한두 번 놓친 게 아닌 우리도 양보하기 쉽지 않다.긴장되면서도 성취감을 느끼며 바스켓에 잡아넣는다.
7~8cm 정도 되는 좀 큰 동사리가 보였다.
대왕 입크기에 식성이 좋은 이 녀석은다른 물고기의 머릿쪽을 입에 물고 노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고기의 몸통반절과 꼬리만 입 밖으로 내민 채로 둔하게 헤엄 치는 녀석을 발견한다.
분명히 우리도 물고기 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왜 괘씸한 마음이 치밀어 오를까??
자연이 던진 돌, 약육강식 생태계를 이루는 한 장면인데 우리는 그 동사리를 잡아 굳이 입속의 작은 물고기를 뱉도록 만들었다. 여태껏 이렇게 다른 불쌍한 고기를 무자비하게 잡아먹으며 몸을 키웠구나! 이 나쁜 자식.. 분노가 느껴졌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물고기를 잡는 인간이 민물고기의 사냥을 저주하다니.
한 날은 좀 더 깊은 물 쪽을 걸어가는데 이 놈에게 (여기선 놈이라고 하고 싶다) 발 뒤꿈치를 물렸다!!
아얏~! 하는데도 아직 물고 있었다. 먹잇감 구분을 못하는 건지 우리 영역에서 나가라고 시위를 한 건지는 몰라도 엄청 큰 녀석이 여린 뒤꿈치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다리를 휘저으니 아구를 풀고 도망갔다. 어찌나 놀라고 약이 오르는지..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어 보지만 또 물릴까 봐 분노의 눈빛으로 째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빨갛게 자국을 남겼으나 약을 바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 뿌구리에게 정이 떨어져서 다시는 잡지 않았다.
출처 : doopedia.co.kr
가끔 작은 메기 같이 생긴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도 조심해야 한다.
아빠는 '탱갈로'라고 부르셨지만 지식백과는 '퉁가리'라고 한다.
미끈하고 손가락 두께에 뾰족한 가시 같은 수염이 예민하게 뻗어있다.
벌도 아닌데 이 녀석은 잘못 건들면 쏜다.
가슴지느러미에 있는 가시에 찔리는 거라고 하는데 벌이 쏜 것처럼 아파서 웬만하면 건들지 않는다.
초록색 사이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주둥이를 몸통 쪽으로 결합하고 박스테이프로 감은 다음 간단한 통발을 만들기도 했다. 쌀밥을 한 숟갈 담아서 물이 잘 흐르는 곳에 놔두면 들어갈 만한 사이즈의 물고기가 모여든다.
두 시간쯤 지나서 가보면 아직 청소년 크기의 버들치가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마음대로 못 나간 채 가두어져 있다. 페트병 통발을 들어 올려 멍청해 보이는 물고기의 허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다. 왜 이렇게 멍청할까 생각하며 좀 지켜보다가 해체해서 다시 냇물에 붓는다.
휴가철이면, 여름마다 피서가 따로 필요치 않았던 그 산골 동네가 생각난다.
그리고 졸아있던 시냇물과 속이 훤히 보이는 물결 속에 약간의 물속 분탕을 일으키며 헤엄치던 민물고기 녀석들이 생각난다. 왠지 발 뒤꿈치도 찌릿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