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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17. 2023

알밤 줍기, "우리 밤나무인데요?"

밤나무의 기억

가을, 알밤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3년 전에 김포에서 알밤줍기 체험을 해 보았는데 잠시 하는 것이라 시간 제한이 있었고

밤나무가 너무 높아서 그림 같았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강화도에서 알밤줍기 체험은 정말 밤나무가 많았고 산 비탈에 있어서

30년전에 주워본 "우리 밤나무"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너무 정겨웠다.


앞산에 있는 우리 밤나무

경북 산골짜기, 우리집 마루에서 앞산을 향해 멍때리기를 하고 있으니

앞산 쪽으로 트럭 한 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 비탈 아래 대 놓은 파란 트럭.


아빠가 그 모습을 보시더니, 동생과 어서  올라가서

"이거 우리 밤나무인데요~!"  라고 하라고 하셨다.

우리집과는 동떨어져 있었지만 그 앞산 중에서 밤나무 밭만 이 땅을 살때 같이 샀다고 하셨다. 

아빠가 '우리 밤나무'라고 말씀하신 순간 도둑을 물리쳐야겠다는 사명감이 차올랐다.

우리는 얼른 신발을 구겨신고 앞쪽 끝을 땅에 탕탕 찍고 뒤꿈치를 검기손가락으로 펴며 달려갔다.

올라가는 중에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밤나무 한그루가 바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게 흔들렸다.

15분이 걸려 드디어 도착했지만 입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동생을 쿡쿡 찔렀다.

"니가 말해라."

"아니, 누나가."

"니가 ~~"


"너거도 밤 줏으로 왔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셨다.


"아.. 그게요~  있잖아요..., 이거 우리 밤나무 인데요?"

"너거 꺼라꼬?"

"네! 아빠가 우리 밤나무라고 했는데요~?"


동생도 거들었다.

"아빠가 조금 있으면 돼지 사료주고 온다고 했는데요."

트럭 주인 내외는 서로 난감한 기색을 주고 받더니

"주인 없는 밤인줄 알았는데 써붙여 놓든가 하지, 미안하다."

하시고는 털어놓은 밤을 그대로 놔두고 차를 후진으로 조심히 내려가다가 돌려서 가셨다.


동생과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솟아올라서는 송아지가 날뛰듯이 뛰어 내려가서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빠~! 우리가 알밤도둑 물리쳤어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빠는 싱글벙글이 되어 "잘~했다"고 하셨다. 



남이 털어놔 준 우리 알밤들. 예상보다 수확이 앞당겨 진듯 하다.

밤송이가 스포츠머리 같았다.

지나가다가 내 옆으로 툭. 털어지면 머리에 떨어진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아찔한 심정이 된다.

동생은 스포츠머리 라고 해서 그저 바리깡으로 짧게 친 머리 모양이었는데 , 머리를 친 날에는 손바닥을 정수리 부분에서 방방이를 태워 보았다. 따끔따끔 해지게 머리카락만 튕겨가며 '밤송이~'라고 놀려주었다.

스포츠머리 밤송이


"밤 줍자! 함 가보자."


아빠의 한마디에 우리는 운동화를 신고와서 목장갑을 꼈다. 장화는 왠지 자유로운 발동작이 안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장화는 아무리 엄마가 빨아주셔도 돼지우리에  들어갈때도 신는 것이라서

그걸 신고 밤을 깔 수는 없는 것이었다.


초록색 페인트가 바닥쪽에만 대충 칠해지다 만 목장갑을 끼면

손가락 끝 부분은 손가락이 닿이지도 않고 불편했다. 

때가 탄 목장갑의 손등 쪽 냄새를 맡아보니 돼지우리 테두리에 둘러진

합성유리섬유 천과 같은 먼지냄새가 났다.

이제 은색 밤집게를 나씩 주셨다.


밤나무 아래에 그냥 떨어진 밤송이도 있고, 아까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장대로 쳐서 떨어뜨려 주신 밤들도 제법 많았다.


고슴도치 스무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꼭 벌어진 쪽이 바닥으로 향해 있고 가지 끝이 윗쪽으로 오게 떨어지니 고슴도치의 꼬리처럼 보였다.

자연적으로 떨어진 밤송이는 너무벌어졌는지 바닥에 밤송이 껍질만 있고

정작 알밤은 근처에 아무렇게나 툭 뱉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밤 꼭지에 아주 작은 더듬이 같은  솜털이 이미 시들었다. 밤송이는 더 짙은 갈색이 되어 있었다.

떨어진지 좀 된 것들은 벌레들이 맛을 더 많이 봤을 것이다.

떨어진지 좀 된 것들은 벌레들이 맛을 더 많이 봤을 것이다.


가장 탐스러운 느낌의 밤송이는 연두빛이 섞여있는 황토색,

거기에 짙은 갈색의 단단한 알밤이 반질 반질 윤을 내고 있었다.  

가장 탐스럽게 보이는 알밤송이의 색상


내친 김에 아빠가 주변의 다른 밤나무에서도 벌어진 방송이들을 떨어뜨려 주셨다.

비탈이 가파르니 뭔가 손쉽게 떨어뜨려주시는 것 같았다.

반면에 우리는 기우뚱한 자세로 발로 까는게 더 불편했다.

벌어진 송이의 양 끝을 신발로 벌리며 은색 집게는 모아쥐고,

밤과 밤 사이를 툭 치며 비틀면 알밤이 신발 주위로 낮게 발사 되었다.

큰 밤나무에서 점점 많은 밤송이가 떨어지자 이제는 무조건 신나게 밤송이에 달려드는것이 아니라

더 크고 잘생긴 밤송이를 고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알밤이 4개가 들어있는 밤송이를 양 발로  쫘악 벌려보느냐 대결이라도 하는것 같았다.


4알짜리를 발견했다고 남동생이 으시대자 나는 많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알밤이 큰걸 찾느냐가 중요하다고 맞섰다.


애초에 정하지도 않았던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었다는 듯이 서로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가 훗날 하시는 말씀이 하도 밭농사에, 돼지를 치시느라 알밤이 열려도 매 해 따러 갈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좀 컸다고 평년보다 더 많은 알밤을 담을 수 있었다.


"누나! 이거다~! 응? 봐~! 봐봐~!"

앗, 따가워라! 내 밤을 신발로 벌려 까던 중에

동생의 재촉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다가 신발이 어긋났다.

합성피혁을 거뜬히 뚫고 들어온 연두색 밤송이.

신발의 숨구멍이 왜 뚫려 있냐며 신발 회사를 탓해본다.

(큰 마리모들을 나무에 매달아놓은 것 같다.)


점점 수확의 기쁨이 고통스런 노동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우린 이제 그만 줍고 내려가고 싶었다.

"힘들어요. 이제 그만까고 싶어요~"

"그럼 이 많은 알밤을 다 버릴기가?"

이쯤 했으면 많이 주웠다 싶을 만큼 주워서 터덜터덜 내려 왔다.


삶은 밤 파먹기

엄마가 밤을 삶아 주셨다. 과도로 반을 잘라서 커피스푼으로 파먹는건 또다른 재미였다.

누가 얼마나 속을 깨끗하게 긁어 먹었는지 내기를 하며 또 치열하게 파 먹었다.

삶은 알밤은 아직도 많고, 이긴 사람 상을 주는것도 아닌데

서로 더 깨끗이 파 먹으려다 밤의 속껍질의 아린 맛에 인상이 구겨졌다.

나는 그저 앉은 밥상위기 여기 저기 밤껍질 반개 짜리들과 부스러기들로 널부러져 있는데 동생은 그 마저도 밤껍질을 옆으로 차곡차곡 개어가며 정리에 소질을 보였다.

같은 노고로 파먹는다면 더 굵은 밤을 고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르고 고른 굵은 알밤을 쪼개보니 쌍둥이 밤이 나왔다.

쌍둥이 밤은 처음에만 신기하지, 여러번 보게 되니 달갑지 않았다.

알밤 하나에 두개의 덩이가 있어 사이를 속껍질이 판막처럼 막고 있어 파먹기가 더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동생이 윽! 하고 씹힌것을 뱉었다. 밤 벌레의 일부가 밤의 속살과 함께 나왔다.

나는 꺄하호호 웃으며 고소하다고 놀려댔다.

밤을 너무 많이 따서 이웃에 나누어주고도 많이 남았다.

모레에 묻은 밤

마당 한 켠에는 아빠가 돈사를 직접 짓기 위해 시멘트 포대, 모래가 동산 처럼 쌓여 있었다.

아빠는 밤을 모레에 파묻으러 가자고 하셨다.

"밤 심어요? 그럼 마당에 밤나무 나요? "

아빠는 심는게 아니라 묻는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모레에 묻어 놓으면 햇볕도 먹고 며칠 더 보관하기 좋다고 하셨다.

그러고 며칠 뒤에 또 한무더기 파서 삶아 먹었다.

그리고 마당의 모레동산에서 몇개는 용케도 모레에 잘 숨은 것인지 잊혀진 것인지 이듬해에 나란히 5개의 밤나무 싹이 났다. 

귀여운 잎사귀가 어른밤나무의 무늬와 똑같았다. 아빠는 그것을 돈사 뒷 편에 옮겨 심으셨다.

만약 그것이 자라면 힘들게 앞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밤을 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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