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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16. 2023

무덤과 할미꽃

 산발이 된 할미꽃말

시골 학교에서 1시간 30분 이상 걸어서 집에 가다 보면 다양한 풍경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날은 무덤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우리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겨웠으나 호기심과 노는 체력만큼은 가득인 때였다.


꼬부라진 흙길 옆에는 다양한 무덤들이 드문 드문 있었다.

길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은 관리가 잘 되어 무덤이 봉긋하고 무덤의 아래쪽이 화강암 같은 것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간단한 제수를 올릴 수 있는 편평한 돌도 있었다.

등 하굣길은 평일이라서 그런지 한 번도 누가 무덤을 돌보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차를 길가에 대기만 한다면 바로 닿을 비탈진 곳에 층계가 한 단 있고 돌담 같은 장식이 있으며, 아마 어떤 사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 혹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이 양방으로 있었다.

우리는 조부모님도 생전이셨고 따로 차례를 드려본 적이 없지만 의례 나도 언젠가 당연하게 내 무덤에 누군가가 묻어 줄거라 생각하며, 내 무덤 옆자리는 누가 될까 반친구들 얼굴을 떠올려 보고는 이내 고개를 젓곤 했다.


산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시절에는 일단 먼저 묻으면 임자였다.

남의 임야(산)에 일단 묘를 쓰면 산 주인이 내 땅에서 철수하라고 해도 무덤의 주인 (후손)이 그럴 수 없다며 '분묘기지권'이라 하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함부로 무덤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다.


하찮은 청개구리도 엄마를 바보같이 산이 아닌 강가에 묻어줘서 슬프게 우는 이야기가 있듯이 모든 사람은 죽으면 무덤이 생길 텐데 왜 죽는 사람에 비해 보이는 무덤수가 적은가, 우리 마을 말고 다른 마을이 더 인기가 많은가 생각했다. 당시에는 화장이라는 것은 존재하는지도 모를 때였다.


관리가 잘 되는 묘지는 어떤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벌초도 어느새 깔끔히 되어있고, 빗물과 바람에 쓸려 봉분이 나지막해지기 전에 다시 어디서 흙을 보강해 둥근 형태를 만든 것이다.


어떤 선산은 보통 높이의 무덤이 5개 정도 모여있고 낮은 산의 일부를 쓴 것 같았다.

높은 곳을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그곳에서 경치를 조망했다.

그곳에서 저 멀리를 보면 어느 집이 밭농사로 바쁜지 초록 밭에서 모자와 목에 걸친 수건이 보이기도 하고 더 먼 산을 보기도 했는데 그 순간 한 명이 지금 UFO를 봤다고 했다.


"어디?" 하고 그쪽을 보지만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봤다는 녀석은 꼭 그 생김새도 타원형인 비행 물체가 이쪽 하늘에서 번쩍, 어? 하는 사이 저쪽 하늘에 번쩍 지그재그 지점을 세 군데를 찍으며 작아지고는 지금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다. 한참 외계인이 궁금할 때라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은 그 아이의 증언을 믿으며 또 다른 외계 비행물체를 찾으려고 신중하게 눈을 굴렸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구 하나가 무덤가 비탈을 굴렀다.

또 하나가 굴렀다. 우리 셋은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무덤가를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흙이 아닌 햇볕에 마른 잔디가 몇 가닥 옷에 묻어나고, 주변에 위험스럽게 튀어나온 돌도 없이 빠르게 옆 구르기가 되는 것이다. 두세 번 함께 구르고는 갑자기 무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벌 받으면 어떻게 하지? 귀신 들리면 안 되는데...!


그 맘 때 마을 언니가 들려준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무덤가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무덤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무덤에서 애기귀신의 영이 콧속으로 들어가서 귀신이 들려 할아버지가 아기울음을 울었다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절대 무덤가에서 낮잠은 자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깔깔 거리며 무덤 속 귀신을 희롱하지 않았던가?


"야, 우리 어떻게 하노? 귀신 들리는 거 아니가?"

"에이, 조상님이 이 정도 가지고 화내시겠나?"

"너희 조상님도 아닌데 당연히 화나지 않겠나?"

"같이 굴렀잖아."


우리는 슬글슬금 핏기 없는 표정이 되어 어느 누군가의 선산 비탈을 빠르게 내려왔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는 길가에서 그산을 바라보며 절을 했다. 두 번 했다.

왠지 이 정도면 용서해 줄 것 같았고 이제는 무덤 바로 옆이 아니기 때문에 귀신이 들릴 것 같은 공포에서도 해방이 되고 있었다.

또 가다 보니 잊힌 지 오래인 무덤도 보였다.

아마 몇 년 후에는 아예 이 자리가 무덤인지도 모를 것 같은 곳에 이미 잔디보다 잡풀이 우거져있고 엉겅퀴가 뻐세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무덤 주변에는 할미꽃이 있었다. 백발이 되어버린 할미꽃을 보니 흉측하기도 하고 더 이상 꽃 같지가 않았다. 가득히 피어있는 산발 주위로 꼬부라진 한두 송이의 검자줏빛 꽃이 할미꽃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민들레 꽃씨는 보송하고 우아하게 생겨서 후~ 하고 불면 바람에 45도 위로 흩어지며 날아가는 모습이 낭만적인데 비해 이 할미꽃은 염색 안 한 할머니의 쪽 지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를 떠오르게 했다.  열매라고 하는 미끈한 촉수들이 왠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왜 할미꽃은 굽은 목과 허리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검붉은 꽃이 봉우리 져 피고, 백발이 되어서야 고개를 들까?

할미꽃의 꽃말 슬픈 기억, 충성이라고 한다.

슬픈 기억에 고개를 숙이고, 기억이 다하면 무덤 곁에서 지키는 충직한 신하처럼 허리를 세우고는,

자손들에게 잊힌 무덤에게 충성을 나타내는 걸까.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좀 더 골짜기였는데 가끔 좁은 길을 위태롭게 버스가 어찌어찌 들어왔다.

삼베로 된 상복을 입은 열댓 무리의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더 더- 깊은 산골짜기로 걸어가며 북을 치는 사람이 앞장서고 목청을 근엄하게 내뽑는 소리가 나온다.  알아들을 수 있는 대목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또 무덤 하나가 우리 모르는 곳에 생기며 낯선 이들이 마을에 방문하는 것이다.

또 한 무리의 할미꽃이 그들이 안 오는 동안 무덤을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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