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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19. 2023

타작이 끝난 후  시골 풍경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알이 찬 벼도  슬슬 마른다.  30년 전 이사진은 어쩐지 쌀쌀하고 쓸쓸하면서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

벼를 베는 기계인 콤바인이 있는 집은 우리 마을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어르신들이 봄철 모내기 할 때는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가며 흰 고무신을 신고 했었다.

늦은 태풍으로 물에 잠긴 벼를 눈물로 세워 묶기도 했지만 보통의 풍경은 이렇다.


활이 휘듯  가운데만 움푹 숫돌에 하염없이 간 낫을 들고 벼를 손수 베시는 어르신들.


우리는 해마다 농사짓는 종류가 조금씩 달랐지만 강렬한 기억 속에 한 장면이 있다.

수확해서 건조한 고추, 이제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만들기만 하면 되는 우리 키보다 컸던 고추자루 옆에 장작을 때시고 말린 고추를 불태우고 계셨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엄마, 왜 고추를 다 태워요?"

"팔아봤자 소용이 없으니 그렇지."

"왜요?"  했더니 이번엔 아빠가 말씀하신다.

"쎄가 빠지게 꼬추농사 지어놨디만 한 자루에 600원이란다, 600원~!"

작년에는 고추값이 치솟자 이듬해에는 너도나도 고추농사를 한 것인지.. 하루 용돈 300원일 때, 죠리퐁이 100원이고 별뽀빠이가 200원, 빵빠레가 300원일 때 우리 키보다 큰 자루에 든 한 해 농사값이 600원.. 서너 자루 되었다.

분명 돼지사육을 하시면서 틈틈이 부업으로 고된 농사를 했었다. 여름에는 솎아내기도 하고 , 여린 고춧잎으로 반찬도 하시고, 그 매운 고추도 어느 독한 벌레가 파먹었는지 병충해가 들기도 하고, 진딧물은 매운맛을 모르는가.. 호수로 물 끌어와서 물도 주고.. 지극정성 한 자루 600원.


속으로 는 생각엔 래도 그거라도 그래도 파는 게 안 파는 것보다 나을 텐데 왜 고생스럽게 불에 태우셨을까...

매 쾌한 연기를 마시며 다시는 고추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결의 의식을 치르신 것일까.

그 이후 우리 밭에선 고추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날에 나와 동생이 웃물에서 다슬기를 잔뜩 주워오면 엄마가 과도를 쥐어주시며

"고디국 끓이구로 정구지 좀 이만큼 끊어와, 이?

뽑지 말고 요만큼 꼬투리 남기고 끊어와야 된다~"


제주도에서 살다가 산골짜기로 시집오셔서 고생하신 엄마다. 한 겨울에 얼음을 방망이로 깨서 구멍 난 고무장갑으로 손빨래를 하신 적도 있으니까.


 경상도 사투리와 제주도 억양을 섞어서 말씀하시면 나는 몹시 귀찮지만 몸에 배여서 얼른 마당뒤편 비탈로 올라가서 부추밭에서 흙 뭍은 부추를 적당히 한 바구니에 찰 정도로  베어 왔다.

2주 전에 벤 녀석들도 어느새 한 뼘 높이로 자라며 영원히 부추밭일 것처럼 보였다.


그런 부추도 날이 추워지면 서리를 맞는다.


이웃집 콩밭의 일손을 거들며 꿩이 먼저 맛본 콩을 줍는다. 아직 인간과 같이 생활할 마음이 없는 꿩은 닭과 다르게 인기척이 느껴지면 냅다 도망을 친다.

총을 든  낯선 꿩 사냥꾼도 간혹 다녀 갔으니 인간에 대한 소문이 좋을 리 없었다. 그 콩은 이름을 모르겠다. 쥐눈이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꼭 쥐의 눈 만한 작고 둥근 까만 콩인데 속은 푸른색이었는데 다시 한번 그 삶은 콩 한번 먹어 봤으면..!


초1 아들이 얼마전에 그린 그림

이웃  언니가 감 따러 간다길래 나도 나도~ 하며 따라가봤더니 이웃 아저씨가 감을 벌써 한 광주리 째 따고 계셨다.


정말 엄청 긴 장대 끝을 반 갈라 다듬어서 그 틈새에 감나무 잔가지를 끼워 넣고 뚝. 하고 꺾으면 마른나무 끝에서 단감도 대봉시도 아닌 일반 감이 수확되었다. 말로만 듣던 까치밥도 2개나 남겨 두셨다.

진짜 까치가 먹나 보다. 감나무엔 까치 없는 까치집이 있었다. 장대에 혹여라도 맞지 않기 위해 몸을 피신한 건지, 이사를 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츤데레 아저씨의 까치밥의 미덕이 좀 멋있었다.  


감을 수확하면 바로는 먹기 어렵다.

"으윽 텟테, 떨감!"

하면서 깔깔대고 있으면 이웃 아주머니들도 같이 웃어주셨다.


방의 윗목에 신문지를 깔아 두고 감을 몇 개 펼쳐놓으셔서 홍시로 만들고, 나머지는 하도 갈고 갈아 작아진 과도로 깎아서 안방과 마루 사이 발을 치듯 깎은 감을 줄줄이 엮어 홍시를 만드셨다.

방에서 나올 때 곶감에 눈이라도 맞으면 어쩌시려고  할머니들은 곶감으로 문발을 만드셨다.


나는 타작 끝난 황량한 논이 좋았다.

왠지 못 보던 땅을 발견한 것 같았고, 술래잡기하는 묘미는 남달랐다. 꼬투리만 남은 짚은  밟는 재미도 있었다.

한쪽에는 짚풀더미가 쌓여 그 자체로 무덤같이 있었고, 모처럼 마을 어른들이 이장님네 논에서 젓가락과 소주잔을 들고 들판에 모이셨다.


등유를 가져오셔서는 마른나무와 지푸라기를 쌓은 곳에 찌끄리셨다. 기둥 될만한 돌을 양쪽에 두고 위에는 지붕을 얹었다.  지붕이라는 것은 실지붕 자재인 골이 일정하게 패인 회색 슬레이트.  아저씨가 "쎄레또 가져 왔니더~"

하시면 이장님이

"돼지 아직 안 됐나?" 하시면 우리 아빠 손은 더 바빠진다. 

 아직 출하 시기가 안되어 죽은 어린 돼지를 잡아 토치로 털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그 작업은 논 밖에서 이루어졌다.

 술래잡기 노느라 돼지가 돼지고기화 되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다가 어느새 논 가득히 볏짚이 타며 돼지가 구워지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저씨들이 돼지쓸개즙을 소주에 혼합한 쓸개주를 크읏~ 한잔씩 하시고 돼지고기를 집어 드신다.

"너거도 여 온나~ 아나, 뜨겁이?"

하시면 이미 와서 침만 삼키고 있던 우리는 새 모이를 받아먹는 어린 새처럼 입을 벌리다가도 데이면 어쩌나 걱정스러워서 아랫입술을 오므리며 받아먹으며 맛을 봤다.

세상에! 우리 돼지 키우고, 사료 주고 똥 치우고, 새끼 받아 안방에서 혹한기 보내보고 팔아만 봤지, 이렇게 맛있는 거 그동안 맛도 못 보고 살았다니!

더 먹고 싶었지만 한 세 점 먹은 것 같다.


돼지 내장을 비워 돼지피를 섞어 엄마가 당면 순대를 쪄 주셨다. 딱 한번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까지 계속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마 그날도 최선을 다해 놀아서 기절잠을 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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