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업의 실제 4. 돼지사료에 얽힌 기억.
아빠가 음주 운전을 하셨을 때 1.4톤 트럭(1톤보다 화물 적재 하는 곳이 길게 나왔다) 이 한번 바퀴가 도로 밖으로 훅 빠져서 뒤집어진 적이 있었는데 밭을 매던 아재들이 장화 신은 채 달려와서 다시 차를 일으켜 세워준 적이 있다.
굴착기가 우리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고, 아빠는 옆으로 피해 보려다가 트럭 바퀴가 빠져서 자갈밭에 트럭 채로 넘어진 것이다.
우리는 구출되었고 다친 곳은 없었으며 살았다는 안도감만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천댐(자양댐)에 빠져 죽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낚시 장난감 세트를 사 주시고는, 차 안에서 물고기 모형 등을 만지며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했을 때 아빠가 살면 뭐 하냐며 다 같이 자양댐에 빠져 죽으러 가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제야 술 냄새가 진동한 걸 느꼈다. (아빠 술버릇에 못 이겨 엄마가 젖먹이 막내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간지 2일 지난 날이었다. 엄마는 일주일 후 동생과 돌아오셨다.)
공포에 떨고 있는 초등 1~2학년인 나와 내 동생을 태우고 마을을 탈출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살고 싶어서 도망치다가는 도로에서 떨어져 죽겠다 싶어 울고 있던 차였다. 차가 뒤집히고 댐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구나 싶었을 때
생각보다 자갈밭이 충격을 완화해주었고, 다만 내 손에는 해마 모형이 꼭 쥐여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차 뒤집기를 도와주러 모여들자 술기운을 날려 보내고 멀쩡해지신 아빠는 수더분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신 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 때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소주로 한을 푸시는 아버지의 술독에 빠지는 한 달 반 가량이 찾아올 땐 우리는 공포에 떨어야 했고 그 많은 몇 백 마리의 돼지는 엄마 혼자 키워야 했기 때문에 운동회에도 오지 못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