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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02. 2023

돼지사료 아저씨가 다녀가신 날 & 가족투신 실패의기억

양돈업의 실제 4. 돼지사료에 얽힌 기억.

당시의 국민학교를 다녀오는 , 우리가 힘을 쥐어짜서 중간 지점인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흐르는 거랑물 (냇물)에 입술을 내밀어  후루룹 목을 축였다.

앞다리처럼 돌을 짚어 마시는데 그 돌이 삐딱하게 흔들흔들했다. 내 한쪽 팔도 뒤뚱뒤뚱했다.


가로등도 없고 버스도 없는 마을 입구가 서서히 오르막길로 치달을 때 나와 동생은 서로 등에 멘 책가방을  번갈아 가며 밀어주었다.


덥고 무료한  여름의 오후, 어디까지 왔나 싶어 뒤를 돌아보는데 아찔하게 5톤 트럭이 마을 입구 다리를 지나 들어오고 있었다.


마을 입구 다리에서 바로 더 들어오는 지점, 그곳을 안전하게 통과하고 비포장길로 접어든 것이다.


다리에서 더 들어오는 그 지점에는 시멘트도로가 5톤 트럭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자칫 바퀴가 탈출해서 훅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시멘트 도로 그 지점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남동생이 아까 급조해서 그린 그림.. 다리옆 강물에 떨어진 건 아니었고 좀더 들어와서 자갈밭에 넘어졌다.ㅎㅎ
아빠가 음주 운전을 하셨을 때 1.4톤 트럭(1톤보다 화물 적재 하는 곳이 길게 나왔다) 이 한번 바퀴가  도로 밖으로 훅 빠져서 뒤집어진 적이 있었는데 밭을 매던 아재들이 장화 신은 채 달려와서 다시 차를 일으켜 세워준 적이 있다.
굴착기가 우리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고, 아빠는 옆으로 피해 보려다가 트럭 바퀴가 빠져서 자갈밭에 트럭 채로 넘어진 것이다.

우리는 구출되었고 다친 곳은 없었으며 살았다는 안도감만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천댐(자양댐)에 빠져 죽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낚시 장난감 세트를 사 주시고는, 차 안에서 물고기 모형 등을 만지며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했을 때 아빠가 살면 뭐 하냐며 다 같이 자양댐에 빠져 죽으러 가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제야 술 냄새가 진동한 걸 느꼈다. (아빠 술버릇에 못 이겨 엄마가 젖먹이 막내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간지 2일 지난 날이었다. 엄마는 일주일 후 동생과 돌아오셨다.)

공포에 떨고 있는 초등 1~2학년인 나와 내 동생을 태우고 마을을 탈출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살고 싶어서  도망치다가는 도로에서 떨어져 죽겠다 싶어 울고 있던 차였다. 차가 뒤집히고 댐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구나 싶었을 때
생각보다 자갈밭이 충격을 완화해주었고, 다만 내 손에는 해마 모형이  꼭 쥐여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차 뒤집기를 도와주러 모여들자 술기운을 날려 보내고 멀쩡해지신 아빠는 수더분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신 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 때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소주로 한을 푸시는 아버지의 술독에 빠지는 한 달 반 가량이 찾아올 땐 우리는 공포에 떨어야 했고 그 많은 몇 백 마리의 돼지는 엄마 혼자 키워야 했기 때문에 운동회에도 오지 못하셨다.)



사료 아저씨 5톤 트럭이 우리를 지나쳐 가려다가 차를 세웠다.

"너희, 어데 가? 돼지 먹이는 집 아아들 아니가?"

"......"

"학교 마치고 집에 가나?"

"......"

"내 포항서 오는 퓨리나 사료 아저씨다. 너희 집에 돼지사료 갖다 주러 간다. 뭐 하? 타라."


마을 밖의 까만 포장도로에서 모르는 차를 얻어 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도 되는지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기는 마을 안이다. 우리를 발견 후 들어온 차가 아니다. 여기선 U턴할 공간은 없다. 길을 잘못 들면 우리 집 근처까지 1.5km를 더 가야 차를 돌릴 수 있다.


짐 싣는 칸을 흘깃 봤다.

"누나, 이거 우리 사료랑 똑같은 거다!"

"맞네 , 똑같은 거네~"


아빠가 늘 교육해 주시기로 사탕 주면서 "아저씨 따라가자 " 하면, "아저씨, 제가 100원 줄 테니까 저랑 경찰서 가실래요?" 하고 대답라고 하시던 말이 생각났다.


사료를 가득 실은 5톤 트럭이 우리를 발견하기도 전에 힘겹게 마을로 들어와서 납치할 가능성은 제로라는 판단이 서자 당당하게 다리를 뻗어 껑충 조수석에 나란히 타올랐다.


"이 덥운데 이 험한 길을 맨날 걸어 댕기나?"

"네." 하는 대답에 자랑스러운 표정이 된다.


차는 참 편리한 것, 우리가 거절하고 걸어왔으면 50분가량 걸릴 거리가 차로는 금방이었다. 빠르게 풍경이 스치고 트럭의 백미러에 나뭇가지들이 쓸린다. 아빠의 1.4톤 트럭보다 더 높은 탑차를 타니 왠지 왕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고 사료창고를 봤다.

사료아저씨와 아빠가 열심히 사료를 나르셨다.

쌀포대보다 훨씬 큰 돼지사료들.


"요새 어떻십니까? 힘들지요?"

"돼지 값보다 사료 값이  더 나가니까 마, 접고 싶습니다."

"아아들 키우려면 우짜겠습니까, 저 앞에 있는 애까지 하나 더 낳았으니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요~"

"아이고, 둘이 아니고 서이네요?"

"막내는 딸인데 똘똘합니."

"아 그리고 이거 , 유통기한 지난 자도 싣고 왔는데 돼지 사료로 섞어 주던가 하소."

"고맙습니다."


와!!!! 과자다!!!!

콘푸레이크다! 무지개 색도 있다!

초코맛도 있다!!!

... 유통기한 지난 지 6개월이 넘었단다.

엄청나게 많이 주셨다. 한 50통이 넘은 것 같았다.


입이 심심하몰래몰래 먹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간혹 오실 때 사주신 <종합선물세트>에 든 과자처럼 맛있지는 않았다. 동생 분유를 몰래 퍼 먹는 것이 훨씬 맛있었다.

사료 정리가 끝나니 훌륭하고 듬직한 참호가 생겼다. 료 포대기를 를 눕혀서 포대 째 여러 층을 쌓아 올리셨다. 예전에는 마구간이었을 곳을 개조하여 사료창고로 만든거라 오픈형으로 그냥 천정과 뒷벽, 양옆 벽만 있을 뿐 문 같은 것은 없었다. 곰팡이 핀걸 본적도 없고 도둑이 사료를 훔쳐 갈 일도 없었다.


"와~! 아지트 빨리 만들자!! 아빠! 이거 이쪽으로 올려주세요!"

반듯하게 쌓인 사료들이 다시 우리의 입맛대로 계단이 생기고, 아늑한 방이 생기고, 벽이 생겼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누웠지만 먼지는 묻었다.

괜찮다. 어차피 옷 색깔도 우중충한 쥐색이었으니까 별 티는 안 났다.


아빠도 사료 정리에는 진심이었다.

엄마가 배급을 위해 사료 한 포를 들어낼 때마다  가끔 보물처럼 금복주 1.8리터 펫트가 여기저기 나왔기 때문이다. 술 숨기는 천재 아빠와 술 찾기 귀신 엄마의 숨 가쁜 쟁탈전이 벌어졌다.


엄마가 능숙하게 사료포대 실을 이로 끊어내고 도도도돗 실을 뜯어내자 작은 원기둥 입자의 사료들이 황갈색 종이냄새와 어우러진 독특한 사료냄새 풍겨냈다. 엄마는 그 지그재그의 흰 명주실을 실꾸리에 감으며, 실이 이것만큼 든든한 건 없다고 하셨다.


새총으로 참새를 운 좋게 맞추면  그 사료포대에서 나온 실로 참새 다리를 묶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안 불쌍한 짐승이 없지만 그때는 동네 아이들이 개구리고 참새고 잡는 게 놀이였다.

사료 한포를 뜯어 엄마는 사료 리어카에  부으셨다.


자동 급여기 같은 건 없던 시절이니 순서대로 빨간 긴 바가지를 꽂아놓고 윗 돈사부터 차례로 가셨다. 사료를 주시든 말든 사료창고에서 놀기 바쁜  우리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분만실 사료 통만큼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파리의 번식 속도가 너무나 엄청나서 감당이 안되었던 것 같다. 아무리 약을 쳐도 파리는 끊임없이 알을 낳고 구더기를 낳고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되어 짝짓기를 하면서도 비행을 했다.


 분만실 배가 불러 일어서는 것조차 힘든 어미 돼지의 큰  밥통의 테두리는 언제나 파리 번데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밥통을 떼어내서 청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로 정형되어 있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물도 그 통에 주고 밥도 그 통에 주었더니 파리가 남은 밥  주변에 먹고 알을 낳은 것이다.


죽은 새끼돼지를 양지바른 곳  땅에 두어 마리 놔두면 며칠만에 새끼돼지의 반이 구더기로 파 먹혀 살갖이 없어진다. 너무나 일상이어서 그렇게 두신 것이겠지만 어린 나는 볼 때마다 징그럽고 구역질도 났다.

징그럽다고 말할 새도 없이 부모님은 바쁘셨고 우리는 놀기 바빴으니 밥상머리에 앉아 가족끼리 대면할 때는 구더기 파 먹힌 새끼 돼지 이야기는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었다. 


돼지 사료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각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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