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스 Aug 06. 2023

가을 산골, 그때 그  '으름'

옻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으름을 따먹었더니..

9~10월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가장 좋아하는 가을이었다.

이유는 과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산에서 나는 과일은 자연이 공짜로 베풀어주는 선물이었다. 발견한자의 것이었다.


사방이 산인 산골에서 비포장 길을 따라 학교를 4km 걸어서 등교하고, 다시 4km를 걸어서 집에 오지만 등교할때는 1시간 40분이 걸렸고 하교 후 집에까지 올 때 시간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더 산골짜기에서 면내에 있는 학교까지 거의 내리막길이 많았기 때문이다. 옆에 흐르는 시냇물과 초록색으로 보일 정도로 깊은 물도 우리집보다 더 윗쪽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맛도 다르다.

하교후 목이 말라도 거의 우리 마을까지는 물을 마시지 않았고 , 마을 입구부터 시작되는 비포장길 옆에 난 시냇물만 입을 대고  후루룹, 마셨다.


가을 산에서 나는 열매들의 종류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열매는 3종이었다. 산머루, 다래, 으름.

그중에 으름은 정말 과실의 크기도 크고 달콤해서 나무를 기어올라 가기에도 보람있는 결과물이었다.


일단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비탈길 옆 ,  작년에도 발견 했었던 자리 중에 나무를 올려다 보며 찬찬히 키위 비슷하게 생긴 타원형의 열매츷 찾는다.


이미 손이 잘 닿이는 곳에는 다른 사람이 따 먹었는지 열매가 따져있고 다만  홍콩야자같이 둥글둥글한 다섯잎을 가진잎사귀 무리들만 머쓱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 더 울창한 비탈로 들어가본다. 아마 지나가는 트럭이 봤을때는 왠 책가방만 길가에 놓여있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동생과 나는 용감하게 번갈아가며 나무를 올라탔다. 으름은 덩굴식물이라 다른 떡갈나무나 큰 나무에 마치 등나무 같이 감아 올라가는 식물이다.

으름꽃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으름 꽃은 몽글몽글한 연보랏빛인데 새끼손톱만한 수꽃과 엄지손톱만한 암꽃이 한줄기에 데라웨어포도처럼 모여 핀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초록열매가 점차 연한 키위표면같은 색의  열매가 된다.

한 2주간 우리는 하교마다 축제를 벌이듯 딱 알맞게 익은 으름 열매와 아직 따면 안되는것, 그리고 아깝게 가장 맛있을때는 놓쳤지만 침팬치가 입술을 뒤집듯 활짝 벌어져 씨가 잘 보이고 과육이 조금 마른듯한것을 구분해가며 따먹었다.  


아직 덜 익은 것은 그냥 둥근 모양 그대로다.

내일 따먹을 수 있는것은 배쪽에 칼자국이 들어간 듯 과육이 보일듯 말듯 한다. 그 열매를 오늘 따먹어봤자 살짝 떫은듯하고 덜 달아서 우리는 가장 적당하게 익은 것을 찾는다. 한 3~ 4개가 달려있는 뭉치에 하나는 살짝 벌어지고 바나나 두께의 겉은 키위색, 속은 흰색인 껍질이 통통하게  90도에서 110도 정도의 각도로 벌어지며 그 껍질이 과육을 살짝 감싸듯이 된다.  왠지 껍질이 통통 폭신해 보이고 과육은 반투명한 느낌, 그리고 까만 씨가 보일듯 말듯 한 상태이다. 이때가 나는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시기가 지난것은 4개가 달린 송이 중에서 한개 정도는 과육이 떨어져 나가 있다.  스스로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  150도에서 180도 정도의 각도로 가슴을 활짝 열고 자신의 과육을 떨어뜨린다.

그나마 달려 있는 녀석들도 반투명을 넘어서 좀더 짙은 회색이 되면서 검은 씨가 더러 비춰지기도 하고 도롱룔 알처럼 보인다는 느낌도 받았다.  수분기가 점차 빠진 과육은 맛있는 자신을 먹고 씨앗을 널리 퍼트려 달라는듯이 가스불에 올린 오징어처럼 얇아지고 깥으로 말린다.


운 좋은 참새나 산속 이름 모를 새들은 이 으름 열매 앞에서는 경쟁자이다.


그 날은 운이 없었다.

으름이 너무 탐스럽게 한송이에 4개나 동서남북으로 달려 있는데다 모드 고르게 오늘따기 좋은 각도로 벌어져 있었다 . 으름덩굴이 감아올라간 그 나무를 나도 두다리로 꼬아 잡고 있는 힘껏 팔을 뻗어서 땄다. 정말 맛있었다. 동생과 사이좋게 비탈 적당한 바윗돌에  걸터앉아 산새들보다 먼저 열매를 먹었다.


집에 가고 몇 시간 뒤부터  팔과 얼굴미 가렵기 시작했다. 그 나무가 옻나무였던 것이다.

동생은 없고 나는 있는것, 그것은 옻알르레기다.

두드러기가 온 몸에 나서 토종꿀도 발라보고 광법위피부질환제였던 쎄레스톤지도 발라보고, 살색 수두약인 카라드라민도 발라봤지만 곧바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1학년때 옻닭을 먹고 고생한 적이 있어서 아무리 맛있어도 옻닭은 절대 못먹겠다 생각했는데 이 옻나무는 그냥 옻 오르는 사람은 닿기만 해도 몇시간 뒤 두드러기가 난다. 그 얼얼하고 가려운 느낌은 꽤나 충격이었다. 그 다음엔 옻나무 비슷하게 생긴것도 피한다.

출처:두산백과

으름덩굴이 똑똑한데? 옻나무가 마침 거기 있어서 나에게 복수한 것인가, 자연의 보호체계는 참으로 놀라웠다.


가을마다 그 달콤했던 으름열매가 먹고싶다.

10년 전 쯤 영등포시장에서 으름열매를 팔았는데 감격하며 사서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구매한 산딸기가 직접 산에서 땄을때처럼 달고 맛있지 않았던 것처럼 으름열매도 거의 무맛에 가까운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추억이 훼손되었다.

너무 실망을 해서 다시는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고향의 열매들이 맛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면서 먹었던 많은 '달고 맛있는 음식'에 미각을 잃은 것일까,  아홉살 열살때 먹은 그 맛을 다시 느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자가 예전맛이 나지 않는것은 분명 원재료를 아꼈고 중량을 줄였다고 생각해왔는데 으름과 산딸기를 다 커서 다시 맛보고 나니 그런 확신들에 의구심이 든다.

그때 그 으름 다시 먹고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