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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Jul 15. 2023

<시>가 인간에게 주는 효익

마음에 온기를 더하는 시골쥐의 #텍스트테라피

문학을 읽다 보면 가장 난해하게 느껴지는 장르가 <시>다.

함축된 감정을 쏟아낸 짦은 구절들과 기승전결로 정형화되지 않는 문맥의 흐름은 읽는 이를 자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게다가 지은이의 창작 의도와 구절이 내포한 의미를 들어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오롯이 독자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왜 쓰고 읽히는 것일까?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이 함축과 은유의 문학을 찾고 있는 것일까?




시가 인간에게 주는 효익은 감정의 명확하다.

농도 짙은 감정이 담긴 시를 읽으며 독자는 시인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러니까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이란 말은 사실 아주 복잡한 단어다. 슬픔이란 말의 의미는 '마음의 고통' 정도로 풀이할 수 있지만, 그 고통의 종류와 정도는 매우 다양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슬픔이 존재한다. 어떤 슬픔은 종이에 베인 것처럼 따끔하고, 어떤 슬픔을 서슬 퍼런 칼에 찔린 듯 치명적이다. 모두 슬픔이라 표현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시는 이렇게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 시킨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세밀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를 읽으면 감정을 자세하게 배울 수 있다.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폭을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단계마다 그리고 종류마다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을 뚜렷이 알게 되고, 타인의 감정에 근사치로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나와 타인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풍부한 감정을 통해 삶이 풍성해진다. 이것이 "시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불혹을 목전에 두고도 나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현실적인 일들에 쫓겨 허둥지둥 살다 보니 감정을 들여바 볼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빠듯하게 느껴지는 건, 가벼운 통장잔고가 아니라 빈곤한 감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 편을 읽어 보아도 여전히 어리둥절할 때가 많지만, 그래서 시를 읽게 된다. 시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이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싶어서.


오늘도 짬을 내어 시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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