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서울에도 무인도가 있다

서울 밤섬과 여의도 그리고 토건 불도우저

by SeeREAL Life

#1.

며칠 전, 따끈따끈한 전시회를 다녀왔다.

Landscape of Seoul, <서울을 노닐다 展>


59인 작가들이 자신의 색채로 그린

과거, 현재 서울을 보니


글. 로라도 서울의 풍경을 풀어 놓는 것이

참 의미있는 작업이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쿵쿵쿵 울려왔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안충기 작가님의 <비행산수>

흑백의 농담으로 포착된 강북의 디테일은
빌딩의 뾰족함과 함께 바위산의 굴곡으로 그 대비를 여실히 나타냈다.


드론을 타듯

산과 어우러진(?) 강북 아파트 산수 경치는

서울의 선명한 여백을 보여주고 있었다.


들쭉날쭉한 아파트들 저편으로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날 것 같이

하얗게 빛나던 녀석.


맞아 서울에도 저런 곳이 있었지 라며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던 곳.

바로
밤섬이다.



#2.

캐스트어웨이를 너무 오마주한 거 아니야?

영화제목도 Castaway on the Moon이라니...



영화광인 나조차도 극장에서도 외면했던
영화 <김씨표류기>


무료하던 설날.

<출발비디오 여행> 영화소개에 확 꽂혀


"아니 서울에서 저런 라이프가 가능해?" 라며

본방까지 사수하게 했던

반전 매력의 <김씨표류기>는



짜장면을 섬으로 배달하는 철가방.

HELP가 HELLO로 바뀌는 무인도 메시지.

병뚜껑으로 만든 잇아이템 썬그라스로

유유히 골프까지 치던 여유에서


나도 일주일 정도 저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동경을 품게도 했다.


나름 나에게 자유(?)의 섬으로

기억되는 밤섬은


람사르협회에서 친환경 습지로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관리되는 세계 몇 안되는

메트로폴리탄 내에 있는 무.인.도.



#3.

밤섬은 조선시대 부터 모래사장이 아름다워

율도명사(栗島明沙)로도 불리며

서호팔경(西湖八景) 가운데 하나로도 손꼽혔다.


밤을 깐 모습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율도로도 불리는 밤섬


특히, 정도전의 한양 천도 이후

600여명이나 거주했다던 율도는

당시, 한강배의 95%가 이 에서 만들어질 만큼

솜씨좋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조선시대 부터 목선 제조소가 있는 섬으로
한양의 주요 선박지였던 율도.


“거주민들은 부유했고 마을도 번창했다”

조선시대 지리지에도 소개되며

1967년까지도 443명이 살았다고 하는 율도.


왜 번창했던 모습을 뒤로하고

수풀만 무성한 무인도로 변한 걸까?



#4.

“건설은 나의 종교다."


육사 4기출신의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은

박정희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서울의 인프라 사업을

그의 별명,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1970년대 서울지도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불도우저 김현옥 시장


서울개조사업 중 아파트 건설은

각하가 애정하는 사업이자

그의 야심작 중 하나였는데


1969년을 시작으로 서울시 총예산의 12%

당시 51억이라는 금을

<아파트> 건설로 쏟아붓게 된다.

박정희식 근대화의 기수로 불리우며


또한, 세종로와 명동 지하도

남산 1,2호 터널과 삼청터널 그리고 사직터널 개통으로

종로를 교통의 심장부로 만들고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와

국내 최초의 고가도로 아현고가도로,

서울역고가도로, 청계고가도로를 잇달아 건설한 그는


서울의 굶직한 건조사업을

그야말로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였다.


하지만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했나.


박정희 눈에 잘 보이도록

산비탈에 특별히 건축했던 와우아파트는



당시, 속도전으로 치달았던 서울시의 민낯을 보여주는
건국이래 최초의 대형 인재였다.


1970년 4월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라는

건국이래 최초의 인재형 대형참사라는

오명을 런칭시킨다.


결국 김현옥은 자신의 대들보이자

각하에게 가장 사랑 받던 아파트사업으로

독배를 들이키게 된 셈.



#5.

율도는 사실

김현옥식 서울개조작전의 희생양이었다.



밤섬 제거를 위한 현장체크를 하고 있는 김현옥 시장
밤섬 주민들은 졸지에 와우산 자락으로 쫒게나는 처지가 된다


와우아파트가 붕괴되기 2년 전,

한강개발과 여의도 제방구축을 핑계

폭파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


당시 서울시의 지도를 통째로 바꾸고 있던

김현옥 시장에게 눈에 들어온 것은

매립을 통한 공유지 확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토목공사를 진행하면서

서울시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시유지 장사와 함께

외자유치가 너무나도 필요했던 상황.



1966년 서울물난리는 서울시에게
의도치 않은 사업전략을 선사한다.


1966년 서울의 기록적인 물난리는

한강대교부터 영등포까지 제방과 도로를 정비를 하게 했는데

이는 의도치 않게 노량진-신길 인근에

수십만 평의 시유지를 서울시에 선사하게 된다.


“매립을 통한 대량 공유지 확보전략”


김현옥 시장은 무릎을 치며 특유의 토목계산력으로

다음 잭팟을 터트릴 곳을 눈여겨본다.


여의도는 경성방어의 목적으로
일제 강점기때부터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


일제시절 비행장으로 쓰이며
걸핏하면 물에 잠기는 모래섬, 여의도를.



#6.
제2의 서울 물난리를 막겠다며
떠들석 하니 진행된 <여의도 정비사업>은

사실 김현옥의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손수 기획한 세일링 상품이었다


수백만평의 공유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당시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기획되었던
서울의 첫 대규모 도시계획, 여의도 정비사업
흥미로운 건 국회뿐만 아니라
서울시청도 이전시키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동시에 초반 초기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비용최소화 전략을 취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밤섬 폭파였다.


바위섬이었던 밤섬은

여의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폭파와 함께 매립을 진행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었던 셈.



밤섬폭파는 바닥난 시 재정 상황에서
윤중제로의 자재 조달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됬다.


물론, 언론에는

밤섬이 한강의흐름을 막는다는 구실을 씌워

폭파로 범람을 막자는 연막을 피웠다.


그리고 불도우저 김현옥은 놓칠세라
당시, 공사장에 이동식 시장식까지 설치하며
직접 진두지휘 아래

불과 110일만에 여의도 방죽을 완공시킨다.



당시 여의도는 경성공항을 제외하고는 방치된 섬이었다.


이렇게 밤섬과 여의도는

운명이 뒤바뀐 채

87만 평의 택지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7.

서울의 첫 대규모 프로젝트였던 여의도는

당시 다소 생소했던 격자형으로 기획되어 간다



뉴욕 맨하탄을 롤모델로 격자형으로 계획된 여의도


그럼 왜 격자형 일까??

여의도가 네모섬도 아닌데??


비밀은 현대적인 토지체계라는 시늉이었는데

이는 땅장사 하시는 분들이 가장 좋아라 하는
<Favrite 토지 상품>이었던 것.

이는 속내를 조금만이라도 파게되면

아..하고 그 꿍꿍이를 알게 되는데


바로, 건물이 들어서기 편한 네모땅으로
두부 자르듯이 숭텅숭텅 잘라

토지 면적에 대한 수익성을 최대로 살리는
토지 상품인 것이었다.



애초부터 팔기 쉽고 되팔기도 쉽도록
세밀하게 기획되었던 여의도


김현옥 시장은 급한 성격 만큼이나
택지가 마련되자 마자 도로와 공원을 제외한
55만평을 민간에 급매를 시작 한다.


그 허허벌판이 금싸라기 땅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10만평짜리 국회의사당 입주를 시작으로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종교시설들이 차례대로

"묻지마 땅투기"로 부동산서울의 그 서막을 알렸다.



이렇게 땅장사로 재미를 본 서울시는

반포지구, 동부이촌동, 서빙고, 압구정,잠실로
넓혀가며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장벽 한강을 만들게 된 것.


"서울은 싸우면서 건설된다"는 그 유명한 말처럼

그 폭력에 뭍힌 유산을


서울은 일상으로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 8.

자연의 힘은 오묘하다고 해야할까?

아니 경외스럽다고 해야 할까??


1968년 폭파되었던 밤섬은

당시 1/300 크기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강수위가 낮아 질때만 드러나는 모래톱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십수년이 흐르자 쌓이고 쌓이던 퇴적물은
그 모래톱을 다시 원래크기의 밤섬으로

다시 잉태했다.

반세기 만에 6배나 커진 밤섬.
매년 평균 4,400㎡씩 증가해 현재는 279,531㎡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니, 벅적대고 척박했던 바위섬을

철새들의 안식 장소인 모래섬으로
말 그대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섬의 히스토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연 재생의 치유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람사르 협회는 밤섬을 람사르습지로 공표하며
국제자산 차원으로 그 생명력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대도시 한복판의 습지이자 철새들의 보금자리, 밤섬



#9.

폭염이라고 더웠던 저번 주말

뭔 객기일지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끌고 한강변을 달렸다.


여기 저기에서 보이는 아파트 장벽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뾰족이 L Tower는

아직도 토건 서울이 계속되는 구나 라는 쓴맛을

머리에 맴돌게 했다.


어느덧 숨이 찰 찰나

시야에 닿는 푸른 섬, 밤섬


비록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무성한 풀잎을 보며 왠일인지 가슴이 시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되뇌였다.


더 커져라. 새들만 아니라 인간들도 쉴 수 있게.
푸른 그 속에서 함께 쉴 수 있게.

자유의 섬
회복의 섬
부활의 섬
새들의 섬



아직도 진행중인 서울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싸우며 사는 콘크리트 도시인들이 배우며
푸른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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