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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REAL Life Oct 03. 2018

아트테라피스트 김한나

굴레에 갖히게 되는 거야


자신의 재능으로

어떤 가치 있는 삶을 만들수 있을까

고민하는 한 사람이자


자신의 인생스토리가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갖게 만들고 싶다는

아트 테라피스트 김한나


15년의 소년원 미션사역을 시작으로

3년전부터는 <심플리 러브>를 통해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예술미션사역을 하고 있는


그녀의 꿈의 여정을

담아보기로 한다.



어릴때 말했던 것이 이루어졌구나


저는 꿈이 자주 바뀌는 아이 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드라마 작가도 하고 싶었고
라디오를 너무 좋아해서 라디오 작가도 되고 싶었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우리 뭐 뭐 해볼까요?" 이러는 터에
유치원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다 큰 어른도 도와줄 수 있는 상담사도 되고 싶었죠


그러던 그녀 였지만

하기 싫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학"


아버지가 사역을 하시고
이미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살아갔던 아이였기 때문에
"나 신학 절대안해" 라고 했죠


하지만 그녀에게는

멋진 비밀이 있었다.


이미 꿈으로 보여주셨던



초등학교 1학년 때 꿈을 꿨어요
교회 본당문이 열리고 어떤 멋진 여자분이 걸어오시는 거에요
그 옆에 두명의 보디가드들도 있고
꿈에서 깨어나서 물어 봤죠
"아빠, 전도사님은 멋있는 거야?"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 멋진 분이시지"
저도 꿈에서 본게 있으니까
"그럼 나도 전도사님 할래" 라고 했어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기한 건

정말 신학대에 가게된 그녀.


"어릴때 말했던 것이 결국 이루어 졌구나" 라며

그때의 꿈을 다시금 회상하게 된다.




단발머리의 언니들


사실 부모님의 권유가 있기전까지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다는 그녀.


그리곤 고3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꿈이뭐니?" 라는 질문에
"유치원 선생님을 해야할 것 같아요" 라고 했어요
"하고 싶어요" 가 아니라
소년원 아이들을 많이 봐 왔으니까
세 살버릇 여든간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이 배려받고 칭찬받고 충분히 따듯한 기억을
쌓게 해 주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이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따듯하고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어린시절의 첫 번째 사회생활을
사랑으로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하니
선생님 눈이 촉촉해 지는 걸 느꼈어요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사역지를 다녔던 그녀는


자연스레 소년원의 아이들

고아원의 언니들을


마주했다.


제가 4살 정도 됐을때
아버지는 저를 고아원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당시 저는 삐삐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고아원 언니들이 다 단발이었던 거죠
왜 언니들은 단발머리에요?라고 물으니


한나는  엄마가 머리를 단정하게 해주잖아
고아원 언니들은 그렇게 못하니까 그런거야


그리고 어린 꼬마임에도

언니들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 했던 한나.


아빠, 그럼 나도 자를래     



새벽시장


그런 자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함께 하고
돕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길러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는

의 가슴 어린 교육이 있었다.


나랑 오빠가 고등학교 때
뭔가 나태해진 것 같으면
아버지가 새벽 3시에 깨워서
농수산물 시장에 데리고 갔어요     
그냥 차 안에 앉아가지고 보는거죠
그 시장의 새벽을


너 왜 그렇게 게을러 졌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니?
지적하고 타박 하는게 아니라


묵묵히 데려가신 아버지

     

시장만 불켜져 는 깜깜한 새벽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들 속에서


삶을 스스로
돌아보길 원하셨던 것.




아버지의 빅픽쳐


그런 아버지에 모습에도

뒤돌아 보노라면

빅픽쳐가 있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스무살무터 시작하게 된 소년원사역

자발적으로 하게 되신거에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인터뷰를 이어간다.



시작은 자발적이지는 않았어요
신학대를 가고 그해 여름부터 시작했는데
부모님이 "너도 신학생이 됬으니 함께 해보지 않을래?"
라고 하신거죠
그런데 뒤돌아보면
아마도 아버지의 빅픽쳐가 아니었나
신학대를 권한 것부터 말이죠 ㅋㅋ


그런 아버지의 빅픽쳐(?)와 함께

 <심플리러브>를 하면서 알게 

큰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이 결혼하시고
서른번의 이사를 했어요
심지어 한달만 살고 이사한 적도 있었구요     
그걸 스트레스로 여길 수도 있었는데
부모님은 즐거운 여행처럼 느끼게 해주셨어요
"우리 또 새로운 집으로 간다"고
이번 집은 어떤 집일까 기대된다 라고 하시면서
저에게도 이번 동네에서는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라며
기대감을 심어 주셨죠


어린 아이일 수록

애착을 갖는 대상들과 헤어짐은

더 힘들기에


그 자체를 새로운 기대감으로

시켜 주셨던 부모님


     

나중에 선교나 여행으로
많은 외국을 다니면서 든 생각이
많은 이사가 나의 적응력을 길러 줬구나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주셨죠



호기심이 미움으로


하지만 그녀라고

순탄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간 그녀를 향한

친구들의 호기심은 머지않아

미움과 질투로 바뀌었다.




중2 때 전학을 가서
3학년 때 학교에 아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그때 저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아침에 제일 먼저 등교를 하면
모든 수업이 마칠 때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는 편이었어요.


수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피부도 하얘가지고 조용하니

그저 가만히 있는 아이였던 그녀.

 

그래서 여자얘들이고 남자얘들이고
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거죠
먼저 다가오는 애들하고만 친해졌던 저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은
굉장히 활발하고 시끌시끌한 아이들이었어요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 좋았어요

    

그런데 쉬는시간 물싸움을 하고

홀딱 젖은채로 들어와

선생님께 혼이 나는 친구들과 달리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기에

혼자만 혼나지 않는다거나



워낙 말없이 미소 띈 얼굴로 있으니

남학생들 인기투표에 올라간다거나


얄미운 얘가 되어 버린 그녀   


     

저를 대하는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던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남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저를 둘러싸고 서서
격앙된 목소리에 욕이 섞인,
대화가 아닌 그저 기분 나쁜 감정을
표출하는 말들을 쏟아냈어요
그러다 지나가던 남자애들이
제 편을 들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죠
친구들 중 한 명이 좋아하는 남자애였는데
저 때문에 그애랑 싸우게 된 거예요



그러다 모든 상황이 지나고

집으로 가는길에


육교를 지나게 된 그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기분이었어요
육교 위에 서서 눈물을 겨우 참았던 기억이 나요
그 다음날부터는 더 심각해 졌어요
이유없이 욕하고 툭툭 건드리고
심지어 다른 반에 저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저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까지



하지만 그시간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갖게 맺었다고 한다.



항상 제 손을 꼭 잡아준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와 모든 걸 함께 하면서
다른 반 친구들을 알게 되었는데
모두 참 고맙고 좋은 친구들이에요
그 친구들 덕분에
갈기갈기 찢겨 아파하던 마음을 추스르고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걸려온 전화.

그녀를 괴롭히던 무리 중 한 명의 사과였다.



두 달 넘게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님 걱정하실까 혼자 속앓이 하며
몸도 많이 아팠어요
그러다 방학을 했고,
개학을 얼마 앞두고 의외의 전화를 받았어요
저를 힘들게 했던 친구들이 여덟명이었는데
그 중 한 친구였죠



자신은 미워한 적 없다며

다른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건

똑같이 당할까봐 무서워서였다고


사과하는 전화를 받은 그녀.


그렇게 사과하는 친구에게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맘고생 많았겠다며 다독이고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는 괜찮느니까
혹시라도 화해할 마음이 있다면
편히 웃으며 인사하자는 말을 부탁했어요   



15년의 시간, 소년원 사역


걔네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내가 더 비참해 지기 시작해
미움이 있는 사람이 더 괴로워     
물론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미운 마음을 품고 살게 됬을 때는
본인이 더 괴로워지는거지
굴레에 갖히게 되는 거야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가장 많은 했던 말이었다


그녀가 경험했던

용서의 비밀.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잘못한지 몰랐어요
그리고 굉장히 억울해 하구요
사실 그 아이들 역시 피해자인거죠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가해를 당했으니 가해를 하게 되는     
그래서 "그 굴레를 벗어났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정식으로 사과하고 뉘우치고 용서 해서
너의 억눌린 마음에 자유를 갖을 수 있도록


소년원 사역을 한지 5년이 되던 해.

예년처럼 소년원에서

여름신앙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스탭이 아닌 교사를 하게된 그녀.


4일 동안 계속 그 아이들과 마주하며

성경공부를 해야하는 시간이 찾아 왔다.


당시, 소년원에서도 거칠기로 소문나있던

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까다롭기로 소문났던 녀석들이 찾아와서는
자기도 함께 성경공부를 해달라고 하는 거죠
예상대로 전쟁같은 시간이었어요
한명은 머리가 아프다 한명은 어지럽다
여기기로 흩어지는...
결국 저도 선전포고를 했죠
너희가 여기서 나가면 교회를 안올게 확실하니
나는 너희들이 이 시간 동안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을 위해 금식을 시작한다


어리둥절 하던 아이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을 알았는지

정신산만하던 아이들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고


10분 들어 주던 녀석들이 20분으로


나중에는 맨 앞자리에 앉으며

졸더라도 성경말씀을 듣는 걸 발견한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니
예배시간에도 집중이라는 걸 하는 거에요
찬양에 손벽을 치더니
손을 들고 찬양을 부르고
기도할 때 자기들끼리 떠들던 애들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중에 무슨일이든지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아이가 있었다


스스로 찾아와 고민을 상담하는 아이.


전체 생활관 반장이기도 한 친구였는데
"내가 주먹을 안쓰고 애들을 어떻게 통솔할 수 있겠느냐" 는거죠
저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때리면 너도 마음이 편해? 라고 물어봤어요
때린다는 건 걔만 때리는 게 아니야
너가 주먹으로 치면 너도 아프잖아 기분도 안 좋아지고
너가 너 자신을 아프게 하는걸 왜 계속 해야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라는 질문에

그녀 역시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럼 이렇게 하자
무릎을 꿇고 깍지를 끼우고 손을 모아서 고개를 숙여
그리고 기도를 해봐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모습 자체가

"나 잡아 잡수쇼" 하는거랑 똑같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
다름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 증언을 듣게 되었죠
진짜 그 친구가 그런 상황이 왔는데
정말 그렇게 두손을 모아서 기도를 했다고
그리고 4일의 수련회를 통해
소년원의 말 못할 변화들이
정말 많이 벌어졌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구요


그때 수련회때 담당했던 애들 중

연락이 닿는 이이들은

세명 정도.


그 아이들은 벌써 서른이 넘었다.


그 중 두명은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 않지만
착실히 자신의 삶을 잘 살아 내는 걸보니
너무나 대견했어요
작년에 결혼을 한 친구 그리고
오래 한 직장에서 근속하면서
관리직까지 올라간 친구를 보면서도
참 뿌듯하더라구요


자기의 입으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다고

자조하던 아이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What is LOVE ?


몇 년전에 소년원 아이들이 저를 신기해 하면서
선생님의 꿈은 뭐에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사실 저는 꿈이 뭐냐고 질문을 하는 입장이지
받아본 것은 낯선 경험이어서...
그제야 뒤를 돌아 볼 수 있었죠


나는 예전에 꿈꿨던 걸

이미 하면 살아가고 있잖아


내가 좋아하는 문화로도

사역을 하고 있고


라고 생각하게 된 그녀.


그때부터 나에게 했던 말은
어떤 일을 꿈으로 삼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가를
꿈으로 삼자는 거였어요


그리곤 이제야

자신의 새로운 꿈을

찾아냈다는 그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싶도록 만드는 사람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풍성히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게 이제 저의 꿈이에요


그래서 일까?


3년 전부터

"문화"라는 달란트를 통해

세계 여러곳을 다니며

문화예술선교를 하고 있는 그녀.


다양한 재능이 모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심플리 러브>를 통해


그녀는 마음을 터치하는 울림과
호기 어린 광경을 계속 만들어 간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의 다양한 빛깔로서 어우러져서 살아가죠
때로는 자기 색깔을 내새우느라
혼란스럽고 혼탁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고 어우러져서 살아가다보면
결국은 우리가 드러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에요
그래서 저는 항상 묻곤 한답니다
What is LOVE?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나의 DREAM은
나를 "드림"입니다

그래서
저 자체가 좋은사람이 되어

이끄심에 사용되는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스토리텔링 : [See REAL] + Life   

   인터뷰&일러스트레이팅 : 바이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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