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이 아닌 꿈을 시도하는 삶으로
유아교육과 남자신입생
초등학교때 꿈은 파일럿이었어요
"빨간 마후라"
중학교 때는 멋진 배우였구요
극중에 아름다운 여성들과 연애를 해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포기하라고 하셔서
그 다음부터는 꿈이 없었죠
고3때 내가 뭘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을할 때
여름성경학교를 가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봉사를하면서 알게 된거죠
아이들이 특히 절 잘 따르고
저 역시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그렇게 마음을 받았어요
아이들을 섬기는 마음을
그리고 유아교육과를 가기로 결정을 했어요
남자가 무슨 유아 교육이냐고
부모님께 너무 반대를 하셔서
합격이 됬는데도 입학을 취소 했죠
부모님께서 교대까지는 봐주겠다
그러셔서 교대입학 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게 된 거에요
그래서 결국에는 유아교육과 입학을
허락해 주셨죠
학교를 갔는데 신입생 중에 저 포함해서
딱 세명이 남자인거에요
게다가 저는 남중, 남고만 나와서
여자들의 세계에 너무 생소한 거죠
사실 남자들은 안 맞아도 우루루 몰려 다니는 성향인데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그룹에서
어떻게 노선을 정하느냐가 참 어려웠어요
나중에는 저밖에 없더라구요
남자 세명중에 한명은 일주일만에 그만두고
다른 한명은 한달만에 그만두고
아이들은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것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막상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과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어요
버티기가 쉽지 않았죠
자살시도와 기적인 회복
유아교육과를 간 것 때문에
군대생활도 다 어그러 졌었어요
남자가 유아교육과를 다닌다고
고참들이 “얘 레즈비언이다”라며
괴롭히기도 많이 했죠
성 정체성이 문제인 사람인 마냥 대하면서
절벽에서 뛰어 내려서
목뼈가 부러지게 된거죠
목뼈가 부러지면
기도가 막혀서 죽던지
신경을 눌러서 전신마비가 되는데
저는 신경을 눌렀어요
그래서 한달동안 전신마비로 있었죠
군인병원에서
아무런 꿈도 없었어요
사실 초코파이만 먹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군인시절인데
저는 그런 일상적인 것조차 못하는 식물인간이 됬으니
그걸 아셨는지
여자 군의관 장교님이 오시더니
기도모임에 데려가 주신거에요
저는 그때까지 교회는 다녔지만
중고등학교때 엄청 놀았아서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죠
맨날 싸움만 하러 다니는 날라리 정도??
친구들이랑 돌아다니면서
다른 학교의 일진을 때려부시는게
그날의 즐거움 이었어요
중학교때부터 교회를 나갔었는데
애들이 싫어 하더라구요
저 때문에 교회를 안나오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제발 다른교회 가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생명이란걸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즐거워 하시는 일들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내가 제대하면 정말 어려운 개척교회에 가서
내가 육신으로 할 수 있는거 다 도우겠다
인투비전의 시작
프랜차이즈 학원을 할 때 였어요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는데
온누리 교회에서 해외선교사 모집하는
전단지를 봤어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그때는 별 생각없이 지원했는데
정말 뭐에 이끌리듯이 모든 상황이 열리게 된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구요
저는 사실 학원사업을 하면서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마음이 완전 닫혀버렸어요
아시겠지만 학원에서도 가장 말 안 듣는 아이들이
그 또래 아이들인데다가
사실 저 역시도 중고등학교를 험하게 보냈기 때문에
제가 그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같이 선교지에 있던 하용조 목사님의 동생분이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살리는 학교사역을 하고싶다고 말씀하셔서
"그렇다면 저도 흔쾌히 돕겠습니다"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인투비전이 시작하게 된거구요
초창기 아이들은 오토바이 타고 도망다니고
클럽다니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저의 중고등학교때를 보는 것 같아서
편하더라구요
정말 잘 어우러졌죠
그래서 더 그랬나봐요
이 아이들한테는 감정적인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알려줘야 할 것 같다
감성적으로 훅 들어왔다가 훅 떠나는게 아니라
마음속 깊이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부쩍 꿈을 더 많이 갖게되는 요즘
요즘 드는 생각인데요
저는 이제야 꿈을 꾸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어 교원 시험을 봐서
독일이나 덴마크에가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오십이 넘고 육십이 되면
아내와 함께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지?
저는 이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되고 싶어서 꿈을 꾸면
당연히 좌절할 수 밖에 없죠
이룰 수 있는 자리에 비해 바라는 사람은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이룬다고 해서
만족이 지속되지도 않구요
왜냐면 그 꿈을 이루게 되면
그것보다 더 거대한 꿈들을 만나는 것이
세상이니까요
모세의 경우도
"나는 민족의 지도자야" 라는 것을 꿈을 꿨다면
모세가 가나안땅에 못들어 간 것은
아마도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 거에요
그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람들을 광야 가운데 인도했어
여기까지가 나의 역할이야
라고 한다면
자신은 가나안땅에 안들어 갔어도
내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구나
를 느끼며 감사할 수 있게 되는거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인지 분명하게만 알면
그건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 보면 되는거라고
진짜 행복한 삶이란
요즘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청소부여서 비참한 삶이 아니고
서빙을 한다고 해서 비천한 사람이 아니야
남들보다 돈이 없어서 비굴한 삶으로
머무는게 아니라
삶이라는 그 그릇 안에서도
내가 얼마든지 가치있는 삶으로서 변화 시킬 수 있어
자신이 꿈꾸는 일을
얼마만큼 즐기느냐가 중요해요
내 주어진 위치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내가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되면
그 인생은 진짜 행복한 삶이 될거에요
사람들이 보는 시각 조차가 달라지면서요
그래서 우리는 꿈을
평생 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늙어 죽을 때 까지
타협하는 삶이 아닌
꿈을 시도하는 삶으로
하루라도 젊었을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좋아 하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는 어땠지?
그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향력은 무엇이었지?
그럼 이 일도 내가 좋아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야 겠다
를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중고등학교 때 실패해 보지 못하면
청년이 됬을 때는 시도를 못하게 되고
성인이 됬을때는 그 중압감에 더더욱 선택을 못하게 됩니다.
지금 중고등 학교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공부만 하잖아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근데 막상 공부만 하면
그 꿈은 점점 멀어지게 되는거죠
결국엔 공부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타협하게 되구요
대학을 가서도 사회를 나와서도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것들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자꾸 타협하는 것들로만 살아가게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10대 아이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뭐에 끌리고 흥분하게 되는지
그것을 포착하라고
대학을 가서 찾으면 이미 늦다고
내가 뭘 좋아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음에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리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 일들을 할 때 물질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내가 영향력이 있다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실패하지 못하면
꿈을 꾸지 못합니다
그리곤 나중에 그 무게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한채
타협만 하고 살아가게 되죠
합리적인 안정보다는
시도하는 젊음은 어떨까요?
꿈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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