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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21. 2024

그와 이별하기 하루 전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8화

[D-2]


"도대체 어디 있는 거..."

물방울 차를 타고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녀도 마지막 달조각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이틀 남았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조각에 어깨가 아래로 꺼. 

'왜 마지막 달조각은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전처럼 다가와 주지 않는 걸까-.'

나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그 매 내 앞으로 쭈그리고 앉아 손을 어주었다.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이만하면 충분."


나는 고개를 세었다.

"마지막 조각만 있으면 돼! 조금만 더 찾아보자."

매신은 웃으며 손을 쥐었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눈빛, 참 다정한 시선이었다.

"남은 이틀은 너와의 추억으로 채우 싶어."

매신이 말한 '남은 이틀'은 말 그대로 우리가 이별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손 위로 느껴지는 매신의 체온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별이라는 현실이 실하게 껴졌.

'그래, 달조각은  포기하고 함께 남은 시간을 누리자. 앞으로 이틀이면 매신을 보지 못해.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매신의 모습을 눈에 담자.'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웃어 보였다. 아마 좀 전의 매신도 나와 같은 이유로 웃었던 거겠지.

"응, 그러자."




우리는 벤치에 앉아 마지막 여정을 어디서 보낼지 민했다.

'휘릭~'

그때 리 앞으로 전단지가 날아왔다. 제주도 옆에 있는 작은 섬, '우도'에 관한 전단지였다. 

하필이면 코 앞에 떨어진 전단지에 우리는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곧바로 결정해 버렸다.

"우도로 가자!"

"좋아!"

"물방울 차 바 건널 수 있어?"

"연하지, 애초에 바다사람을 위한 이동수단인걸. 그럼 바로 우도로 가 볼까?"

우리는 곧바로 물방 차를 타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쏴아- 쏴아-'

육지에서 들었던 파도소리가 바닷속에서도 들려왔다. 조금 더 묵직한 파도소리는 웅장하게 바다를 울려댔다.

"좋다-."

물방울 차 시트 아래로 바다 결이 느껴졌다. 가는 동안 물방울 차는 꿀렁거리기도 했고 중간중간 울렁대기도 했다. 매신의 말에 의하면 꿀렁거림은 바다결을 빠르게 스치느라, 울렁거림은 해파리를 통과하느라 그런 거라 했다.

"물방울 차는 생명체도 통과할 수 있는 거야?"

"원래 안되지만 해파리는 특수한 경우야. 반투명이라 반은 통과되고 반은 통과되지 않거든. 그래서 울렁거림이 느껴지는 거야. 웃기지?"

"하하, 신기하다."




"우와- 우도다!"

어느새 우도에 도착했다. 앞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바다에는 태양의 빛을 담은 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매신과 나는 언제나 그랬듯 정원을 찾았다. 왜인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자연은 그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 때문이었다.


정원에는 수국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핑크색 수국도 보였다. 립스틱 바른 여성에게 키스라도 당한 것처럼 진한 핑크색이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꽃길을 계속 걸어갔다.

"스모스 좀 봐!"

"너무 이쁘다."

생각지도 못한 코스모스가 잔잔한 풀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뛰어들었다. 그리고 뒹굴거렸다. 코스모스가 몸을 스치는 소리, 바람 불 때마다 퍼지는 꽃들의 향기가 마음의 여백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을 부르르 떨어내면 언제라도 꽃잎이 흩날릴 것 같았다.


우리는 풀밭 위로 엎드렸다. 이번에 펼쳐든 것은 달조각 지도가 아닌 빈 종이였다. 매신은 목걸이에서 크레파스를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리 서로를 그려주자."

매신과 나는 서로를 눈에 담으며 영원히 남겨질 종이에 시선의 여운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매신의 얼굴 옆으로 보라색 꽃과 초록색 잔디를 그려 넣었다. 종이 속 활기가 더해진 매신의 얼굴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매신의 눈을 채우려 파란색 크레파스를 들었을 때 갑자기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그의 팔에 기대 울, 매신은 그저 말없이 나를 꽉 안아주었다. 그의 어깨에서도 나와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D-1]


이별까지 마지막 남은 하루,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 눈물이 눈을 가려 그를 흐리게 기억할 순 없다. 비록 전날밤만 해도 베개 솜 묵직해 정도로 울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껏 그와의 스킨십은 포옹, 손잡기가 다였다. 더한 걸 하고 싶을 때 있었지만 이 정도 온기만으로도 평생을 살아갈 동기는 충분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기로 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마지막 마무리를 일상으로 끝내는 것, 그렇게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는 것. 매신과 내가 생각한 최고의 끝맺음이었다.

우리는 앞치마를 두르고 나란히 서서 요리를 했고 투닥거리며 설거지를 했다. 거실에 누워 편지를 쓰기도 했고 서로의 머리를 말려주기도 했다. 

언젠가 지금을 기억하고 플 나를 위해 중간중간 눈을 감고 순간을 촬영했다.


함께 앉을 때면 매신이 늘 내게 했던 말.

"다리 꼬지 마. 골판 틀어진대."

'앞으로 다리 꼬을 때마다 아니, 앉을 때마다 그가 생각나면 어쩌지? 그때마다 울면 어쩌지?'

아아..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려 한다-.

나는 고개를 젓고 매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우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저 지금을 누리자. 그렇게 훗날 온몸으로 기억해 내자.'


'스르륵'

매신의 어깨를 타고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매신은 내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주며 말했다.

"우리 오늘 밤에 별 보러 갈까?"

나는 그의 눈에 뜬 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러자."


해가 지기까지 시간은 느리고도 빠르게 흘러갔다. 여유로우면서도 조급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기다려지면서도 오지 않기를 빌었던 밤이 결국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냈다.

밤에도 외투가 필요 없을 선선한 날씨였다. 반팔에 산책하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매신은 언제나 그랬듯 카디건을 내 어깨 둘러주었다. 내가 괜찮대도 혹시 모른다며 단추까지 잠가버렸다. 나는 웃으며 매신의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우리는 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언덕으로 올라갔다. 길 이곳저곳에는 낮에 보지 못했던 달빛의 생기 깃들어져 있었다. 나무와 잔디 사이 보이는 반짝임은 별의 예고편을 보는 듯했다.  


언덕에 다다르고 풀 숲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등과 종아리에 닿는 풀은 바람에 닿아 살을 간지럽혔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나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도 지금의 순간을 뇌 주름 깊숙이 새기고 있는 거겠지. 그와 나는 동시에 시선을 서로의 얼굴로 옮겼다. 넓은 우주 속 우리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 거면 충분했다. 매신은 내게 팔 베개를 해주었고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와 이별하기 하루 전, 그와 작별하기 몇 시간 전. 우리는 그렇게 가만히 서로의 온기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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