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Aug 26. 2024

[마지막 화] 이별 그리고 만남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마지막 화

그와 보내게 될 마지막 하루…

'솨아-'

바람이 풀을 쓸어가는 소리가 좋았다. 코 끝에 닿는 그의 향이 좋았다. 옆으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좋았다. 분명 울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그만 덜컥 눈물이 흘렀다.

매신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분명 자신의 눈에도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고 있면서 매신은 오직 내 눈물만을 신경 썼다. 이별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30분.. 우리는 서로의 가슴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언제보다도 서러운 포옹이었다. 그렇게 그가 내 볼을 만지, 서로의 시선이 닿았을 때, 우리는 키스했다.


그와의 첫 키스. 서로의 침이 오가고 서로의 체온이 전해졌다. 이내 잠잠해진 바람소리에 매신과 나의 거친 호흡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한번 더 입술을 부딪히려 할 때 갑작스레 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간질거림은 에서 옆구리, 이내 가슴까지 넘어왔다.

'뭐.. 뭐지..?'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각. 간질거림은 위까지 전염되어 금방이라도 무언가 큰 덩어리를 뱉어낼 것 같았다.

'올라오고 있어..!'

이런, 정말 토가 나와버린다. 커다란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어서 매신을 밀쳐야 하는데, 내 뒤통수를 꽉 받들고 있는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안돼.. 안돼..'

'울컥-'

결국 입에서 나온 무언가는 맞물린 매신의 입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매신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 이게 뭐지..?"

이내 떼어진 입술. 매신의 입에서 노란빛이 새고 있었다.

"달조각이야..!"

내가 토해낸 건 다름 아닌 달조각이었다. 그때 매신의 입으로 옮겨진 달조각이 스스로 나와 매신의 목걸이 속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완성된 목걸이 둥실 떠오르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뭐, 뭐지?"

우리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높이 떠오른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달 목걸이는 보라색 빛을 내며 작은 우주를 만들고 있었다.

"내 몸 안에.. 마지막 달조각이 있던 거였어..?"


그렇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달조각을 먹어버린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 이기에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만이 매신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물방울 차를 탈 수 있었던 것도, 파도가 덮친 날 바다가 나를 지켜줬던 것도 마지막 조각이 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신이 내 어깨를 쥐며 말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 소라가 그동안 잠이 쏟아졌던 것도 몸이 달조각을 버거워했기 때문이."

"그런데 왜 이제야 삭 조각이 튀어나온 거지?"

"아마 달 목걸이가 소라의 가슴에 닿았기 때문일 거야. 5개의 조각이 모두 합쳐지면 삭 조각을 끌어낼 수 있어. 흔한 방법은 아니야. 아주 가까이에 있어야 힘이 작용하거든."

"그동안 달조각이 먼저 찾아와 줬던 것도 내가 삭 조각을 삼켰기 때문인 거야?"

"맞아. 삭은 모든 달조각의 마지막 모습이라 다른 달조각을 이끄는 힘이 있어. 설마 그런 이유였을 줄은…"

마침내 작은 우주가 된 달 목걸이는 노란빛을 내며 매신의 목에 걸어졌다.

"결국 완성했네."

"그러게."

그때 매신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 기어코 블루문이 떠 버린 것이다.


[D-0]


달조각을 모두 찾았다는 감격도 잠시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매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 매신의 피부가 바다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안돼-안돼… 우리 같이 수영하기로 했잖아. 언젠가 바다로 날 초대한다 했잖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뭐가 있을까,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그때 매신이 목걸이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손 쥐어 주었다. 전에 함께 찾았던 물망초였다. 매신이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목에 새어 들어온 걸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자꾸만 목이 메어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손 가득 쥐어진 물망초는 이 다시는 보지 못할 그의 눈망울을 대변해 손을 촉촉이 적셔댔다. 

'뚝- 뚝-'

매신의 푸른 눈, 그의 눈에서 떨어 바닷물이 내 피부 위앉아 언젠가 투명해질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활짝 핀 물망초를 오른손에 이고 왼손으로 매신의 허리를 둘렀다. 감정을 담아 못다 한 키스를 쏟아냈다. 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까, 우리는 육지와 바다 경계 어딘가서서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댔. 서로의 머리를 엉켜냈고 서로의 입술을 뜯어 냈다.


그렇게 매신의 윗입술 먹으려 할 때 그 사라져 버렸다. 이젠 더 이상 매신의 시린 체온도, 매신의 두툼한 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맨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눈에 맺은 눈물은 하늘에 뿌려진 별보다 시야를 흐리게 했고 깊은 바다보다 더 아득하게 앞을 가려댔다.

'이걸로 정말 끝이구나- 이제 매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구나. 우리의 평범했던 매일이, 우리의 특별했던 하루가 이제는 그저 소중한 추억이 되어 버렸구나'

뜨거운 눈물은 대지의 빗물이 되어 떨어질 뿐이었다.

나는 팔을 뻗고 바닥에 들어 누웠다. 눈가 고인 빗물 별똥별이 되어 누군가의 소원을 앉고 왼쪽으로 흘러갔다. 지금 내 소원은 뭘까…


'매신의 얼굴을 보는 것'

난 단지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단 몇 초라도 말이다.

나는 무한히 재생할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깊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별똥별은 희미한 빛을 내 떨어지고 있었다.

"어?"

그때 눈물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수많은 별똥별들이 떨어졌다. 폭죽 터지듯 번져가는 별들은 달보다도, 태양보다도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한 별, 분명한 별똥별이었다.


"매신?"

별들 사이로 매신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 차오른 눈물에 그의 얼굴이 흐려 보이긴 했지만 분명 매신의 얼굴이었다.

"나야."

매신은 나를 들어 안았다. 숨이 조여와 끊겨 버릴 것 같지만 그따위야 상관없었다. 팔에 간신히 힘을 주며 나도 그를 힘껏 안았다. 매신은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닦며 말했다.

"사랑해, 사랑해-."

매신의 목걸이 달의 뒷모습과 같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달가루가 묻어 있었다. 매신이 달조각을 손으로 뭉개 하늘에 뿌려버린 것이었다. 내 손은 매신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하염없이 흐르는 그의 눈물을 닦기 위함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다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여기, 육지에서 너와 함께 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교류자가 자신의 달 목걸이를 직접 파괴하면 다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게 돼. 그리고 육지사람이 되."

푸르던 매신의 눈동자가 바다에 젖은 흙빛으로 바뀌어갔다.

"뭐? 너 바보 아냐?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내가 이렇게 하지 않는 게 가장 무모한 짓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놓 수 없어."

"매신..."

우리는 다시 키스했다. 그렇게 잊힌 매신의 푸른 눈동자를 대신할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우리는 이불 한 개를 눠 덮고 누웠다. 나는 매신의 팔을 밴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 까-'

매신은 이제 가족들을 보지 못한다. 그의 삶이 녹아있는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매신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미안하고 슬펐다. 좋은 수가 없을까, 그렇게 눈을 감으려 할 때 갑자기 무언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급히 고개를 돌려 매신을 바라보았다.

"매신, 너는 지금 육지사람이잖아."

"그렇지."

"만약에 네가 육지교류자가 된다면? 그면 다시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냐? 잠시라도 말이야."


매신이 턱을 만지며 눈을 감았다.

"육지사람이 된 바다사람이 육지교류자가 된다라… 그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

"지교류자가 되려면 해조각을 찾으면 되는 거지?"

"맞아. 해조각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총 4조각이야. 계절마다 태양은 다르게 비치니까."

"오- 찾아야 하는 조각이 달조각보다 훨씬 적은데?"

"문제는 각 계절에 한 개씩만 해조각을 찾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1년이 걸린다는 거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매신은 나체인 내 몸에 이불을 둘러주며 말했다.

"소라, 갑자기 왜 그래?"

"가자. 해조각을 찾으러."

"뭐? 그렇지만 1년이나 걸려."

"너와 함께라면 몇 년이든 상관없어."

"소라…"

나는 몸 틀 매신을 안았다. 그러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신, 나랑 결혼해 줄래?"

"기억났구나. 네가 나에게 썼던 마지막 쪽지."

"맞아. 그때도 나는 너를 꽤 좋아했었나 봐."


매신은 양손으로 내 볼을 감 쌌다. 덕분에 이불은 아래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오직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신은 내 이마에 키스하고 무릎을 꿇었다.

"소라, 나랑 결혼해 줄래?"

"하하하"

나체 청혼하는 매신의 모습은 정말이지 우스웠지만 그만큼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당연하지!"

나는 매신을 따라 무릎을 꿇고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신, 그런데 왜 그동안 마지막 쪽지를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

"내가 먼저 청혼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과거의 감정이 아닌, 지금 너의 감정을 듣고 싶었."

이내 우리는 다시 키스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을, 바다처럼 시원하고도 심해같이 깊은, 달처럼 눈부시고도 밤같이 화려한 입맞춤이었다.




바다와 육지, 태양과 달, 매신과 나. 우리는 다르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공생관계. 너와 나, 당신과 우리. 우리는 다르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 경계는 너무나 선명하고 흑과 백으로 구분된 종이의 중앙과 같다. 그러나 그 경계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을 기준이 된다. 그렇게 접힌 종이는 흑과 백이 서로 맞닿아 회색으로 섞이는  아닌, 고유한 색을 간직 한 채 하나의 페이지가 된다.

너와 나, 당신과 우리. 너무나도 다른 존재. 그렇기에 특별하고 고고한 존재.

너와 나, 당신과 우리. 어쩌면 너무나도 같은 존재. 그렇기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존재.


나는 오늘도 육지에 누워 불어오는 바닷소리를 다.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작가 노을입니다.

마지막 글을 쓰고 업로드를 하는 오늘, 참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를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과, 연재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이야기가 독자님과 브런치 덕분에 마지막 글 마침표까지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삶의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홀로 제주도 여행을 하며 작성했던 이야기,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가 세상에 나오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처음엔 의심으로 시작했던 글이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렇게 마지막 화를 연재하는 지금은 각이 달라졌습니다.

"잘하진 못했더라도, 할 수 있구나."

"오래 걸렸더라도, 끝까지 해낼 수 있구나."

"무모했더라도, 용감한 나는 결국 도전했구나."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무언갈 시도했다는 의미 아닐까요?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의심과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두려워할 걸 알면서도, 힘들어질 걸 알면서도 언제나 용기 내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죽- 웃음이 가득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