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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20. 2024

깨달아 버린 마음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7화

[D-16]


그가 없는 공간에서, 나는 부스스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부스럭- 부스럭-'

이곳에는 오직 내 몸에서 나는 소리 날 뿐이었다.

"너무 조용해..."

정적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어느샌가 매신의 인기척을 쫒고 있었다. 지금껏 혼자 살았는데도, 매신과 함께한 지 두 달 채 되지 않았는데도 이제는 혼자가 어색해져 버렸다.

"매신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눈뜨자마자 신을 생각하다니, 그리운 건 맞지만 그렇다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안돼. 안돼."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따로 시간 보내자던 매신이 괘하기도 해서였다.

"혼자 재밌게 놀 거야. 두고 보라고."


나는 케리어를 뒤적여 옷을 꺼내 입었다. 하늘색 긴 원피스였다. 몸에 부드럽게 떨어지는 감이 좋아 바람 부는 날이면 즐겨 입는 옷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살랑이는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펄럭이는 실크재질의 옷이 바람결을 보다 자세히 느끼게 했다.

"음- 좋다."

오늘 갈 곳은 오일장, 매신에게 줄 선물을 살 작정이었다.

", 매신 때문에 가는 거였어?"

흠칫 대다 이내 고개 저으며 거렸다.

"니야, 오일장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 그랬어. 그래서 가는 것뿐이야. 뭐, 선물은 가는 김에 사는 거고."

나는 혼자 구시렁거리며 보폭을 크게 두고 걸어갔다.




숙소를 나서고 해가 지고돌아왔다. 다리가 떨릴 정도로 하루종일 걸어서 그런지 체력이 방전된 것 같았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보고 싶다..."

매신의 얼굴만 봐도 피로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의 따스한 미소만 봐도 금세 힘이 솟을 것 같았다. 

"그런 거였어...?"

매신과 떨어져 보냈던 이틀, 나는 드디어 깨달버렸다. 어쩌면 이미 알았을 깨달음은 내가 매신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뚝- 뚝-"

갑자기 하얀 침대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이불 위로 손을 포갰을 뿐인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중한 마음을 알게 됐지만 매신에게 전할 수 없다. 그와 나는 이미 끝이 정해 관계, 16일 후면 영영 보지 못하는 관계. 어쩌면 내가 제주도오게 된 것도 마지막으로 그와 작별인사 하라는 신의 선물 아니었을까. 나는 침대에 엎드려 속 눈물을 흘러내렸다.




[D-15]


"잘 지냈어?"

매신이 묻는 말에 손으로 눈을 벅벅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럼."

밤새 우느라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붇기를 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정도 이상으로 두툼해진 눈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매신이 눈치챌 까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로 인해 밤새 울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나보다 더 슬퍼할 것 같아서, 육지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웃음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서 키고 싶지 않았다.

'안되는데...'

매신과의 작별을 생각하니 다시 눈두덩이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손등으로 눈을 꾹 눌렀다.


"눈 아파?"

매신은 허리를 굽혀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뭐가 들어갔나 봐."

나는 더 아래로 고개 숙였다. 그러자 매신은 내 볼에 손을 얹고 뒷머리를 쓸었다.

"내가 봐줄게. 눈 좀 떠볼래?"

이런, 나에게 닿은 매신의 살결 심장을 간지럽혔다. 입안에 모든 침이 마르는 듯했지만 어찌 좋아하는 사람의 눈길을 피할 수 있으랴. 그저 내 얼굴은 매신의 손을 따라 들어 올려졌을 뿐이었다. 푸른 눈동자가 내 얼굴을 가득 담아 나를 익사하려 할 때도 나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쿵 쿵 쿵'

심장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먹먹해진 귓가로 들려왔다.


'스윽-'

때 매신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매신의 입김이 입술에 닿았다. 이대로면 곧 질식해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고개를 세게 흔들어 그의 영역에서 탈출했다. 

", 없어졌나 봐! 괜찮아졌어."

매신을 대하는 게 어색하다. 다시는 그의 눈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한 순간부터 매신을 향한 뜨거운 감정이 주채되지 않았다. 마주 보는 시선이 길어지면 분명 심장이 터져버릴  분명하다.

'안돼. 조금 더 그를 봐야 해. 조금 더 그를 눈에 담아야 해.'

그러나 곧 영원히 이별하게 될 매신을 기억하기 위해 신의 눈을 마주쳐야 다.

나는 금세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뭐 할까?"

"잠깐만-"

매신은 은목걸이에 손을 넣었다.

"눈 좀 감아볼래?"


나는 매신의 말을 따라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내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 걸까, 숨소리와,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쿵 쿵 쿵'

어김없이 다시 뛰어대는 심장소리.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까.

'솨아-'

그때 귓가로 잔잔 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매신 보라색 소라를 내 귀에 대고 있었다.

"이걸 선물하고 싶었어. 너를 닮은, 바다를 담은 소라."

"설마 이걸 찾으려고 따로 시간 갖자 한 거였어?"

", 맞아. 먼 곳까지 다녀왔거든. 서프라이즈로 선물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 거였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날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쏟아버리다니.

"어때, 마음에 들어?"

소라를 귀에 대고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매신의 푸른 눈동자가 떠오를 것 같았다.

"바보… 엄청 마음에 들어."

나는 그대로 매신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랑할 수밖에 는 남자였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할 법도 한데, 매신은 그저 묵묵히 등을 토닥여주었다.


"사실 나도 준비한 게 있는데…"

나는 천천히 몸을 떼내고 가방을 뒤적였다.

"거..."

"하하하, 이게 뭐야?"

파스타 링귀니 면이었다.

" 파스타 좋아하잖아. 링귀니 면라면 바다에서도  붇지 않을 것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매신 내 머리를 쓸었다. 바람에 뻣뻣 머리칼 부드게 펴지는 것 같았다. 매신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웃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D-13]


휴일이 끝나고 달조각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 달조각찾으면 됐다. 목걸이 속 꽉 찬 보름달은 은은한 노란빛을 내며 작은 우주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목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조각만 찾으면 돼."

사실 별 걱정 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모은 조각처럼 마지막 조각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혹은 반딧불이처럼, 벌처럼 스스로 찾아와 달조각을 건네 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이 지나도 마지막 달조각은 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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