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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May 29. 2024

생명이 깃든 물건

[잡담술집] 6화

그녀는 차가워진 볼을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 앉았다. 젝스는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었다.

"밖이 아직 많이 쌀쌀하네요."

젝스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아직 2월이니까요. 곧 날이 풀릴 거예요."

그녀는 구석에 앉은 무리를 고개로 가리.

"단체손님인가 보죠? 우르르 들어가는 걸 밖에서 봤어요."

"네. 아직 저에게 단체손님은 무리인가 봐요. 6명이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벌써 몸이 뻐근해요."


젝스는 마른 목을 축이려 위스키를 한 모금 가득 들이켰다. 입가에 묻은 위스키를 손등으로 닦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는 처음이신 거죠?"

"네. 간판이 이뻐서 그동안 눈여겨봤는데 오늘이 되어서야 와봤네요."

"취향이 특이하시네요. 나무판자 위로 하얀 글자만 있는 단순한 간판일 뿐인데요."

"심플해서 더 눈이 갔어요. 좀처럼 볼 수 없는 간판이잖아요."


그녀는 가게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역시 제 안목은 틀리지 않았네요."

가게는 젝스의 취향에 맞게 나무 원목의 엔틱 한 가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래된 가구들은 저마다 다른 연륜의 향을 풍기며 손님에게 아늑한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작업 테이블 옆에는 LP 플레이어가 있었다. 젝스의 뒤로 수북이 쌓인 LP판은 그의 취미가 잔 수집과 동시에 LP판 수집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좌석은 단체석 포함 총 7개로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좁은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포근함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칭찬이에요."


젝스는 씻겨진 도자기 그릇을 린넨으로 닦았다. 그녀는 왜인지 울퉁불퉁 도자기 그릇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동안 이유를 생각하다 도자기 그릇의 모양새가 아버지의 턱살과 비슷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 웃음이 새어버린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웃음을 즐겼다.


젝스는 닦은 도자기 그릇을 포개며 그녀에게 물었다.

"재미있는 일화라도 생각나셨나요?"

"도자기 그릇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의 턱살이 생각나서요. 어렸을 때 종종 두툼하게 나온 아버지의 턱살을 꼬집고 놀곤 했거든요."

"이 그릇이 손님의 추억을 꺼낸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 시절의 모습도 떠올라요. 모두 어리고 젊었었죠."


젝스는 닦던 도자기 그릇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상황과 시간을 꺼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해요."

그녀는 건네받은 도자기 그릇을 만져 보았다. 촉감은 분명히 달랐지만 아버지의 턱살을 만지며 놀던 9살 그때의 모습이 도자기 그릇 위로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러게요. 물건은 그날의 시간과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젝스는 작업테이블 왼쪽에 놓여있던 작은 거치대형 액자를 들며 말했다. 검은색 고양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저는 도자기 그릇을 보면 요 녀석이 생각나요. 비슷하게 생긴 도자기 그릇에 종종 밥을 주곤 했었죠."

액자 속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얼굴에 박혀있는 두 개의 흰색 점박이가 인상적이었다.

"귀엽네요. 요즘에도 낮잠을 많이 자나요?"

젝스는 작업테이블에 액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은 하늘에서 쉬고 있어요."

"이런, 죄송해요."

"아니에요. 꽤 오래 살다 갔으니까요."


젝스의 시선은 여전히 액자 속 고양이를 향하고 있었다.

"단지 보고 싶어질 때면 그 녀석이 늘 안고 자던 토끼 인형을 침대 맡에 두고 자요. 녀석이 낮잠 자면서 꿨던 꿈을 저도 꿀 것만 같거든요."

그녀는 도자기 그릇을 돌려주며 말했다.

"토끼 인형은 브라운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군요."

"제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담아줘서 고마울 뿐이. 물건에 생명이 깃든다는 은 정말인 것 같아요."

"토끼 인형에겐 브라운과 고양이가 생명을 부여했네요."


젝스는 도자기 그릇을 흔들며 말했다.

“이 도자기 그릇도 마찬가지예요. 하늘에서 밥은 잘 먹고 있을는지..."

그들은 각자 다른 시선으로 도자기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각자 다른 시간대로, 각자 다른 순간으로 돌아가, 각자 다른 감정을 느끼며, 각자 다른 여운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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