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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들

당신의 공간, 책장, 유튜브 알고리즘이 말해주는 것

by 세이지SEIJI

프로파일러 놀이

어느 날 나는 프로파일러가 되어 내 집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고양이 가구와 용품이 가득한 것 보니 이 사람의 생활에 고양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군. 집안에 TV가 없고, 냉장고도 작은 것 하나네. 유명브랜드 가전제품이나 명품가방 같은 것이 없는 것 보니 이 사람은 명품이나 유행하는 브랜드에 대한 욕망은 없나보군. 오, 책이 많네. 책장에 나열된 책들만 봐도 이 사람이 평소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대략 보이는 듯하군. 영어나 외국어 관련 책이 많고, 인문학 책도 많아. 요리책들이 몇 권 있는데 대부분이 채식이나 자연식에 관한 것들인 것 보니 이 사람은 채식주의자거나 채식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 같군."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도 내 공간을 둘러보며 이렇게 나를 유추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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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 사람이 늘 머무는 공간은 그 사람 내면의 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데 공간만이 아니다. 그 사람의 유튜브 홈 화면에 알고리즘이 띄워놓은 영상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 자주 가는 장소,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 내면의 거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투명하다.

하지만 이 투명함에는 양면이 있다.

집안을 물건들로 빽빽하게 채워넣는 사람, 늘 꽉 차 있는 냉장고 안, 심지어 요즘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의 쓰레기 집 같은 현상. 우리는 거기서 단순히 공간 관리의 실패를 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물건 하나 버리지 못하는 집착, 택배 상자를 뜯을 기운도 없는 무기력, 어떤 트라우마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 그 사람의 내면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공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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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종종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대부분 그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들 자체로.

중년 이상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저 주름이나 흰머리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생애에서 가장 많이 지은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려, 그 표정이 그 사람의 보통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보자마자 세상이 온통 못마땅하고 다른 사람을 깔보는 표정이 그대로 박혀버렸다. 그동안 보아온 중년 이후의 사람들 모습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그런 인상과 눈빛을 지니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중년을 넘어 나이 든 모습의 사람이라도 드물게 온화한 인상과 여전히 빛나는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런 얼굴을 자주 본다면 나이듦에 대해서도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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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는 것 VS 내가 만들어가는 것

결국 중년을 넘기면 외모는 어찌어찌 평준화되어 가는 듯하다. 청년 시절 매우 잘생기거나 예뻤던 사람도 중년을 넘기면서 외모의 돋보임이 젊은 시절에 비하면 많이 줄고, 다 비슷해져 가는 것 같다. 그 대신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온화함이나 선함, 눈빛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생동감, 삶에 대한 열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그것은 정말 성형수술이나 회춘 시술로 절대 가질 수 없는, 그간 살아온 그 사람 생애의 데이터와 영혼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인증 같은 것이다.

타고난 이목구비와 체격은 우리 의지나 노력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말 그대로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중년 이후 굳어진 인상과 눈빛은 오롯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

나도 마흔을 지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여성은 갱년기를 지나며 건강과 외모적 상실이 크다고 하는데, 20, 30대처럼 그저 남들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에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결국 중년을 지나 늙어간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기에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내가 풍기는 인상과 살아있는 눈빛, 그리고 누가 봐도 편안하고 깨끗한 공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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