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공식에 대한 고찰 후 깨달은 것
나는 캠핑을 직접 가지는 않는다. 대신 캠핑 유튜브 영상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특히 추운 겨울에 화목난로 피우는 캠핑 영상을 제일 즐겨본다.
눈 내리는 숲속에서 장작 패는 소리,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 이런 영상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캠핑이란 게 새로운 여가활동은 아닌데, 최근 10여 년간 유독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왜 현대인들은 캠핑에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모호하긴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은 '지속적인 만족감'이라고 정의해보겠다.
내가 세운 행복 공식은 이렇다.
행복 = 결핍 + 희망
좀 이상하게 들릴까? 결핍이 어떻게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싶을 것이다.
물론 결핍만 있는 상태에서 인간은 괴로워하고 절망한다. 그래서 결핍 단독으로는 부정적인 게 맞다.
하지만...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인간은 최고로 행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보자. 결핍과 희망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목표 설정'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현재 상태 A와 이상적인 상태 B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결핍 설정이다.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생겨나고, 이상적인 상태 B는 목표가 된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동력이 되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우리는 성취감을 느낀다. 이 삶의 동력과 성취감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이건 우리 뇌의 도파민 시스템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뇌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에도 도파민을 분비한다.
즉, 인간은 '완벽한 상태'에서 행복한 게 아니라... '더 나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쾌락의 챗바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에 금방 적응해버린다. 그래서 행복이나 불행의 감정이 결국에는 원래의 기준점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자. 인류 역사상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음식이 배달되고, 언제든 원하는 온도의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쾌락의 챗바퀴 위에서 더 빨리 달려야만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6.25 전쟁을 겪고, 찢어지는 가난과 군부독재를 살아낸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배가 불렀다"고.
그들이 젊어서 감당해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세대는 훨씬 많은 걸 누리면서도 우울해하고 힘들어한다고 혀를 찬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세상과 지금의 내 상태를 비교하지 못한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란 걸 알지만, 우리의 감정은 내가 가진 기본값 안에서만 움직인다.
즉, 우리는 결핍이 결핍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캠핑은 기가 막힌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위적인 결핍의 설계'
캠핑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쾌락의 챗바퀴에서 잠시 내려오게 해준다. 집의 완벽한 편안함을 스스로 박탈하고, 불편함과 결핍이 가득한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캠핑의 모든 과정은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텐트를 치고 타프를 설치하는 행위... 이건 비바람으로부터 '나의 공간'을 확보하는 원시적인 집짓기다.
직접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행위는 어둠을 물리치고, 온기를 얻고, 음식을 조리할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직접 재료를 다듬고, 내가 피운 불 위에서 조리한 음식은...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만족감을 준다.
이 모든 과정이 문제 발생, 즉 결핍을 인식하고 나의 노력 투입이라는 문제 해결을 통한 '행복감 획득'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행복 공식을 따르는 것이다.
현대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속 복잡하고 추상적인 문제 해결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쾌감이다.
현대 사회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쉽게 느낀다.
경제 상황, 회사 정치, 인간관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캠핑은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는 작은 왕국'이다.
텐트를 어디에 칠지, 불을 어떻게 피울지, 무엇을 먹을지... 모두 내가 결정하고 실행한다.
예측 불가능한 비나 바람 같은 변수는 있지만, 그에 맞춰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나 자신의 '주체성'과 '능력'을 확인시켜준다.
이건 무력감에 지친 현대인에게 강력한 심리적 보상이 되어준다.
결론적으로 캠핑의 인기는... 단순히 자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현상인 것 같다.
풍요 속에서 역설적으로 결핍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행복의 원초적 공식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불편함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고, '의미 있는 고생'을 통해 성취감을 획득하려는... 어찌 보면 고도의 지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결핍이... 결핍되어 있는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편안함이 아니라, 적당한 불편함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도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