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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Apr 10. 2021

오늘 코로나 백신을 맞고 왔다.

2021년 4월 9일

설렘과 묘한 긴장감으로 시작하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오늘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러 가는 날이다. 예방 접종이 이렇게 기대되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2020년 3월 14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던 미국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월 27일 존슨 앤 존슨 은 백신을 개발하였고 미국 식약청으로부터 긴급 사용 허가 승인이 허락되었다. 결국 백신이 개발 되는구나, 감사하고 감동하고, 애사심 이런 게 이런 걸까?  


백신을 맞으러 나가려는데, 키친 테이블 위에 뜬금없이 장미꽃 한 다발이 놓여 있다. 오늘 무슨 날도 아니고, 딱히 꽃 선물을 받을 이유도 없었지만,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준 남편이 고맙다. 흘러 지나가는 말도 잡아 놓쳐주지 않는 것이 남편이 하는 사랑이다. 한결같은 사람이다.


차로 30분을 달려서 도착한 미국 체인 슈퍼 마켓 안에 있는 약국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길 꽃을 파는 곳을 지나가는데 여러 가지 종류들의 부케들이 가득했다. 예쁘다. 


약국에서 백신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서 맞을 준비를 하며 약사님과 인사를 하던 중,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미국 아줌마, "나 예약하고 왔는데, 15분 일찍 왔어요. 지금 백신 맞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약사님은 지금 예방 접종 중이니, 끝나면 바로 체크해 줄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잔뜩 찡그린 미간에 짜증이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듯했다. "확신 없이 가디리기 싫으니, 지금 확인해 주세요. 나 여기 예약되어 있죠?"

약사님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확인을 해봤다. 약사 테크니션과 알아본 후, "그 이름으로 예약이 안되어 있는데요."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는데, 결국 예약한 시간은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었다. 짜증을 내며 욕을 하며 지금 여기 있으니 끼워 달라고 한다. 부탁도 아니고, 하라면 하라는 식이다. 예방접종이 끝나고, 앉아 기다리는 동안, 그 시간에 예약을 제대로 한 사람이 시간에 맞춰서 왔고, 그 사람은 기다려야 했다. 무례한 한 사람이 그 공간에 있던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었다. 앞뒤 없이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겠다고, 나까지 밑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 Michelle Obama

상대방이 저급하고 비열하게 행동을 해도, 끝까지 품위를 지켜야 한다. 우아함을 고수해야 한다.

약사님도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사람들을 돌봤다. 그 무례한 사람 까지도...


차로 걸어 나오는 길, 아까 들어가는 길에 봤던 꽃들이 보인다. 그중에 제일 예쁜 꽃화분을 샀다. 그리고, 약사님 한테 돌아가 오늘 예방 접종해주셔서 고맙다고, 내 마음을 전하고 나왔다. 오늘 낯선 무례한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날이 아닌, 낯선 사람한테 뜬금없이 꽃을 선물 받은 날로 기억되길 바라며...


생각지도 못하게 낯선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서, 나의 하루를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날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낯선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기로 한다. 아침에 남편 한테 뜬금없이 받았던 꽃다발 때문 이었을까? 같은 약사로서 약사님에게 무례하게 굴던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던 암묵의 복수였을까?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프로페셔널답게 자기 일을 하시던 약사님의 감사함이라고 해두자...


오늘 코로나 백신을 맞고 왔다.

잊지 못할 2021년 4월 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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