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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11. 2020

누가 알아주기나 해?

첫 인생 마라톤 : 2020 뉴욕 시티 버츄어 마라톤 - 일곱 번째 페이

첫 인생 마라톤 : 뉴욕 시티 Virtual 마라톤 - 일곱 번째 페이지

"나 가기 싫다.

집에서 넷플릭스 보고 싶다.

손하나 까딱 하기 싫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알아주기나 할까?"


Overworked and Exhasusted.

무거운 몸보다, 무거운 머리를 흔들어 본다. 무거운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 본다. 어깨도 잔뜩 뭉쳐 있고,

종아리도 뭉쳐 있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 가있다. 주중에 긴장하고 일하며 뭉쳐있던 근육들이 주말이라고 해서 스스로 그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다. 뭉쳐있는 것 몸의 근육보다 마음의 근육이 더 단단하게 뭉쳐있다.

나 피곤하게 일했으니,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야.라는 인성에 문제 있는 생각을 내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쉬어 보려고 주섬 주섬 뛰러 나가는 준비를 한다. 커피를 마시고, 에너지 드링크를 챙기고 느리게 움직이며 아침이 시작된다. 부산스럽지 않다. 마음이 따라올 때를 기다려주면 몸은 기억하는 데로 토요일 아침을 그렇게 시작한다. 커다란 물통, 에너지 드링크, 에너지 젤, 선글라스, 에어 파드, 전화기,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함께할 고마운 물건들과 집을 나선다.


날씨가 좋다. 다행이다. 달리러 가던 길, 공사를 하던 곳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몇 주간 보수 공사를 하던 다리 보수 공사가 다 끝나서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지나가는 다리 고쳐서 잘 쓰면 되는구나...

저번 주, 어젯밤 힘들었다고 꾹꾹 눌러서 뭉쳐져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Pine Valley Covered Bridge, PA  ©SEINA


그리고 나를 반겨주는 하늘. 차에서 내려서 올려다본 하늘. 울컥, 이쁘다. 오늘 아침에 나오길 잘했네, 이렇게 찰나에 이쁜 가을 아침 하늘을 놓칠뻔했어. 내 마음을 칭찬해준다. 잘했어, 고마워.

아침 가을 하늘 ©SEINA


이번 주 달리면서 신 스프린트 (Shin Splints)가 온 것 같아서, 신경을 쓰고 달렸었다. 이제부터는 몸 관리와

멘탈 관리가 더 중요할 것 같아서 오늘은 저번 주 보다 많이 달리지는 않기로 했다.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다치면 안 된다. 자기 관리도 능력이라는 말은 지금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말은 너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았으니, 너 할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만큼 긴장이 풀리고 쉴 수 있는 만큼만 달리자 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최선인 아침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여주듯 너무 아름 다운 가을 나무와 하늘을 보여 주는 아침이다. 고마워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고 천천히 달려본다.

단풍 ©SEINA


나의 신에게 기도를 하며 달리는 아침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건강하게 달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니, 건강을 허락하시라는 기도를 하며 

달렸다. 그리고 마음에 무거웠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흘려보냈다. 짧은 호흡들은 어느새 긴 호흡들로 바뀌어 가고, 한두 발 내딛는 걸음이 가벼워진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고 감사하다.

10.10.2020 ©SEINA

2마일 뛰고 나면 도착하는 다리 위, 이제 몸이 풀려 간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풀려간다. 이제는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는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오늘 아침이 아니면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풍경들이 눈에 보여 사진에 담아 본다.


날갯짓을 하는 새의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 날고 싶으면 물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날갯짓을 해야 한다. 그 날갯짓을 하려면 물안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날고 싶다면 해야 하는 선택이다. 그 짧은 찰나에 내 마음이 알아채려 준다.

너도 날갯짓을 하려고 힘이 든 거구나. 물에만 있지 않고 날아 보려고. 그 마음이 내가 왜 힘이 든 지 알아주고 토닥토닥해준다. 잘했어, 괜찮아, 힘이 들 때도 있는 거지.

©SEINA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바퀴,  바퀴 그리고 토요일 아침이면 만나는 달리기 친구들을 지나가며, 어느새 얼굴을 웃고 있다.

 번째 바퀴를  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풍경이, 보인다. 꽃이 보인다. 이쁘다.


그렇다, 비워야 다시 채울  있다. 머릿속   있던 

마음들을 알아주고, 보내주었더니, 다른 마음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그랬더니, 이렇게 예쁜 꽃들도 담아   있었다. 신기한 나의 마음.

©SEINA


하프 마라톤 거리 21.10킬로 13.11 마일이다. 두 시간 8분, 이 정도라면 마라톤 4시간 20분 안에 뛸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아침 6시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결과. 잠옷 입고 뒹굴 거리는 모습이 더 상상되었던  아침이었다.


"나 가기 싫다.

집에서 넷플릭스 보고 싶다.

손하나 까딱 하기 싫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알아주기나 할까?"


잠시 잊고 있었다. 누가 보고, 누가 알아주는 게 중요해서 달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알고 내 몸이 알기 때문에 시작했던 달리기였다. 오늘 아침도 달리고 시작했다.

몸이 기억하는 데로 준비해서 나갈 수 있었던 아침, 마음이 풀려줘서 몸과 함께 리듬에 맞추어서 건강히 잘 달리고 온 아침. 아침에 인성에 문제 있던 마음들은 온 데 간데없어져 버렸다. 다행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 쉬는 게 아니다.

나를 회복시켜주고, 충전시켜주는 것을 하면서 나는 잘 쉴 수 있다. 하프 마라톤의 거리를 달리면 회복을 했고, 충전이 되었다. 감사하고, 다행이다. 이제 긴장이 풀려서, 주말 제대로 푹 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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