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못 하겠다 손 들고 싶은 마음

용기

by 세상 사람


언젠가부터 나는 지고 싶지도 이기고 싶지도 않다. 경쟁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게 나를 망칠 것 같아서 경쟁하기를 관뒀다. 어디서부터 사회가 부추긴 경쟁이고 어디서부터 순수한 내 욕망인지도 분간하기가 어렵고 말이다. 겨루는 상황이 올 때, 나도 모르게 열등감과 승부욕으로 차오르는 속내를 드러내는 게 불편했다. 어쩌면 경쟁에서 지는 것보다 그쪽이 더 싫었다.


경쟁을 ‘관뒀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도망쳤다고 해야겠다. 아직도 내 로망 속의 멋진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부럽다. 부러운 이유는 대개 그런 일은 용기와 지구력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일 때가 많아서인데, 아마 어릴 때부터 스스로 그 두 가지가 부족하다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지구력 부족의 좋은 예시가 하나 있다. 학창 시절 극기훈련을 갔을 때 일이다. 학생들을 우르르 낯선 곳으로 데려가 모두에게 같은 방법으로 체력단련을 시키는 게 지금도 이해는 안 가지만. 어쨌든 우리는 단체로 정해진 코스를 완주해야 했고, 체력이 약한 편이던 나는 골 지점에 다다르기 전 이미 녹초가 돼 있었다. 당시 빈혈이 심해 하굣길에 집에 가다가도 현기증으로 주저앉던 나였으므로, 갑작스러운 운동이 힘에 부친 건 당연했다.


거의 다 와가는데 교관이 아이들을 멈추게 하고 이렇게 물었다.

“너무 힘들어서 더 못 가겠다 하는 사람은 지금 손을 들어.”

손 드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겼고, 나도 거기 동참했다. 나는 그게 지극히 보건적인 질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후 떨어진 날벼락.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은 이제부터 자유시간을 가지고, 손을 든 학생들은 약해 빠졌으니 오리걸음으로 몇 미터 더 가라는 것이다. 아, 이거 극기훈련이었지, 체험학습이 아니라.


그때부터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 힘들었다. 그런 질문으로 사람을 테스트한 게 분한 동시에 거기 넘어간 내가 부끄러웠다. 그 분노와 수치를 긍정적으로 프로세스 하면 ‘이제부터는 쉽게 포기하지 말고 나를 이겨내자’로 갔을 텐데, 잿빛 사춘기를 보내던 나는 어른을 향한 불신을 키우는 방향으로 그 일을 간직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한편으로는 알았다. 도저히 더 못 갈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는 걸.


덧붙여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낀 경우는 예를 하나 고르는 게 의미가 없다. 현재까지도 매 순간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지긋지긋할 정도니까. 지금까지 생존한 걸 보면 뭔가는 해낸 적이 있겠지만, 여전히 내 이상 속 ‘용감한’ 사람의 기준에 비해 나는 ‘도망치자’에 대한 역치가 너무 낮다. 게다가 도망칠 거면 후회 없이 뒤도 안 돌아보면 좋을 텐데, 보통은 그러지도 못해서 더 괴로운 쪽이다.


용기와 지구력을 각각 별개의 인성적 자질로 분리해 인식하다 보니 ‘내게 가장 부족한 점은 그 두 가지’라고만 생각해 왔다. 앞에 썼듯, ‘용기와 지구력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멋진 일’을, 나는 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로서 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용기’는, 결과적인 현상일 수 있지 않을까. 도망치고픈 상황을 버티고 견디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기운이 누적되다 보면 그게 용기가 되어 있는 것 아닐까.


대학교 때 그래픽디자인 전공수업 중 반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상업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도 ‘예술’일 수 있냐고.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예술대와 디자인대가 따로 있었고, 작가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어딘가의 디자이너로 고용될 것이기에 궁금할 법한 문제였다. 그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원체 말이 길지 않은 분이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압축했다.

“You just do your bit, and the art will take care of itself.”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문장이었다. 뉘앙스를 살려 의역해 본다. “나는 내 몫을 다할 뿐, (결과가 예술이 될지 말지는) 예술이 알아서 할 거예요.” 나는 당시 내 디자인 작업의 예술성을 고민한 적은 없으나, 교수님의 저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오래도록 기억했다. 어떤 영역은 우리의 컨트롤 밖에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동시에 결과를 기대하기 앞서 내 몫의 최선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렇지, 어떻게 저런 멋진 일을 꾸준히 해낼 수 있지, 하고 감탄한다.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결과만 보고 그게 타고난 용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단정지은 것 같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은 그저, 자기 몫의 최선을 하루하루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못 하겠다 손들고 싶은 마음과 겨뤄 매일매일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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