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대학 때 ‘Influence / Inspiration / Intent’를 주제로 아트북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학교 정규과목은 아니고 예일대학교의 교수님이 방문해 연 워크숍이었다. 번역하면 ‘영향 / 영감 / 의도’가 되겠다. (영어 알파벳 ‘i’로 시작하는 세 단어를 우리말 ‘ㅇ’으로 시작하는 세 단어로 바꿀 수 있다니 왠지 신난다.) 워크숍 참여자 본인의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 것들이 있는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의도 혹은 목적은 무엇인지를 리서치해서 북아트로 표현해 보는 프로젝트였다.
그때는 그게 창의적인 작업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의 나열쯤이라고 인식한 것 같다. 물론 그 세 가지를 하나의 book에 담아내는 과제였기 때문에 그 모두를 나름 연결하고 조합하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 과정이 가지는 의미를 깊게 탐구하지는 못했다.
음악을 시작하고는 influence와 inspiration에 기대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특히 inspiration에 언제나 특별대우를 했다. 뭔가로부터 받은 영감이 곧 창작으로 연결된다고 여겼다. 최근 몇 년 음악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간 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꽉 막혀 있는 기분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이유야 어찌 됐든 더 이상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연습을 다시 하려 해 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올봄 헤드폰을 새로 산 김에 키보드에 연결해서 혼자 몇 시간을 흥에 겨워 피아노를 치다가 깨달았다.
‘아, 재미있다. 뭔가 만들어지는 느낌. 이거였지, 참.’
잘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과도 다르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단지 손가락 끝으로 건반을 눌러 가면서 소리를 찾아가는 자체가 즐거운 상태. 시간 가는 걸 잊고 빠져 있는 상태. 다른 사람들을 향한 신경이 완전히 꺼진 상태. 몹시 충만한 몰입의 상태.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 그걸 아주 오랜만에 느낀 것이다.
그때 마지막 요소인 intent가 들어왔다. 생겼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다. 방향이 생기는 것이다. 지향점이 생기는 것이다. 어디로 향하고 싶다는 그 ‘의도’. 그리고 이 경험에 대해 동거인이자 음악 동료인 N과 얘기하다가 influence / inspiration / intent는 따로따로 존재하는 세 가지의 나열이 아닌,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함께 돌아가야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Intent는 의도 혹은 지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종종 듣던 팟캐스트 “여둘톡”에서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의 남다른 괴테 연구를 언급한 적이 있다. 거기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로 알려진 “파우스트”의 문장을 전 교수가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로 수정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문장을 듣고는 갑자기 마음속에 모호하게 퍼져 있던 혼돈이 스윽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노력이 아닌 ‘지향’이라고 하니, 방황의 까닭이 한층 뚜렷해지는 듯해서였다.
오래전부터 나의 꿈은 ‘창작하는 삶’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전공하기 전부터 막연하지만 뭔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삶’을 선망했고, 그래픽디자인을 하면서는 특정한 목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즐겼다. 노래를 쓰고부터는 나의 창작물이 하나의 작은 세계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 심취했다. 그 세계가 보잘것없고 누추해도 말이다.
꿈은 그렇게 분명했으나 방황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일기를 쓰다 이런 상황을 동화 속에 나오는 가시덤불에 빗댄 적이 있다. 넓게 펼쳐진 가시덤불숲 속 현재의 내가 있고,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성에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가 갇혀 있다. 미리 난 길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든 덤불을 헤치고 성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된다. 이 여정은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지름길의 유혹에 빠졌다가 도루묵이 되거나, 가시에 찔려 몸을 사리게 되거나, 자원이 바닥나 굴이라도 파고 잠시 웅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고생스럽다. 그러니 어느 쯤에서 성이라는 지향점을 잊고 멈춘 곳에 적응해 살아간다면, 방황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가시를 잘라내고 거처를 마련한다면, 머물러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에서 내가 더 두려운 쪽은 언제나 방황이 아니라, 가야 할 지향을 영영 잃어버리는 쪽이었다. 성에 갇힌 나를 영원히 구할 수 없거니와,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잊고 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창작활동을 못 하는 동안 느낀 막막한 기분. 그건 아마도 내가 방황 자체를 멈추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받은 영향과 찾아오는 영감이 전부 그대로라 할지라도 내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그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기억할 점은 의도가 앞을 향한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앉아 기다릴 게 아니라 애초에 손이든 몸이든 움직여 앞으로 가 봐야 생기는,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에게만 허락된 종류인 것이다.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