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곡을 쓰는 데에 취미를 붙인 건 2010년부터였다. 9년 반 동안 미국에 살다가 귀국한 첫해 가을 나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이후 이직을 계기로 사는 곳을 옮긴 특이할 것 없는 상태였다. 학비가 없어 가려던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고 연이은 취업상의 불운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긴 하였으나, ‘어지간한 직장에 취직해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길’ 외 다른 진로는 상정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예사로운 상태 말이다. 뭔가 끄적이기, 노래 부르기, 공상하기는 늘 즐겨했지만, 그 방면으로 어떤 나만의 길을 구체화해 본 적이 그때까지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갖고 있던 기타가 집에 하나 있었다. 종로 낙원상가에 가서 색깔만 보고 산 푸른 어쿠스틱 기타. 그 기타는 어쩌다 나를 따라 미국까지 갔다가 나와 같이 고국에 돌아왔지만 막상 미국에서 기타를 친 일은 거의 없다. 학교 때 했던 취미 밴드에서도 나는 노래만 했고 말이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즈음 한창 빠져들었던 일이 SNS에 시시콜콜 글을 올리고 사이버 친구들과 댓글 주고받으며 놀기였는데, 그때 SNS에 올리려고 기타를 몇 번 뚱땅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본 기억이 있는 정도다.
그 길로 다시 기타에 손이 가기 시작한 건 맞다. 아주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울 때나 고등학교 때 기타를 조금 배우다 말 때도 악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깊어지지 않았는데, 어차피 기타가 있으니 취미로 쳐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온라인에 올렸을 때 받는 관심이 기분 좋기도 했다. 그렇게 짬이 나면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을 연습해 불러 보곤 하던 어느 날, 안 좋은 일이 있어 집에 울다시피 하며 들어왔는데 때마침 혼자였고 방에는 기타가 있었다.
그날 일기장에 되는대로 뭔가 끄적이고, 기타를 잡고 앉아 그걸 가사 삼아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서 울었다. 왜 그랬는지 참 낯부끄럽고 어디 가서 말도 잘 하지 않는 에피소드다. 게다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름대로 구성을 적은 다음 노트북으로 녹음까지 했다. 이 글을 쓰며 쪽팔림을 무릅쓰고 당시의 일기장을 찾아봤으나 집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게 나의 비공식적인 첫—가사와 곡을 다 완성한—자작곡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계속 노래를 썼다. 첫곡을 만든 게 10월 중순이었는데 그 후 기록을 보니 10월 24일, 10월 31일, 11월 8일, 11월 17일…. 거의 한 주에 한 곡씩 썼다. 창작도 창작이지만 수집하기를 워낙 좋아하는 습성이라, 한번 탄력 받으면 따라붙는 ‘어서 다음 걸 써서 모으고 싶다’는 욕구도 한몫했다 (왜 모으고 싶은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아는 코드 서너 가지로 만들다가 단조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코드 공부를 하고, 노래와 연주를 같이 할 수는 없는 수준이라 반주 먼저 녹음해야 멜로디를 얹어 볼 수 있으니 녹음 연습도 하고. 그야말로 자동 학습 시스템이었다. 얼마간 그 사이클을 지속했고 그다음 해인 2011년부터는 점차 빈도는 줄었지만 조금씩 더 형태를 갖춘 노래를 만들고자 했다. 나중에 발표한 첫 앨범에 수록한 노래 중 내가 곡을 쓴 다섯 트랙도 모두 2011년에 쓴 곡이다.
아마도 나의 곡 쓰기는 일종의 ‘기록 욕구’에서 시작되었나 보다. 가끔 길을 걷다가 해 질 녘 하늘이 너무 예쁠 때, 노을과 구름이 만들어 낸 저 모습을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 그리고 해가 지는 반대편의 색은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아름다울 때, 분명 옛날 옛적 사진을 찍을 수 없던 시절 어떤 이는 저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기록은 미술과 음악을 비롯해 무수히 다양한 창작의 형태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얼마나 많은 광경이, 사람 안의 얼마나 많은 마음이 그렇게 아름답고 슬플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고 많은 감정 중 하필이면 왜 슬픔을 남기려고 노래를 썼을까’ 싶지만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속얘기’라는 말이 있다. 속에 있는 얘기라고는 해도 사실 속에 남아 있는 건 엄밀히 말하면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야기는 어떻게든 밖으로 잘 나오는데 어찌해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는 띄엄띄엄한 소재들이 속에 남게 된다. 나 자신도 ‘이야기화’해 본 적이 없으니 꺼내기가 조심스럽고, 또 어렵사리 꺼내도 줄거리를 풀어내기 어렵고, 또한 보통의 대화 상대에게 그 과정을 기다려 줄 만큼의 참을성을 요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 혼자 쓰는 글이나 노래로 속얘기의 출구를 삼은 셈인데, 그것들이 주로 슬픔의 색을 띠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창작에 있어 기쁨보다는 슬픔이 나를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매사에 인생을 슬프게만 본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단지 내게는 어떤 형태의 작품이든 그 안에 표현된 슬픔이 기쁨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이다.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길어서일지도, 기쁨은 다른 해석이 굳이 필요 없지만 슬픔은 변환하지 않으면 계속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관객으로서도, 슬픔을 다루기로 한 창작자의 마음이 잠잠히 드러나는 작품이나 장면을 장르와 상관없이 좋아한다.
앞에서 언급한 첫 앨범을 만들 때 앨범재킷과 가사집 디자인은 물론 크라우드 펀딩까지 직접 진행하느라 일이 많았다. 혼자 새벽까지 할 일을 붙잡고 있는 날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듣던 팟캐스트가 있다. 당시 문학동네에서 만든 신형철 평론가의 “문학이야기”가 그것이다. 한 친구는 너무 졸리다고 했지만, 나는 내내 정성스러운 슬픔을 듣는 것 같아서 좋았다. 국가적 비극이 일어난 2014년이기도 했다.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