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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구 Jun 13. 2019

발목이 부어서

하루 종일 너를 들었다 놨다 하고 나면

다음날 아침에 발목이 부어 모래주머니를 단 듯

뒤뚱뒤뚱 걷는다


모든 일에 감정이 앞서 성큼성큼 헐렁헐렁 해대는 나를

진득하고 차분히 만들어주는 걸음이구나


순간을 천천히 걸어도 큰일 안 나요 하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너의 무게를 들고 있자면


내일은 더 훌쩍 커버리고

몇 년 지나면 훌쩍 철이 들어버릴 거 같아서 무섭다


그때가 되면

네 보폭에 맞춰 순간을 천천히 성실히 살아왔는데 그럴수록 생은 더 빨리 지나갔구나 하고,


이제야 지혜가 생겼는데 벌써 삶의 끝에 다다랐구나 하고,

여지껏은 연습이었고 이제 실전이구나 할 때 즈음

다리에는 걸을 힘이 없구나 하고 먹먹하려나


무지한 젊음은 모든 것에 빠르지만

지혜가 충만한 노인은  몇 발 내딛는데도 반나절이 걸린다


나도 운이 좋아 지혜란 게 생기고

걷기에는 너무 늙었을 때 즈음


내 인생에는 정말

기다림만 남을까?


발목이 부었다고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는구나

잘 자라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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