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쓴맛을 본날

-제 1장 : 입학식 -

논에는 모내기를 마친 어린 묘들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보일락 말락 개구리들이 얼굴을 빼꼼히 내놓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올챙이들도 어디로 달려가는지 모르게 달리고 있다. 봉희는 모내기를 마친 논들 사이의 논두렁 길을 걸으며 한숨을 쉬고 있다.

봉희 담임선생님께서 청소 시간이 끝난 후, 조용히 봉희를 불렀다.

“ 봉희야, 내일 어머니 학교로 오시라고 해라. 선생님이 봉희 어머니와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

“ 선생님. 엄마 바쁘신데요. 모내기 하셔야하는데요. ”

“ 그래도 너의 받아쓰기 점수를 아시면 학교로 오셔야 할 거야. 그리고 내일 어머니

오실 때 커피를 타가지고 오시라고 해라. ”

“네? 커피가 뭐예요. 선생님”

분명히 선생님은 봉희 어머니가 학교로 올 때 커피를 타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커피가 뭔지를 모르겠지만 분명히 선생님은 봉희에게‘커피’를 큰 목소리를 말씀하시고 “선생님은 커피 좋아한다.”라는 말로 매듭지으셨다.

집으로 가는 논두렁을 걷는 봉희의 머리는 복잡하다.

‘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까? ’

‘ 어떤 엄마한테 말해야 하나?’

‘ 도대체 커피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타가지고 가야 하나?’

‘ 가족들한테 혼날 것 같아 ’

봉희의 머릿 속에는 가족들의 화나고 황당해하는 얼굴을 한 언니, 오빠들의 모습이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도대체‘커피’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봉희를 몹시도 힘들게 하는 것이며, 담임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초등학교 1학년 봉희의 머리에는 90%는 커피, 5%는 어떤 엄마에게 말해야 하나,

5%는 언니, 오빠의 화난 얼굴로 채워지면서 집으로 가는 좁은 논두렁이 벌써 초등학교 1학년 봉희에게는 고행길 같다.

봉희는 1987년 3월에 다른 또래들보다 1살 어린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한 살 이른 나이의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봉희 집에서 봉희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큰엄마가 계시기는 했지만 큰엄마는 봉희를 돌볼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봉희의 친엄마는 종일 논과 밭에서 일하고, 봉희 아버지가 운영하는 벽돌공장에서 인부들 점심과 새참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신다. 벽돌공장 인부가 부족하면 벽돌을 만드는 일까지 하는 강철 여인이 봉희의 친엄마이다. 봉희에게는 오빠가 두 명, 언니가 두 명이 있다. 큰오빠는 대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인 큰 언니,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오빠와 초등학교 6학년인 언니가 있다. 봉희 아버지는 봉희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불안했는지 아니면 막내딸이 여자인 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동사무소라는 곳에 가서 봉희가 7살 되었을 때 출생월일이 1월생이니 학교 들어갈 나이인 8살에 가깝다고 우기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봉희를 초등학교 입학시켜달라고 동사무소 직원에게 독하게 욕까지 해대며 자신의 막내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달라고 악성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아버지의 꼬장에 어쩔수 없이 봉희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주었고, 이런 이유로 봉희는 또래들보다 한 살 어린 일곱 살에 입학했다.

봉희 입학식 날이다. 봉희 큰 엄마가 이쁜 한복을 입고 봉희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봉희 왼쪽 가슴에는 옷핀으로 손수건이 달렸다. 봉희 코에 콧물이 흐르면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으라고 봉희 엄마가 입학식 날에 달아주었다. 입학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얀 손수건은 벌써 노란색 콧물이 묻어있다.

입학식 첫날, 봉희는 서신초등학교 1학년 2반에 배정되었다. 1학년 2반 담임선생님은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다. 얼굴 왼쪽 뺨에 검은 점이 있다. 그리고 자세히보면 검은 점 위에 털이 나있다. 교실에는 오래되어 바랜 녹색 칠판, 선생님 책상, 교탁, 교탁 옆에 작은 풍금이 있다. 교실 바닥은 마루로 되어있고 교실의 오른쪽에는 큰 여닫이 창문 2개가 있다. 왼쪽에는 작은 나무 창살로 이루어진 다섯 개 정도의 창문이 있다. 입학식을 마친 호기심 어린 눈을 가진 약 30명 가량의 학생들은 작은 상자같은 교실에 올망졸망 앉아있다.

“ 어머님들, 저는 1학년 2반 담임선생님입니다.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학생들 편으로 공부해야 할 교과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3교시 수업 마친 후에 함께 집에 자녀를 데려갈 부모님께서는 교실 밖에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입학식을 마친 후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을 복도에 한 줄로 세우셨다. 선생님은 약 30명 가량의 학생들을 세운 후, 모내기 풀을 뽑듯이 키가 작은 학생들을 앞으로 세우셨다. 봉희는 키가 작아서 선생님으로 부터 두 번째로 뽑혀져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학교 첫날 수업 마친 후, 봉희는 신발장에서 하얀 실내화를 신주머니에 넣고 복도를 두리번 거린다. 혹시 큰 엄마가 자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큰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집에 벌써 가신 것 같다. 6학년 은영언니가 쓰던 큰 사각형 가방에 아홉 권이나 되는 교과서를 넣으니 가방이 빵빵해졌다. 봉희는 가방을 메고 오른손에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교문을 빠져나온다.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은 엄마 손을 잡고 키득 키득 거리며“오늘은 무엇 배웠냐?� 는 엄마의 질문에 환한 웃음들을 지으며 깔깔거리며 오순도순 말을 주고 받고 있다. 교과서가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은 엄마들 손에 들려져있다. 봉희는 초등학교 1학년 첫날에 앞으로 봉희의 인생에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작은 가방 안에 받아 메고 있는 것 같다. 봉희는 입학 첫날에 교과서라는 것이 너무 무거워서 집으로 가는 논두렁에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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