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 1학년 2반 37번 -
입학식을 마친 후, 봉희에게 초등학교 1학년 학교생활은 힘겹다. 봉희의 초등학교 학번은 1학년 2반 37번이다. 38명 중에서 키가 두 번째로 작아서 37번이 되었다. 봉희가 배워야 할 과목들 중 가장 어려운 과목은 국어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글 자음과 모음을 써주시고, 자음과 모음에 맞는 단어들을 칠판에 써주신 후 학생들에게 따라서 읽으라고 하신다. 학생들은 아기새가 어미새로부터 모이를 받아먹듯이 입을 벙긋, 벙긋 거린다. 학생들은 사각형으로 그려진 공책에 ㄱ, ㄴ,ㄷ , ㅏ, ㅑ, ㅓ, ㅕ 등의 자음과 모음이 써져있는 단어를 따라 쓴다. 봉희는 1달 넘게 자음, 모음과 단어들을 따라 쓰기를 하였다. 하지만 봉희의 머리 속의 자음, 모음은 항상 헷갈렸다. ‘오’는 ‘우’도 헷갈렸고 ‘다’와 ‘라’등 비슷한 단어들은 봉희 머릿속에서는 뒤죽박죽 거렸다. 선생님은 국어책에 나온 단어들을 칠판에 써주시고 똑같이 학생들에게 따라 읽고 다시 공책에 10번 이상씩 칠판에 있는 단어들을 쓰라고 하셨다.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입학 후 한 달이 지난 후부터 선생님은 받아쓰기라는 시험을 학생들에게 보게하였다. 하루에 10개씩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단어 혹은 국어책에 나온 단어들을 불러주면 학생들이 받아적는 시험이었다.
‘칠판’,‘학교’,‘책상’,‘의자’‘ 영희야 놀자’‘ 닭장’,‘ 철수와 강아지 ’
봉희의 담임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중년 남성이셨고 회색양복을 즐겨 입으신다. 담임 선생님의 특이점은 왼쪽 빰에 2센치 가량되는 검은 점이 있었고, 그 점 위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검은 털이 나 있었다. 키가 작아서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봉희는 담임선생님의 그 비밀스러운 검은 털의 진실을 안다. 국어시간만 다가오면 봉희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담임선생님이 불러주는 받아쓰기의 단어들은 어김없이 봉희의 머리 속에 맴돈다. 봉희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몇 개 안되는 단어들의 조각을 빼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담임 선생님이 첫번째로 불러주신 단어를 봉희는 머리 속의 단어들을 빼내어 연필로 쓰기 시작하려고 하면 선생님은 벌써 두 번째의 받아쓰기 단어를 불러주고 계신다.열 개의 받아쓰기 문제에서 봉희가 받아 적는 단어들은 세, 네 개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은 받아쓰기를 마친 후에는 짝궁 끼리 받아쓰기 공책을 서로 바꾸어서 채점을 하도록 했다.
봉희 짝궁의 받아쓰기 노트에는 빨간 색연필로 여덟 개 혹은 아홉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봉희의 노트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 개수는 한 개 아니면 두 개다. 봉희의 받아쓰기 성적은 10점 혹은 20점이었다. 봉희의 받아쓰기 성적은 봉희의 작은 키를 더 쪼글라들게 만들었다. 짝궁이 봉희의 받아쓰기 점수를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득거리며 보여주는 날에는 봉희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봉희에게 국어시간의 받아쓰기 시험은 죽을만큼 싫었다.